[최영훈의 문화人] 금관문화훈장 받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와 ‘동백아가씨’
[최영훈의 문화人] 금관문화훈장 받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와 ‘동백아가씨’
  • 최영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 승인 2023.10.2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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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으로 폭넓은 행보를 보여온 최영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공연 등 문화활동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과 독특한 견해를 자랑한다. 동아일보 퇴임 후에는 SNS를 통해 예리한 통찰을 담은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 문화인사에 대한 그의 논평을 연재한다.<편집자주>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네 동백 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

나는 22년 전, 미국 1년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 거의 1만5000마일을 달렸다. 돌아올 때, 큰 차를 빌려 미국과 캐나다를 샅샅이 뒤졌다.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콜로라도 노스캐롤라이나 뉴욕 메인 퀘벡 나이아가라폭포, 다시 미주리, 와이오밍, 캐너디안 로키즈 밴드, 캘거리를 거쳐 밴쿠버, 시애틀까지의 긴 여정이었다.

옥수수밭 밀밭의 미국 중서부를 달릴 때였다. 뉴욕 한인가의 레코드가게에서 입수한 장사익 음반을 차 안에서 들었다. 첫곡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리메이크였다. 장사익형 특유의 하늘로 비상하는 듯 고음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듯한 노랫소리였다. 그 박자 음정 무시의 천진한 서러운 한의 노래가 나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했다. 저절로 눈에서 이슬이 맺혀 흘렀다.

그 ‘엘레지의 여인’ 이미자 선생이 마침내 최고의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미자 선생한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미자 가수의 노래 100곡이 수록된 음반집을 나는 갖고 있다. 예전에는 자주 들었는데 요즘은 좀 뜸했다.

‘동백아가씨’는 1964년 부른 트로트 곡이다. 발표 당시 애절한 가사와 곡조로 인기몰이를 했다. 금지곡 수난사를 기록한 대표적 노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곡자는 백영호, 작사자는 한산도(한종명)이다. 1964년 엄앵란과 신성일의 동명 영화 주제곡으로 만들어져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했다. 

당시 이미자는 ‘열아홉 순정’으로 알려진 신인 가수였다. 그 후 그는 ‘동백아가씨’ 이 한 곡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그래서 ‘엘레지의 여왕’이라 불렸다. ‘동백아가씨’는 이미자의 수십 곡에 달하는 히트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 큰 인기를 누린 대표곡이다. 

나중에 작곡가 백영호 사후 아들 경권은 “제작 당시 ‘동백아가씨’라는 제목이 촌스럽다고 레코드사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부친께서는 직접 레코드판을 들고 다방이나 음악감상실을 찾아 홍보 활동을 벌였다”고 추모 강연회에서 비사를 털어놓기도 했다.

영화 <동백아가씨>는 서울의 대학생과 인연을 맺은 섬 처녀가 버림받고 술집에서 일하게 된다는 신파 멜로다. ‘동백아가씨’는 엄앵란이 ‘동백빠아’에서 일하는 여급이라서 영화 제목으로 붙여졌다.

가사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연인을 기다리는 여성의 정한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사상 처음 100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공전의 인기를 끌었다. 

이후 노래가 왜색풍으로 몰려 금지곡이 됐다. 당시 반대가 심했던 한일기본조약 체결과 관련, 정치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의 빨갛다는 가사가 이념적으로 문제가 됐을 거라는 설도 있다. 이미자는 세월이 흐른 뒤 회고담에서 “경쟁 음반회사의 입김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금지곡 기간에도 입에서 입으로 불린 구전가요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 곡은 해금된다. 20여 년 만에 다시 대중이 방송에서 들을 수 있게 됐다. 2006년 MBC가 ‘2006 대한민국 가요대제전’을 위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최신 히트곡이었던 장윤정의 ‘어머나’ 뒤를 이어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요 100선에서 2위를 차지했다. ‘동백아가씨’ 외 ‘울어라 열풍아’도 ‘황포돛대’도 기가 막힌다.

최영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최영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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