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리안드림과 단일문화의 벽
[기고] 코리안드림과 단일문화의 벽
  • 백승민 (주)엑스프리베 대표
  • 승인 2023.12.01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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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역대 최고인 251만 명이다. 한국은 20명 중 1명이 외국인인 아시아 최대 다인종 국가가 됐다. 하지만 99% 순도의 K-단일문화는 코리안드림을 찾아 이 땅에 온 사람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하버드 경제연구소의 단괴화(Fractionalization) 보고서는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다양성이 부족한 국가로 평가한다. 연구소의 평가 잣대는 인종, 언어, 종교다. 한 나라에서 자국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비율이 얼마나 되냐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면 우리나라 배달민족은 세계 1등이지만 한국은 외국인에게 얼마나 차갑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사는 이주와 이민의 역사다. 1902년 하와이로 간 121명의 공식이민을 시작으로, 현재 180개국에 732만 명의 재외동포가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으로 이주했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보내진 한국인들은 맨땅에 밭을 갈아 삶을 영위했다.

한국전쟁 이후 20만 명의 아동들이 해외 각국으로 입양됐다. 또 남미로 이주한 한인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패션산업을 일구었고, 광부와 간호사들은 독일에서, 건설인들은 중동에서 외화를 벌었다.

미국에선 현지인들이 피하는 우범지역에서 세탁소와 가발, 네일숍과 슈퍼마켓을 경영했다. 카운터 밑에는 호신용 권총을 두었고 의료서비스를 포기하고, 보험비를 아껴가며 자녀교육에 헌신했다.

이렇게 우리는 인재 수출로 외화를 벌었고,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1, 2차 산업을 육성했다. 조선, 자동차, 가전, 휴대폰, 반도체 등의 하드웨어 상품을 만들어 수출했다. 서울올림픽을 기반으로 스포츠에 두각을 내고 K팝, 드라마, 영화, 만화의 소프트웨어를 수출했으며, 무기 수출 강대국으로도 도약했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은 생리, 안전, 사랑·소속, 존중으로 올라가는 정신분석학자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을 차례로 충족시켰다. 이제는 마지막 자아실현의 방에 들어왔으나, 젊은이들은 결혼하지 않고, 출산 대신 반려동물을 유모차에 태우고 있다. 결혼했다가도 쉽게 헤어지고, 대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저출산과 고령화와 함께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이어졌다. 농사, 식당, 청소, 간병, 건설, 공장 같은 3D산업은 외국인들에게 맡기고 있다. 과거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타국에서 도맡았던 힘든 일을 할 한국인은 더이상 없다.

블루컬러였던 해외동포 1세대의 후손들은 현지에서 교육을 받아 화이트컬러 전문직, 언론인, 정치인으로 진출했다. 한국도 세계 경제 200등에서 10등 국가의 반열에 들어섰다. 이 같은 성장은 한국에서 정진하고, 시베리아에 밭을 갈고, 사막에 건물을 올리고, 한국의 존재도 모르는 나라에서 광산을 파고 환자를 보고, 우범지역에서 장사하며 서러움과 아픔을 참고 자녀교육에 올인한 한인들의 눈물과 땀방울에 힘입은 결과다.

우리가 타국에서 받은 설움과 한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우리 땅을 찾은 외국인들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첫째, 국가 정책과 더불어 우리 개인의 의식과 배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차별이 없는 사회를 추구하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이민자들을 환영해야 한다.

필자는 미군에서 기회균등관(Equal Opportunity)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다문화 역사가 깊은 미국은 국적, 인종, 언어, 성별, 나이, 종교, 장애의 유무, 결혼 여부, 자녀 유무에 따른 조직 내 차별을 방지하는 포괄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평등은 인종과 국적뿐만 아니라 다각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외국인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 굳이 외국인노동자라고 부르는 것 자체도 차별이다. 출신 국가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회식에서 열외를 시키는 것도 차별이다. 고령자들을 ‘꼰대’라 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의 말이 어눌해도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심을 가지면 좋겠다. 다문화사회에서는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둘째, 다문화를 포용하는 사회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포괄성은 국가경쟁력에 직결된다. 외국인에게 일본의 도장문화와 중국의 만리장성 인터넷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 한국의 공동·공증 범용·개인 인증서와 키보드보안 프로그램은 없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 정책 수립에서도 외국인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정책 수혜자는 100% 한국인이어서는 안 된다. 이제 열명 가운데 한 사람은 외국인이다. 이 두 그룹을 공정하게 아우르는 ‘국민 및 영주권자의 권리와 의무’를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구 선생은 ‘높은 문화의 힘’을 설파했다. 이것은 K팝 수출이나 외국인 관광객 수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가 아니다. 화장하고 멋진 옷을 입고 나가서 먹는 저녁 식사 대화가 아니라, 집에서 민낯과 반바지로 가족과 하는 아침 식사 대화가 진정한 문화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느끼는 일상이 한국의 품격이다. 꿈을 가지고 한국을 찾은 사람들이 공정한 기회 속에 성장하고 그들의 거주국이 발전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화되는 ‘Meritocracy’(능력주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국익과 국민의 권익이 보장되는 선에서, 우리가 단일문화의 벽을 허물고 다문화사회로 거듭나며 한국의 성장 방정식과 의료·교육 시스템을 세계에 알리는 새로운 운동을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20년간 미국과 중국에 거주했다. 현재는 서울에서 한국과 아시아의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해외에 소개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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