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경점에서 금광개발까지··· 잠비아 박익성 회장
[인터뷰] 안경점에서 금광개발까지··· 잠비아 박익성 회장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3.01.0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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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라 취업·창업 콘서트서 성공스토리 발제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살기 좋은 나라에 가서는 절대로 큰돈 못 법니다. 젊을수록 오지의 국가에서 도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박익성 전 잠비아한인회장은 1월11일 무역센터에서 열리는 ‘2013 글로벌 취업·창업콘서트’에서 그의 성공 스토리를 발표할 예정이다. 코트라는 국내 청년들의 해외 창업을 돕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는데, 세계 각국에서 성공한 한인 8명이 패널로 참가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유일하게 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 초청된 한인.

“저는 사실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어요. 제 동생들 학교 뒷바라지를 해야 했어요. 머리가 좋아 아프리카로 떠난 것이 아닙니다. 사업을 한 번 해보기 위해서는 열악한 국가가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박익성 회장이 1월9일 본지를 방문해 그의 아프리카 도전기를 얘기한다. 그는 1998년, 39세 나이에 아프리카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로 떠났다.

그는 대구에서 가까운 경산에서 태어났는데, 아프리카에 안경 사업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구는 안경으로 유명한 도시인데 그는 무작정 수 백 가지나 되는 안경부속품과 렌즈기계를 화물선 컨테이너에 실어 잠비아로 보냈다. 당시 그가 갖고 있던 돈 1억2천만 원을 털어 잠비아로 보낸 것이다.

문제는 그는 영어도 한 마디 할 줄 몰랐고, 안경기술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 놀랍게도 이랬던 그는 지금 금광을 개발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또한 건설 사업, 신도시 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다. 믿기 힘든 드라마가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처음 잠비아에 갔을 때 마케니라는 지역의 어느 선교사 집에서 살았어요. 하루에 버스가 3번만 다니는 낙후된 곳이었는데,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는 흑인들과 매일 버스를 타고 수도 루사카까지 다녔어요. 어렵게 안경점 하나를 구입해 장사를 시작했는데, 손님이 올리 없었죠. 파리만 날리는 사업을 몇 달간 했었죠.” 아내는 그만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그는 식당, 술집 등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가며 영어를 배웠고, 한국에 전화로 문의하며 안경기술을 익혔다.

“안경기술이 굉장히 어려운 기술입니다. 특히 바이포컬 렌즈, 다초점 렌즈를 만드는 것은 힘들어요. 잠비아사람들은 모두 오후 5시면 퇴근을 하는데 저는 매일 저녁 회사에 남아 렌즈를 깎아가며 안경기술을 배웠죠.”

그의 안경사업은 2000년부터 슬슬 불이 붙기 시작했다. 운 좋게 목 좋은 1층 사업장을 구할 수 있었을 때다. 또한 발품을 팔아 가며 6개월간 홍보지를 돌렸는데 사람들이 조금씩 그의 가게를 찾았다고 한다. 잠비아에도 무테안경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였는데, 그의 사업실적 그래프는 30배 이상으로 수직 상승했다.

“무테안경에 옅은 갈색을 입히는 기술을 보유한 저는 주변 업체들보다 경쟁력을 갖게 됐어요. 다른 안경점은 이렇게 하려면 안경을 외국에 보내야 해서 몇 주가 걸렸는데, 저는 30분 만에 무테안경을 만들어 주니 시장을 ‘싹쓸이’ 한 것이죠.” 하지만 사업이 잘 되자 불운도 따랐다. 지금은 모두 판명이 됐지만, 한인 중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현지사회에 그가 불법영업을 한다고 각 언론매체와 공공기관 등에 제보를 했던 것.

“사실 본격적으로 사업이 잘 된 것은 4~5년 정도밖에 안 돼요. 그동안은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해요.” 그는 잠비아한인회 1~3대 회장을 역임했다. 한인사회에서 안정된 자리를 잡고 사업에만 몰두해서 그랬는지 2006년부터는 일이 술술 풀렸다고 한다.

“2010년 인도인이 우리 안경점을 인수하겠다고 해서 우리 돈으로 5억 원(잠비아 화폐는 한국의 1/5 수준)에 팔았어요. 10년간 공들인 사업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더 큰 사업을 해보려고요. 이후 세탁공장(TOKYO Laundry)을 차렸는데 지금은 잠비아에서 제일 큰 세탁공장이 됐어요.”

그는 또한 1천 평 규모의 땅을 인수해 로지(Lodge) 호텔을 직접 건설하기도 했다. 20여 채의 객실이 있는 호텔이었는데 그가 직접 설계, 감리, 시공을 배우며 호텔을 지었다. 세탁공장도 그렇지만 로지 호텔도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배워가며 시작했던 일들이었다.

“호텔을 지은 다음에도 또 큰 돈을 벌었어요.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와 180만 달러에 팔았어요. 2.5배 가까이 남는 장사이었지요.” 사업에 탄력이 붙자 그는 최근 금광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KB&K Gold mine 회사의 공동 소유자가 됐어요. 금광을 개발하는 회사인데 한국의 STX, LS 니코 등과 거래할 계획이에요. 적게는 300억 원 많게는 수 천억 원의 사업이 될 전망이에요.” 그는 앞으로 쇼핑몰, 신도시 개발 등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신도시 개발은 어느 정도 잠비아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안경점에서 시작한 그가 약 10년 만에 금광, 건설, 신도시개발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을 더 돕고 살 계획이에요. 꼭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젊었을 때 지구의 한 오지에서 제 자신을 던졌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잠비아는 우리나라보다 약 3배가 큰 나라. 제2의 도시는 키투웨, 솔웨지이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구리 등 광물이 많다. 잠비아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10%를 기록했다. 이곳에 한인은 10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사업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잠비아에서 건설 분야가 유망하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유망한 지역으로는 남수단을 꼽았다.  

▲ 2012년 잠비아대통령 방한(외무부 장관과 신라호탤에서)

▲ 2010년 한국투자 사절단
▲ 현재 잠비아 쇼핑 몰
▲ 초대 대통령의 우수업체 선물
▲ 래이비 쇼핑몰
▲ 2008년 기업가들과 오찬에서(대통령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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