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⑭] 그 다방에 들어설 때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홍미희의 음악여행 ⑭] 그 다방에 들어설 때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0.07.20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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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친구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70년대에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남자 셋, 그들의 부인이 된 여자 셋, 이렇게 6명이 지금은 혼자 사는 역시 고등학교 동창인 옛날 친구를 만나러 그가 사는 충남 대산으로 여행을 간다.

달리는 차 안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들에게 스타였다. 누군가 학교가 있던 곳에서 멀리 있는 호수의 야산에 소풍을 가서 전교생 앞에서 노래하던 친구를 떠올렸다. 비단 소풍뿐 아니어도 학교의 행사는 당연히 그 친구의 차지였다. 그가 송충이 많이 나오던 야산에서 불렀던 노래는 ‘찻집의 고독’이었다. 그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됐다. 하지만 노래를 하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뒤늦게 노래 부르는 직업을 택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친구 이야기로 흘러간다. “야, 걔 웅변 잘하던 애 있잖아, 걘 요즘 뭐하냐?” 그 웅변 잘하던 친구는 목사가 됐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다들 그 시절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나 보다. 누군가 “그 노래나 찾아봐라”하는 한 친구가 말한다. “김추자랑 나훈아가 있는데···” 모두 이구동성으로 ‘김추자’가 부르는 거로 들어보자고 한다. 그런데 막상 흘러나오는 노래는 모두가 생각하던 그것이 아니다. 박자도 느리고 뭔가 느낌이 다르다. “어, 아냐. 다른 거로 해봐”, ‘나훈아’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모두가 생각했던 바로 그 노래다. 같은 노래라도 연주자의 예술적인 베이스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김추자’는 미8군에서 노래하던 가수다. 당시 미8군의 음악은 한국의 대중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곳에서 연주되던 음악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고 노래, 춤, 밴드, 사회자까지 쇼의 성격을 갖춘 것이었다. 종합예술이었던 셈이다. ‘김추자’는 지금의 표현방식으로 말하면 ‘소울’을 부르는 사람이다. 느린 박자에 울렁거림이 있고 리듬을 타면서 춤까지 추던 사람이었다. 이에 비해 ‘나훈아’의 기본은 트롯이다. ‘나훈아’는 당시의 정통적인 트롯에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하여 노래했다. 음을 다양하게 끌어올리고 내리기, 강조하고 싶은 가사에 악센트 주기, 조성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기 등을 통해 예전과는 다른 트롯을 부르기 시작했다.

1970년대 김추자, 나훈아 앨범 재킷

그 시절 우리 가요는 미8군에서 새로운 문물과 형식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당시 대중음악의 스타들은 거의 미8군 출신이다. 조용필, 조영남, 김추자. 신중현 등 이들의 공통점은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이다. 당시 가수들이 가장 비싼 페이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미8군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고자 했던 사람들은 많았다. 그래서 오디션을 통해 가수를 뽑았고 그렇게 뽑힌 가수들은 당연히 가장 실력이 좋았다. 이 시절 ‘미제’라는 단어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신뢰와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가수 역시 미8군에서 연주했다는 것은 실력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후 대학을 중심으로 트윈폴리오, 양희은, 김민기 등이 외국가요를 번안해서 불렀고 대학생이 귀했던 당시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미8군의 음악과는 다른 서정을 들려준다. 60년대 미국의 음악은 사이먼 앤 가펑클, 밥 딜런, 비틀즈 등이 월남전을 겪으면서 반전음악을 노래한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서민들 사이에서 사랑받던 트롯 역시 전쟁과 다양한 음악적 영향을 받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해방 이후 트롯은 일본의 엔카와 음계가 비슷해서 왜색이라는 지탄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펜타토닉 즉, 5음계 구성은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나타난다. 또, 같은 음계를 사용한다 해도 어떤 음에서 꺾는지, 어떤 음을 생략하는지, 어떤 음에 꾸밈음을 넣는지에 따라 음악은 달라진다. 또, 사용하는 음, 시작하는 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악이 되기도 한다.

반전음악을 불렀던 사이몬 앤 가펑클(왼쪽)과 밥 딜런.

같은 곡도 음악의 형식에 따라 느낌은 달라진다. 똑같은 노래도 소울에 얹어 부를 수도 있고 트롯에 얹을 수도, 클래식에 얹어서 부를 수도 있다. 또 가사의 해석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그 다방에 들어설 때의 마음을 만날 사람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기대와 기쁨을 표현하면서 빠르고 밝게 부를 수도 있고, 그와는 다르게 그 다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다가올 이별에 대한 예감으로 슬프고 무겁게 부를 수도 있다. 음악의 표현은 가사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표현하는 형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연주자가 제2의 작곡자가 되는 셈이다. 어느새 모두 다 같이 ‘찻집의 고독’을 크게 부르면서 대산항으로 달려간다.

음악은 후각과 같다.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하다고 한다. 맛있는 밥 냄새, 빵 냄새, 혹은 누군가 즐겨 쓰던 향수, 이런 냄새들은 그 시절, 그 장소로 그대로 소환시킨다. 음악 역시 그러하다. 이들을 보며 나 역시 학교 다닐 때 노래 잘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신영옥’이다. 우리는 중학생이었고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신영옥’은 군계일학이었다. 수업하다가 지루해지면 선생님들도 슬쩍 핑계 대고 노래를 시킬 만큼 잘 불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앞에서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솔로로 연주했다. 그가 노래하는 ‘마더 오브 마인,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언제 들어도 좋았고 멋있었고 마음을 울렸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면 교실은 다른 곳이 됐다. 귀에 흐르던 노랫소리와 창밖으로 보이던 나무들의 흔들거림이 지금도 눈이 보인다.

4인조 락밴드 비틀즈. 왼쪽부터 폴 매카트니, 존 레논,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차가 정차해서 밖을 보니 창밖에 만나기로 한 친구가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다. 멋진 슈트 안에 하늘색과 흰 줄무늬가 있는 셔츠를 챙겨 입고 발에는 슬리퍼를 신고 나타난 친구는 한 눈에도 스웩이 넘쳐흐른다. 우리가 차 안에서 하나, 둘 내리자 친구의 표정이 점점 묘해진다. “야, 난 너네만 오는 줄 알았잖아.” 그의 부인들도 같이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온다고 항구에 가서 회를 조금 떠 비닐봉지에 덜렁덜렁 들고 왔는데,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난감해진 것이다. 그러자 눈치 빠르고, 경위 바른 한 친구의 부인이 말을 받는다. “걱정마세요, 오늘은 저희가 대접할 거니까 좋은 장소만 안내해 주세요.”

독곶은 현지의 직장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곳인가 보다. 바닷가에 포장마차처럼 여러 식당이 즐비하다. 친구가 씩씩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따라와”하는 곳으로 들어간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식당 안에 가득하다. 맨바닥에 테이블과 의자가 줄지어 놓여있고 안쪽 주방 앞에는 갓 잡아온 생선과 조개가 커다란 빨간 대야 안에서 물을 튀기며 뛰고 있다. 우리가 메뉴판을 보자 친구는 “그거 볼 거 없어. 내가 시키는 대로 먹어” 부인들은 음식을 기다리며 ‘찻집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노래를 그렇게 잘하셨다면서요.” 친구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얼굴에 웃음이 확 올라오더니 금방 한쪽 어깨가 탁 내려가면서 “쿵쿵 따, 쿵쿵 따” 입으로 리듬을 치면서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미 주변에 있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 친구가 발로는 박자를 맞추고 몸은 까딱까딱거리며 노래한다. 그 친구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은 그 시절의 자신을 본다. 노래를 부르다가 정신을 차린 친구는 “이제 그만”하고 그만 부르려 한다. 그렇지만 모두 같은 마음으로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합창한다. “아~~ 사~랑이란” 그러는 중 가리비가 나온다. 커다란 숯불을 아래에 깔고 불판을 얹는다. 커다란 숯불, 커다란 양동이, 또 손바닥만큼 커다란 가리비가 가득 담겨 옆에 놓인다. “이거 불 위에 올리고, 너무 익으면 딱딱해지니까 이 정도 상태에서 금방 먹으면 돼” 40년 전 일을 바로 어제처럼 얘기하는 이들은 “내 앞에 앉던 누구는 무슨 시간에 이랬지, 어떤 선생님은 그랬지, 누구는 무슨 반찬을 싸 왔지”라며 말을 계속 이어간다. 다음은 손목만한 장어다. 근래 들어 처음 잡았다는 손목만 한 굵기의 장어가 불 위에 놓인다. 기름이 흐르는 고소한 장어를 다 먹고 나니 다음은 낙지를 넣은 칼국수다.

우리는 배가 터질 듯 맛있게 먹고 자연스럽게 노래방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노래방을 연 곳이 없어 역시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친구가 꾸며 놓은 장소로 갔다. 그곳에서 마음껏 ‘찻집의 고독’을 불렀다.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기다리는 그 순간만은 꿈길처럼 감미로웠다. 약속시간 흘러갔어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싸늘하게 식은 술잔에 슬픔처럼 어리는 고독’ 빛나는 추억처럼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고 사람의 본질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수 억번 몰아친 파도에도 모질게 갈라진 곳 없는 충남의 바닷가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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