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㊹] ‘녹양이 천만사ㅣ들’과 ‘봉돌’
[우리 시조의 맛과 멋㊹] ‘녹양이 천만사ㅣ들’과 ‘봉돌’
  • 유준호 한국시조협회 자문위원
  • 승인 2023.10.16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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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녹양이 천만사ㅣ들
- 이원익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ㅣ들 가는 춘풍(春風) 잡아 매며
탐화봉접(探花蜂蝶)인들 지는 곳을 어이하리
아모리 사랑(思郞)이 중(重)한들 가는 님을 잡으랴

이원익(李元翼 1547〜1634) 호는 오리(梧里),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 문충공(文忠公)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버들가지가 수많은 가닥 실이라 해도 봄이 가고 꽃이 지는 것을 어찌 묶어둘 수 있으랴. 그처럼 인간의 사랑이 제아무리 중하다고 해도 뿌리치고 떠나가는 임을 어떻게 할 도리가 있겠는가 하고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춘풍’과 ‘지는 곳’은 결국 종장의 ‘가는 님’을 상징하는 소재로. 화자가 임을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은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순리에 따르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종장에 가서 떠나는 임에 대해 체념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순리에 따르는 인간적인 너그러움이 나타나고 있는 시조이다.

* 현대시조

봉돌
- 박구하

물 먹고 물 먹어도 못 떠난 세월의 강
이목구비 다 내주고 어깨선도 눅어지고
이제는 그냥 굴러도 아무데나 어울리는 돌

 
박구하(朴九河 1946~2008) 시인은 1998년 시조 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이 작품은 세상을 살아 가다 보면 아무 곳에서나 잘 어울리고 잘 적응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몽돌 같다고 한다. 몽돌은 둥글둥글하여 시냇가나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이다. 귀한 돌이거나 반듯한 돌들은 그 쓰임이 많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다. 몽돌은 발에 채이면 채인 대로 굴러가는 돌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이와 흡사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시인은 “이제는 그냥 굴러도 아무데나 어울리는 돌”이라 하였다. 할 말은 하고 직선적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세상은 몽돌 같은 사람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세상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남에게 순응만 하며 사는 사람, 늘 체면도 벗어던지고 기죽어 사는 이들을 봉돌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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