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작 후기] ‘고추 붉게 익는 마을 경북 영양 일월산 도곡리’-2
[방송제작 후기] ‘고추 붉게 익는 마을 경북 영양 일월산 도곡리’-2
  • 김영환 KBS PD
  • 승인 2018.09.27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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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리의 아름다운 사람들

다큐멘터리 방송은 어떻게 기획되고, 제작될까? 본지는 KBS 다큐멘터리3일을 기획 취재한 김영환 PD의 제작 후기를 지난회에 이어 소개한다.<편집자>

아름다운 도곡리 사람들

중1 이영호

도곡리 사람들은 언변이 모두 탤런트 급이다. 특히 이재하 씨 가족의 맏아들 영호가 그랬다. 중1의 어린나이인데도 내공이 깊었다. 다들 기숙사 생활을 하지만 그는 학원에 안가고 인강을 들어야하기 때문에 집에서 통학한다면서, 농사철에 엄마 아빠 둘이서 하면 힘드니까 자기라도 도와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멘트. “열매가 열리거나 수확할 때의 기쁨, 그것 보고 농사일을 도와주려는 동기가 생겼어요”라고 했다. 중1인데도 속이 참 깊었다. 영호는 장래 희망이 직업군인이나 농부, 그것도 아버지 같은 농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 것을 택하든 영호는 분명 성공할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말은 압권이었다. “엄마가 그랬는데 돈은 쉽게 벌 수 없대요. 돈 벌려면 힘이 들어야 한 대요”. 더빙 중 모두는 영호의 멘트에 감동을 먹었다.

화가 이산뜻한

이름 그대로 산뜻한 성격이며 티 한 점 없는 순수 그 자체, 보배로운 귀향 화가다. 도곡리 풍경 미학의 발전은 이 화백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택호문패, 벽화, 옛구도실 화실, 새방골 펜션. 이 모두가 이 화가가 구상하고, 직접 만든 작품들이다. 그는 허름한 창고와 멋없이 네모반듯하기만 한 마을회관 외벽에 예술을 입혔다. 창고 외벽엔 50년 전 아이들과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마을회관의 벽면에는 현재 마을에 사는 아이들 전체를 그림으로 그렸다. 벽화는 도곡리의 포토존이 됐다.

그는 재주가 참 많았다. 한 번도 지어보지 않았던 집을 손수 흙벽돌을 찍어서 멋진 화실 겸 살림집을 지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새방골 깊은 계곡에 펜션을 지었다. 방송국이 정보를 어떻게 빨리도 알아냈는지 채널A의 <갈 데까지 가보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케이블 방송은 성격상 본방 한 번에 재방 수십 번이다. 이어 잡지 소개 등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언론이 알아서 홍보를 다해준 셈이다. 그러나 건물은 2년 전 화마로 소실되는 아픔이 있었다. 아랑곳 않고 화가는 2년 째 묵묵히 다시 집을 짓고 있다. 오는 겨울이면 건축을 마무리 한다고 하는데, 눈코 뜰 새 없을 때 다큐3일까지 귀찮게 하니 우리가 민폐를 크게 끼쳤다. 여성감독의 끈질긴 회유에 결국 취재를 허락했다.

유기농 전도사 정구식

정구식 씨는 도곡리 이장을 두 번 연임한 마을 지도자다. 그는 역대 마을이장 중 업적이 가장 많다. 재임 중 마을 숲 축제를 시작했고, 아름다운 숲 대상 수상, 복합문화회관의 건설 등 업적을 남겼다. 이장 재임 전부터 뚝심으로 시작한 친환경 농법 또한 도곡리 농산물의 안전성 홍보의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함에도 농약을 쓰지 않은 항암고추를 재배하더니 요즘은 영양 토종고추인 수비초를 시험재배 하고 있다. 수비초는 칼 모양처럼 생겨서 일명 ‘칼초’ 라고도 하는데, 그리 맵지 않으면서 달싹한 맛이 요즘 고추품종의 맛과는 비할 수 없다고 한다. 수비초는 90년대 이후 농가에서 종묘회사의 종자를 쓰면서 거의 사라질 뻔 했다. 정구식 이장과 같은 뚝심 있는 농부들이 그런 토종 종자를 복원,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농사는 이익에 집착하면 당해 연도엔 한 몫 잡을 수 있지만, 오래 못간다고 한다. 잔류농약이 심하다든지 하는 나쁜 소문이라도 나면 소비자에게 외면당하는 건 일순간이기 때문이다. 정구식 전 이장과 같은 참 농부가 도곡리에 있다는 건 도곡리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참 농부 권영조

권영조 씨의 영농일기에 얽힌 사연 또한 인상 깊다. 올해로 귀농 15년째인 영조 씨는 공사장에 다니기도 했다. 2011년 경 공사장에서 매몰돼 머리를 크게 다친 그는 두 달간 입원을 했다. 퇴원 후 고추밭에 가봤더니 밭둑에 풀 하나 없고, 고추밭이 꽃밭이었다고 할 정도로 고추농사가 잘 돼있었다. 이웃 형님 중 한 분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찾아가서 큰 절을 올리고, 돈을 드리려 하니 한사코 거절하더란다. 그때부터 영조 씨는 결심한 게 있다. 꼼꼼한 농부가 되기로 하고 영농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권영조씨는 심지가 깊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주 깊다. 3년 전부터는 주말에 농사를 지으러 오는 귀농예정자 이재춘 씨의 멘토도 자청했다. 각종 농사 기술을 가르쳐 주고, 주중에 귀농인의 밭을 돌봐주고, 건조기의 고추 건조 상황도 지켜봐줬다. 도회지 출신 귀농인에게 텃세를 부리며 왕따 시키기 일쑤인 현실에서 권영조 씨의 배려심 깊은 태도는 널리 알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행복점심 이희락 이장

포스코에서 정년을 하고 60대 중반이 돼서 귀향한 이희락 이장은 타고난 낙천적 성격, 어눌한 듯하면서도 위트 있는 말, 소탈한 태도 등 독특한 캐릭터로 무미건조할 수 있는 방송에 재미를 덧보탰다. 그는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이른 아침부터 동네 한 바퀴를 휘 돌면서 독거노인들의 밤새 안녕을 묻고, 큰 비가 오려고 하면 마을방송을 통한 재난예방 안내, 비온 뒤 수로가 막히면 군청에 곧바로 연락해서 중장비를 출동시켰다.

단돈 천원을 받고 공동급식을 운영해보자는 결정도 그의 뚝심과 배짱이 한 몫을 했다. 천원 받아가지고선 적자 때문에 얼마 못가서 폐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지난해 이어 2년 째 고추수확 철 급식소를 지속 운영한 것은 이장님의 통 큰 결단 때문이다. 3천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는데, 적자를 누가 책임 질것이냐는 반대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2013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도곡리 마을숲 안내표지

제작진이 갔을 때 식당 칠판에는 커피, 세제, 종이컵, 호박, 나물, 사과 등 기증자들의 기증 내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도곡 주민들의 자발적 기부가 천원 식당의 적자를 매우는 비결이었다. 그래도 생기는 부족금은 송이 산에서 나는 마을 공동수익금으로 충당하겠단다.

공동급식은 부녀자들에게 음식준비의 시간과 노고를 덜어줘 일손을 보태준다. 일꾼들은 밥맛 좋은 양질의 식사로 점심시간만이라도 행복감에 빠진다. 아랫마을 윗마을 사람들 밥 먹을 때라도 서로 얼굴을 맞댈 수 있으니 주민화합에도 크게 기여한다. 지난해 도곡리 공동급식을 소개한 어느 신문기사는 소제목을 도곡리의 ‘행복점심’으로 뽑았다.<계속>

이 벽화는 1960년 대 중반 도곡리에 거주하는 어느 가족의 일상을 묘사한 그림이다. 작품 속의 자녀들은 모두 외지로 떠났고 노부부만 집을 지키고 있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삶의 희망이 있었다고 주민들은 회상한다.
이 벽화는 1960년 대 중반 도곡리에 거주하는 어느 가족의 일상을 묘사한 그림이다. 작품 속의 자녀들은 모두 외지로 떠났고 노부부만 집을 지키고 있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삶의 희망이 있었다고 주민들은 회상한다.

필자소개
1987년 KBS 프로듀서 직종으로 입사, 기동취재현장, 세계는지금, 추적60분, 일요스페셜, 시청자칼럼 우리사는세상 등을 제작하였으며 재직 중 피디연합회 편집국장, KBS노조 정책실장도 역임. 현재는 <다큐멘터리3일> 프로듀서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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