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한국전쟁과 전쟁신부…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삶과 역사①
[해외기고] 한국전쟁과 전쟁신부…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삶과 역사①
  • 정 나오미(미국 알칸사한인회장)
  • 승인 2023.08.1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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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미주이민 12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한국전쟁 휴전 70주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최근 출간된 <미주한인 동포사회의 발전과 도전 1903-1923>에는 국제결혼을 해서 미주에 진출한 한인여성들의 역사가 실려있다. 이 글을 정리해 연재물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올해는 미주 한인이민 역사 120주년, 한국전쟁 휴전 70주년,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다. 이민 초기 하와이에 정착한 102명의 한인이 하와이와 미국 서부 연안에 국한된 미주이민 역사 1기를 이뤘다. 이와 달리, 이민 제2기는 광복과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한국 여성들이 한국에 주둔해 있던 미군 병사들과 국제결혼을 하고, 미국에 귀환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물결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군사기지 근처의 소도시와 농촌 지역에 살았다. 특히, 1965년 신이민개정법 이후에는 가족 초청을 통해 미국 전역에 미주 한인이민 정착과 한인사회 형성을 위한 기틀을 닦아 놓았다. 이를 기반으로 지금의 미주동포들이 하와이나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국한되지 않고 알래스카에서부터 미국 전역에 걸쳐 대도시와 중소도시에 한인사회를 형성하고 우수한 소수민족으로 경제, 교육, 사회 등 다방면에 두각을 나타내며 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미국 전체지 역에서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활동하는 미주 한인사회 형성과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미주 국제결혼 여성들은 1964년까지 약 7,000명의 이민 2기를 이뤘다. 신이민법 개정 이후 이민 3기로 넘어가면서 숫자와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가족 초청을 통해 한인들의 미국이민이 큰 물결을 이루어 미주 한인사회 형성에 이바지했다. 또한 미주 국제결혼 여성들은 초청이민으로 온 가족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단체들을 만들었으며 이는 이민자들의 눈과 귀와 발이 됐고, 교회를 개척하고, 유학생들에게 한국 음식과 주류사회 정보를 제공하는 등 미주 한인사회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아울러 친정과 한국에 송금하여 한국경제 성장과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7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은 20만 명으로 증가했고, 점점 고학력 전문화 추세를 보인다. 미주 국제결혼 여성들은 미국 현지 주류사회와 미주 한인사회에서 경험했던 무수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권침해 속에서도 미 전 지역에 한국문화를 전파하고 보전하며 ‘자랑스러운 한국의 딸’들로 모국 대한민국의 세계화를 위해 헌신, 봉사하며 활발하게 공공외교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미주한인 역사에는 미주 국제결혼 여성들의 삶과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미주 한인사회와 어떤 연관이 있으며, 한국과 미주 한인사회 및 주류사회, 국제적 무대에서 어떤 공헌과 수난을 겪었는지 등 그들의 삶의 궤적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미주 국제결혼 한인 여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이 근면과 성실함으로 언어장벽과 문화충돌을 극복하고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들은 자녀들을 키우면서 어릴 때부터 한국말을 쓰게 하고 한국 음식을 먹이고 한국전통을 알도록 했다. 또 주류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자처하며 한인들의 문화적, 정치력 신장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민 초기 주류사회에서 경험했던 외로움과 인종차별, 재외 한인사회에서 받았던 편견으로 인한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던 친목 모임을 발전시켜, 어려운 상황에 빠진 한인동포들에게 도움을 주는 비영리단체로 발전시키는 당당한 ‘한국의 딸’들이 되어 한국의 세계화와 다문화에 앞장서고 있다.

필자는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의 한사람으로 지금까지 미주 한인이민사 제2단계와 3단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삶의 궤적을 45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 본다.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큰언니와 오라버니 역할을 해주셨던 전 에드워드(한국명 송전기),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님, 이중문화가정목회전국연합회 조하경 목사님은 이미 고인이 됐다. 또한 2004년 ‘무지개의 집 2차 수련회-무지개 평화 여성 대행진’을 준비하며 해외 국제결혼 한인 여성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인권신장에 앞장서신 여금현 목사, 서진옥 사모, 리아 암스트롱(한국명 김예자) 회장에 대한 기억도 새롭다.

2023년 10월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발표된 재외동포재단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미주 한인사회가 120년 동안 3번의 이민 변천단계를 거쳤다. 이를 통해 265만 명이 넘는 미주 동포사회로 성장 발전하여 세계에서 제일 많은 한인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미주 한인이민 역사의 2단계에서 미주 한인사회를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던 이들은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이민 초기 같은 한국인들에게조차 기지촌 여성으로 매도되면서도, 미국 시민과 한국인의 이중정체성을 정립하여 다른 민족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체득했다. 1964년까지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은 6,000여 국제결혼 한인여성과 3,000여 전쟁고아, 그리고 소수의 유학생들이었다.

1965년 미국에서 새 이민법이 발효된 뒤 한국이 2만 명의 쿼터를 받게 되자,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이 한국의 부모, 형제, 자매들을 초청할 수 있었다. <나도 한국의 딸>(I am Also a Daughter of Korea)을 쓴 송 전기(Chon S. Edwards) 여사는 가장 오랜 세월 동안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쏟아온 분이다. 1952년 도미하여 국제결혼 여성의 선구자이면서 1963년 최초로 ‘한미부인회’를 창설한 송전기 여사는 이 책에서 70여 년이 넘는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의 존재(Identity)의 의미를 잘 조명하고 있다. 또 재외동포재단 3대 이사장을 역임한 이광규 명예교수도 2004년 ‘국제결혼 여성들의 나아갈 길’이라는 강의에서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이야 말로 21세기 글로벌 국제화 시대를 선험적으로 살아온 분들이라 평가했다.

그러나 미주 2단계 이민사의 주역인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총체적인 여전히 없다. 지금의 미국 한인동포의 70%는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이 초청했고, 전쟁 후 가난에 허덕이던 친정의 부모, 형제, 자매를 미국에 초청해 교육, 직업알선, 사업체 마련 등 미주 한인이민 정착과 이민사회 형성에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는 논문이나 기록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삶의 궤적은 누락됐다. 지난 70년 동안 ‘아이덴티티’의 블랙홀 속에 있었다.

2단계 이민기의 주역인 국제결혼 여성들의 삶의 궤적이 이민역사에서 빠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주 국제결혼 여성들의 거주지가 미국 전역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군사기지 주변이라 한인사회와 떨어져 살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육군, 해군, 공군, 그리고 해병대와 해안경비대 군사기지는 저마다 특성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워싱턴주 시애틀은 복잡한 해안선에 수심이 깊어 대형 군함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해안요새지로 주변에 포트 루이스 등 군부대가 밀집해 있으며, 1만 명이 넘는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이 살고 있고, 대한부인회가 생긴 곳이다. 미주리주와 일리노이주에도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공군기지가 많은데 지형 조건상 비행기 소음이 별로 나지 않는 천혜의 장소이다. 텍사스주의 킬린과 샌안토니오에는 1만5천에서 2만 명, 군장교학교가 위치한 캔자스주 노브롤스, 노스캐롤라이나 주포트그래그 육군부대 주변에도 7천 명에서 1만 명이 거주해오고 있다.

둘째,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의 미주이민 정착은 미국의 50개 주 전역에 형성된 700개가 넘는 광범위한 군사지역이며, 대부분이 대도시가 아닌 근교 소도시였다. 그래서 연구자들이 장기간 거주하면서 연구 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셋째, 국제결혼 한인여성에 대한 한국인의 오래된 편견이 있을 수 있다. 미주 한인사회(특히 이민 1세들)의 다수가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미주 국제결혼 여성들에게 부정적인 시각과 편견으로 대했다. 한인회나 한인교회에서 봉사해오던 수많은 미주 국제결혼 한인여성들이 미국 주류사회의 인종차별보다도 한국인들의 편견에 더욱 부당함을 느끼며 살아왔다고 했다.

필자 소개
정나오미(Rev. Dr. Naomi Rogers)
알칸사주 미국연합감리교 목사
알칸사주 22회 Silver Haired Legislator(은발주의원)
알칸사한인회 13대 회장
월드킴와(World-KIMWA, 세계국제결혼 여성총연합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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