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12월에 남긴 소중한 일들
[해외기고] 12월에 남긴 소중한 일들
  •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 승인 2022.12.17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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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넘기면서 12월이라는 숫자를 보면 올 한 해가 저무는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허전해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정리해서 마무리를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된다. 그리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설레며 기다리는 나이는 지났지만 조금 들뜨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아기 예수의 탄생과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에 뜬 새 별 하나를 나침반으로 삼아서 기나긴 여정을 떠났다. 구세주가 탄생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막연하게 별 하나에 의지해서 낙타를 타고 사막의 밤길을 걸었던 동방박사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해본다. 그들은 허름한 말구유 지붕 위에 멈춘 별자리 아래에서 구세주의 탄생을 눈으로 확인하고 선물을 바친 후에 다시 먼 길을 돌아서 모국으로 갔다. 이제는 그들도 하늘의 별이 되어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사람들을 비추고 있지 않을까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밤하늘의 별을 생각하면 두 눈에 초롱초롱하게 담긴 낭만적인 별빛이 우선 연상되지만, 다른 의미의 별을 또한 떠올려 본다. 기독교 문화가 바탕인 호주 사회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조금 이른 11월 중순 무렵부터 시작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이번 12월 중에 각기 다른 두 개의 별을 만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연이어 초대받는 행운을 얻었다. 첫 번째는 지역 교회공동체가 주최한 ‘캐럴과 촛불’ 축제였으며, 두 번째는 6.25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호주 베테랑 할아버지들을 위한 ‘감사와 위로’ 의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스프링 힐 (Spring Hill)지역, 교회공동체의 캐럴과 촛불

주말의 오후, 호주인 친구의 초대로 딸 가족과 함께 스프링 힐(Spring Hill) 지역의 교회공동체에서 마련한 ‘촛불과 크리스마스 캐럴의 밤’ 축제에 참석했다. 다양한 메뉴의 저녁 식사, 음료수(커피, 티, 각종의 과일주스 ), 달달한 솜사탕, 구수한 팝콘. 나초, 햄버거 등등 혀와 코를 자극하는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어린이들에게는 각종 놀이기구, 풍선, 페이스 페인팅, 재미있는 사진을 찍기 위한 분장들, 전자 초, 형광 불빛이 나오는 팔찌 그리고 라이브 음악공연 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재밋거리가 준비돼 있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손녀도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뒤뚱거리며 신이 나서 잔디 위를 돌아다녔다. 지역 교회공동체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하며 나눔을 실천한 파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사랑을 듬뿍 담아서 나눔을 실천한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웃음이 가득 묻어나는 듯했다. 어둠이 서서히 퍼져갈 무렵, 교회 안에 모인 사람들은 초를 천천히 흔들며 합창단과 함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성스럽게 불렀으며, 노엘~ 노엘을 부르는 힘찬 노랫소리는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 느껴졌다. 합창단의 노랫소리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어서 가지고 있던 모바일 폰에 녹음을 해서 남겨 놓았다. 내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한번 참석하고 싶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축제의 밤이었다.

6.25 참전 호주 베테랑 초청, 감사와 위로의 크리스마스 파티

지난 12월 14일, 민주평통 호주협의회 브리즈번지회와 골드코스트한인회는 6.25 한국전에 참여했던 호주 베테랑 할아버지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살아계신 참전군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우정의 크리스마스 파티로서 연중행사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파티는 너랑에 있는 재향군인회관(Nerang RSL & Memorial Club)에서 열렸는데 홀의 유리창에 가평이라는 글자가 영문으로 새겨져 있어서 인상적으로 보였다.

치열했던 가평전투에 참전했던 기억의 산물로 여겨졌다. 이제 대부분의 참전 베테랑들은 연세가 90세를 훌쩍 넘긴 고령이어서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마음이 애잔해졌다. 식사와 선물을 전하는 것만으로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소중하고 귀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하는 동안 다큐멘터리 동영상 한 편이 상영되었다.‘6.25 한국전 호주군 참전용사, 그 가족의 목소리(Voices from Korean War Veterans’ Families)’라는 제목으로 평통 위원인 반주원교수가 호주 참전군인들의 가족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한국전에 참전했던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게 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Korean Foundation의 재정적인 후원을 받았으며, 한국전에 참전했던 호주 군인들에 대해서 중요한 역사적인 기록물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골드코스트에는 호주 군인들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가 캐스케이드 공원 안에 세워져 있다. 호주는 미국에 이어서 두 번째로 한국전에 참전하였는데 사망자가 340명, 부상자가 1,250명에 이르렀으며, 현재는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가족들에게는 아픈 상흔으로 남아있다. 한 군인은 한국전이 끝나고 호주로 돌아오면서 한국 태극기와 한국에 체류할 당시의 사진들을 가지고 왔었다.

현재, 그분의 아들, 스티브가 아버지의 소중한 유품들을 자료로 잘 보관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적의 생생한 일화를 소개했다. 스티브의 아버지는 안작 데이에는 그 태극기를 들고 베테랑의 행진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현재, 세대가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참전용사들의 행적은 후손들에게 흘러간 역사의 한 부분으로 기억될는지 모른다. 어느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이 두 살 때 함께 찍은 낡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 사진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아려왔다. 전쟁에 참전했던 대부분 호주 군인들은 20대의 젊은 나이였다고 해서 고개가 수그러졌다.

후손들을 통해서 듣는 참전군인들의 사연은 한국의 처참했던 전쟁역사를 되새기게 했으며, 그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루는데 받침돌이 되어주었다는 감회가 들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잊혀 가는 전쟁의 비참한 역사와 남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준 340명의 젊은이를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참전용사의 별이 하나씩 이 땅에서 사라지며 하늘에 오르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내년에는 과연 몇 분이 남아서 우리와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할 수 있을까….

종교적인 행사이든 공적인 행사이든 12월의 빛나는 별이 되어준 분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날짜를 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도 막연한 기분이 든다. 남은 삶에 기운을 불어넣고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각오는 늘 하고 있다. 내년엔 하고 싶은 어떤 일의 계획을 세우기보다 나의 미래와 시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새해맞이를 하고 싶다.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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