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그림편지-9] 고향이 그립다면 고향문화를 만드세요
[김봉준그림편지-9] 고향이 그립다면 고향문화를 만드세요
  • 김봉준 <오랜미래신화미술관 관장, 작가>
  • 승인 2014.05.30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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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이 그리워서> 1995년 한지에 겨레붓그림 150X70cm 김봉준 작.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이런 노랫말로 시작하는 유행가가 있습니다. 마냥 그리운 내 고향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대는 고향에 가보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타향살이로 늙어가는 우리들은 언제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삽니다.

저도 고향이 있습니다. 마음에 고향, 그 고향을 만들고 싶어서 22년 전 39살에 서울살이 떠나 새 고향을 만들러 여기 왔습니다. 이렇게 낙향한 산골을 내 고향으로 삼은 지 22년 째 됩니다. 남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고향 떠나 타향살이하는데, 저는 없는 고향 찾아서 서울 떠나 새 고향 만들며 살아 왔습니다. 이건 한국근대화 흐름을 완전히 역행한 역행보였습니다. 왜 저는 어린시절과 청년기를 고스란히 보냈던 그 서울이 싫어서 굳이 낙향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는 무모한 청년이었습니다.

거꾸로 사는 길이었으니 말입니다. 처자식도 도시에 놓고 무모하고 대책 없는 낙향은 어떤 심보로 가능했을까, 돌이켜 생각합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향이 그리워서’입니다. 도시의 녹색 없는 삭막함과 메마른 사회가 힘들었고 공기 매연이 저를 견디기 힘들게 하더군요. 고향 없이는 답답했고 풋풋한 삶이 그리워서 떠났습니다. 여기에는 예인의 예민한 감수성이 행동으로 작용했지요. 저 같은 예인은 아무데나 못사는 반딧불이나 장수하늘소 같은 벌레나 이끼 같이청청한 곳만 밝히는 존재입니다.

이런 예감이 고향 만들기를 결행하였습니다. 자기가 사는 거처는 사상과 미의 거처였습니다. 자기가 그리는 그림의 재료, 예술표현 방식, 미의식, 미적 세계관까지 송두리째 ‘고향’ 찾기를 향해 있었습니다. 못다한 고향문화 다시 찾기라고나할까요. 내가 배웠던 풍물의 미학, 내가 춤 추었던 우리춤의 신명, 내가 다루던 조선붓과 한지의 멋, 내가 파던 질박미의 목판화, 그토록 다시 하고팠던 흙조각… 이런 것이 나의 고향문화였습니다. 자기가 사는 거처가 자기 문화의 포태입니다.

▲ <물가에서> 1996년 한지에 겨레붓그림 33X45cm 김봉준 작.

그러나 대한민국 꿈에 그리던 고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시골도 치열한 근대 관행농업을 하는 농부들의 삶의 현장이었고 공동체문화는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농부들과 서로 이해하며 살기 바빴고 밥 벌이 하려면 도시를 왔다갔다 해야 했고 또 다른 고독과 싸워야 했습니다. 꿈 속 같은 고향은 없었으나 도시에서 못 겪은 삶의 재미와 싱그러운 삶을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싱그러움을 그림으로 잡아 내려고 무진 애를 써 보았습니다. <고향이 그리워서>가 그런 그림입니다.

여기 소개하는 붓그림 세 점은 그렇게 몸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힐끗 처다보고 사진 찍어서 사진 보고 그린 관광 산수가 아니라 우리붓, 우리 한지, 내 시각으로 거기 살면서 그린 그림입니다. 저는 이토록 우리 붓과 한지를 사랑합니다. 양지가 아스팔트 길이라면 한지는 흙길 같습니다. 서양 브러시가 인조털붓이라면 동양의 붓은 동물털입니다. 기름그림이고 물그림 차이도 큽니다. 미술재료가 생태적 재료라서 생태적 미감이 깃듭니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 전통문화에도 강한 개성을 발견합니다. 지금 같은 압축형 근대주의 사회에선 별로 환영 받지도 못합니다만 저는조선의 붓과 한지를여전히 사랑합니다. 이 겨레붓그림의 재료와 기법이 별로 상업화랑에선 인기가 없어도 그렇습니다. 상업화랑은 서양미술 일색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잘 팔리지도 않는 내 붓그림은 이렇게 그림 창고에 묵혀두었다가 소개합니다.

저는 고향에서 배웠습니다. 학교 동문들이 파리나 뉴욕으로 유학 갈 적에 저는 고향을 찾아 시골로 유학 갔습니다. 한지를 떠서 직접 만들어 보고 조선붓을 다루면서 붓과 한지가 우리 시각문화를개성 있게 만들어 온매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인이란 물질을 잘 다루는 자입니다. 질박한 된장 맛 김치맛이 우리 입맛에 오래오래 기억되듯이 겨레의 시각언어도 고향산천에서 나왔기에 고향의 멋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조선의 종이는 거의가 닥나무 한지를 사용 하였고 조선의 붓은 이 땅의 산천에 사는 동물들 털을 이용한 필기구였으며 조선의 먹은 우리 소나무 끄름으로 만든 먹물이었고 산수화 구도는 우리 산천풍광에서 느낀 그림양식이었습니다. ‘그가 먹는 것이 그 사람이다’라는 인도 속담처럼 한 종족의 문화종은 생태종과 조응관계입니다.

그래서 제 그림이 된장국맛 김치맛처럼 우리 발효음식맛과 조응관계에 있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합니다. 나의 예술은 이런 한국의 음식의 원형맛과 원리가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음식문화를 살리고 애용하지 않으면 도태되듯이 우리가 우리 그림을 사랑하고 애용하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우리 겨레그림의 소멸은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화랑에 점점 걸리지도 팔리지도 않고 잘 모르는 미술이 되고 있습니다. 잘 모르니 못가르치고, 안 배웠으니 못 그리고, 안그리니 안 팔리고, 안팔리니 겨레붓그림 그리는 사람 더욱 없는 악순환입니다. 고향을 떠나면 고향이 그립다고 하는 데, 고향문화를 모르고 그냥 그립다는 것은 오래도록 고향을 간직할 수도 없고 푸념이 됩니다.

적어도 고향이 그리우면 고향문화를 알려고 노력하고 좋아서 가까이 가려고 하고 그림도 구입하여 곁에 두고 즐기는 고향문화의 수요층이 생겨야 합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요? 물적 토대가 없이는 문화창조란 없는 줄 압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자기들 문화를 나가서도 해외에 타운을 조성하며 예술품과 禮品으로 자랑스럽게 유통시키고 있지만은 우리는 사실 영상한류에 국한합니다. 이렇게 작고 가벼운 방식으로속 깊은 우리문화를 오래오래 세계화 할 경쟁력이 지속 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우리 전통문화는 중국과 분명히 다릅니다.

오늘은 붓풀이 詩書畵를 소개했습니다. 붓으로 시도 짓고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던 3絶의 風流文化, 세계에 우수한 한글도 소개하고 된장 고추장 나물무침 김치의 맛 같이 우리붓그림 붓글씨도 어울러지게 하여 세계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둘- 한글과 붓그림을 합쳐서 ‘한글붓그림’이라고 부릅니다. 한글 공부하는 세계의 세종학당에서든 가정에서든 우리시와 우리그림을 우리붓으로 한지에 그리는 날들이 오기를 바랍니다. 한류는 문화 콘텐츠 뿐만 아니라 한류의 장인학이 요구됩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신다면 고향문화를 자기가 사는 그 곳에서 만들어 보시기를, 고향이란 사람들 인정과 생태계가 살아있는 공동체에 다름 아니니까요. 이 따듯한 공동체문화를 살리고 소통시키는 매개체로 오늘은 겨레붓그림을 소개했습니다.

▲ <지하철 풍경> 1998년 한지에 겨레붓그림 120X 60cm 김봉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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