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91세 동갑내기 부부의사
[Essay Garden] 91세 동갑내기 부부의사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20.02.0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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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에는 존경스러운 91세 동갑내기 의사부부가 살고 있다. 내가 이곳에 살며 30년 전에 만난 김병목 박사는(1981년에 추대받은 전 한인회장) 그 후에도 고문으로 한인회를 위해 수년째 봉사하고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모 한인회장을 통역하며 미국 정부 인사들을 함께 만나기도 했다.

김 박사는 경기 중고등학교를 나와 경성의전(현 서울의대)을 다니다 당시 문교부 소속 고문이었던 한 미국인(로버트 깁슨)의 도움으로 1948년 미군함을 타고 미국유학을 왔는데, 당시 그 배에는 서재필 박사도 있었다 한다. 김 박사는 열심히 공부하여 1958년 콜롬비아 의대를 졸업하고 1962년 샌디에이고 스크립스클리닉에서 흉곽 내과 전문의자격을 받은 후 한동안 미국 동부에서 활동했다. 

1971년부터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의 의대 임상교수를 시작으로 라호야에 정착하고 두 자녀를 키워내고 여태 살고 있다. 최근까지 그는 의사 면허증을 연장하며 늘 자동차에는 청진기를 싣고 다녔다. 간혹 의료보험이 없는 한인들이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지 도와주었고 때론 영어 때문에 법정에서 고통을 받는 한인을 유창한 그의 영어 실력으로 도와주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음으로 양으로 좋은 일을 해왔지만, 수년 전에는 잘못된 한인회를 보고 분개하여 바로 세우려는 몇 샌디에이고 원로들과 함께 고소를 당하는 기막힌 사건도 있었다.

김병목 한화심 박사 부부 댁 거실에서
김병목 한화심 박사 부부 댁 거실에서

한편, 1947년 서울의 영어학원에서 만나 인연으로 유학 온 부인 한화심 박사를 뉴욕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두 분은 1955년 결혼했다. 한 박사는 지금 고려의대 전신인 서울여자의과대학 출신으로 은행감독원장인 아버지(한필제)와 서양화가(김명화) 사이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까지 산부인과 전문의로 활동하여 당시 많은 한국인 신생아들이 그분의 손길을 거쳤다.

내가 동갑내기 김 박사 부부 의사를 더 가까이 알게 된 것은 우연히 그분 댁에서 장인의 마지막 임종을 자상한 사위(김 박사)가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장인이 딸의 집 방안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는 아름다운 가족 관계는 정말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해 전에는 음악교수(한화정)였던 처제가 홀로되니 집에 데리고 와 함께 살다가 양로병원으로 옮겼는데, 노부부가 자주 처제를 만나러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모습에 나는 또 한 번 감동했다. 모두 조용히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렀기에 나는 훗날에야 소식을 들었지만 내가 목격했던 그런 시간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 잔잔히 남아 있다.

대부분 부부는 성격이 다르다. 우리 부부도 그렇지만 옛날 부부는 남편이 우선이어서 양보하면서 살아가기에 한화심 박사와 나는 대화가 잘 통화기도 한다. 집안일을 돌보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남편에 조금 불만도 있었지만, 처가 식구들을 돌보는 남편의 매력에 감동하면서 부부가 동고동락하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 한 박사는 살림은 서툴어도 부엌에서 직접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고 늘 겸손하며 참을성이 많은 조용한 분이다.

집안에는 부부의 취미를 느낄 수 있듯이 그랜드피아노와 벽에 걸린 명화들, 그리고 서가에는 수많은 책으로 가득하다. 큰아들 바이런은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뉴욕에 살며 인정을 받은 중견 화가이다. 지난날 한동안 인생 목표가 다른 부자지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는 상상이 간다.

김병목 부부(164년, 뉴욕공항)
김병목 부부(1964년, 뉴욕공항)

요즈음은 김 박사댁으로 뉴욕타임스가 매일 배달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 6시면 동네의 스타벅스로 가 신문을 사서 읽고 그곳에서 아침을 들곤 했다. 해마다 온 가족이 모여 지내기도 하지만 아들과 딸이 수시로 부모님을 찾아와 효도하고 간다. 최근에는 손녀딸 엘라가 한글을 배워 편지를 썼다며 한 박사는 기뻐서 나에게 그 카드를 보여주었다.

김 박사는 서대문 충정로 의대 지주(김성환)의 아들이기도 했지만, 조부와 집안 어른들로부터 민족교육을 잘 받아서인지 역사 의식이 분명하고 투철한 애국자이다. 은퇴 후에는 고국에서 의술을 펼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는 한때 인천의 맥아더 동상을 지키는 일에도 동참했으며 지난해까지도 해마다 고국을 방문했다. 최근에는 김 박사 부부는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인 우리 모국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며 무척 대한민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필자소개
경북 사범대 화학과 졸업
월간 ‘피플 오브 샌디에이고‘ 주필 역임,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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