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용정에서 불러본 선구자
[선비촌만필] 용정에서 불러본 선구자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18.08.2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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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유래없는 폭염속에 중국 동북삼성(만주)을 여행했다. 심양 한중교류문화원과 월드코리안신문이 주관한 중국 동북삼성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이번 만주 여행이 나에겐 세 번째였지만 갈수록 호기심이 커져가는 묘한 지역이 만주일원이다.

지난해 만주여행은 행사참석이 주목적 이였다면 이번여행은 역사유적 답사가 테마였고 특히 항일 독립운동유적을 중심으로 짜인 일정이라 나에게는 놓칠 수 없는 매력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답사코스에 대한 모든 답사기를 쓰기에 앞서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용정(龍井) 비암산 일송정에서 불러본 선구자 노래! 나에게 그토록 벅찬 감동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7월29일 우리 답사팀은 할아버지 고향 같은 이미지의 용정에 도착했다. 옛날 이 지역은 조선 사람들이 개척했으며 우국 선열들의 독립운동 중심지였기에 침략자 일본으로부터 토벌과 학살의 대상지였던 한 맺힌 땅, 북간도. 그런 간도역사의 주 무대였던 용정이 아니던가!

내 젊은 학창시절 이였던 6~70년대에 목 놓아 부르고 또 불렀던 선구자. 그 시절 선구자는 노래라기보다 외침이었고 절규였다. 선각자나 혁명가들이 불렀을 것 같은 선구자는 그 당시 운동권 가요였다.

일송정 푸른 솔은... 으로 시작되는 이 가곡은 지금도 듣거나 불러볼 때면 뜨거워지는 가슴과 벅찬 감동을 감출 수 없다. 그 노래의 고향 용정에 우리가 갔다.   

비암산 정상에 있는 ‘일송정(一松亭)’. 별로 높지 않은 비암산 정상은 드넓은 대 평강벌에 솟아있어 저 멀리 해란강도 보이는 용정 8경의 하나로 용정의 랜드마크란다. 75세의 전 용정문화관장이였던 이광평 선생의 우렁찬 함경도 억양과 해박한 용정 역사해설에 우리는 37도의 폭염도 잊고 메모와 녹음에 들어갔다.

용정 지명의 유래, 일송정 정자의 역사, 비암산 정상 바위틈에 서있던 낙락장송의 기구한 운명, 그리고 ‘선구자’ 노래에 얽힌 처음 듣는 비사(祕史)들을 유창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만주벌판을 누비던 독립 선열들의 비장한 모습을 떠 올리기엔 역사의 현장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젊은 우리가슴에 깊이 새겨진 애잔한 상념에 나는 눈을 감았다. 일송정, 해란강, 선구자... 이런 단어들은 나에게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닌 감성언어로 자리 잡아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곤 했다.

그러기에 답사에 동행한 성악가가 불러준 ‘선구자’ 노래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할 말을 잊은 채 손수건에 의지하고 있었다.

독립 운동가의 한(恨)을 노래했다는 선구자 노래는 가곡이 되어 60년대 한국에서 널리 불리면서 운동권 노래가 되기도 했는데 간도에선 잊혀진 이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용정에 전해지면서 다시 불러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 이 노래는 1930년대 ‘용정의 노래’로 시작됐다고 한다. 작사(윤해영) 작곡(조두남)자가 해방 후 친일 분자로 알려지면서 가사에 ‘선구자’는 우국지사가 아니라고 하기도 하고, 선구자의 실제모델이 독립투사 김동삼(金東三) 선생이라는 설도 있다. 김동삼 선생의 호가 일송(一松)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용정의 노래가 한국에서 독립투사들의 한을 노래했다고 알려지면서 가사도 많은 부분이 개작되었다고 이광평님은 설명했다.

또 1992년 일송정 주변에 한인들이 ‘선구자 탑’을 세웠는데 중국과 북한에서 선구자 모델이 사회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를 연상 한다고 하여 한,중간에 외교문제로 비화되었다고 한다. 결국 1992년 5월 이를 해체하고 일송정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일송정과 선구자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수록 애절하다.

노래에 대한 사연이 어떠하던 나는 조국 광복을 위해 만주벌판에서 스러져가신 수많은 순국 영령들을 기리는 노래로 애창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간도 용정에는 망국의 한과 애국선열들의 고혼이 굽이마다 서려있는 땅이다. 홍범도, 안중근, 유인석, 이상설, 김약연, 이상용 이회영 일가 등...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망국의 한을 품고 망명, 조국광복운동의 켐프를 차렸던 북간도 용정은 1919. 3. 13.만세운동과 전설 같은 봉오동 청산리대첩, 1920년에 자행된 간도참변에서 희생된 수천 명의 무고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며 온다.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과 명동촌(明東村)에 세워진 명동학교, 용정의 대성중학 같은 민족 교육기관이 양성했던 많은 선각자들과 윤동주 시인의 생가도 있는 연변일대를 답사하는 2,800km 대장정에도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감동의 코스였다. 

고구려 유적이 있는 집안에서 중국 공안의 감시(?) 속에 광개토대왕릉 비(碑)를 답사할 수밖에 없는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이라는 기막힌 현실과 도도히 흘러가는 압록강너머 북한 땅을 바라보는 나에겐 역사의 엄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소중한 기회였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창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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