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멈춰지지 않는 인연
[이영승의 붓을 따라] 멈춰지지 않는 인연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3.10.26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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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나와 초등학교 동창이다. 지난번 만난 지 5년쯤 되었겠거니 생각했는데 날짜를 추적하니 벌써 9년 전이다. 3년 전 첫 수필집을 출간했을 때 하루라도 빨리 스님께 전하려고 했는데 하루 이틀 미룬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굳이 변명하자면 코로나 때문이기는 하나 그도 핑계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졸업 후 스님과 만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항상 그랬듯이 간밤에도 마음이 들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왜 스님을 만날 때마다 이토록 가슴이 설렐까?

스님은 부산 상고 1학년 때 큰 수술을 받아 건강을 지키기 위해 출가했다. 주산이 4단이라 조계사 회계를 보게 되었으며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아 종단의 지원으로 동국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도 다녀왔다. 일찍이 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 주지와 청주 불교방송 사장 등을 역임 후 지금은 현암사 주지이시며 법명은 도공(道空)이다. 현암사는 법주사의 말사(末寺)로 역사 깊은 절이다.

통일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이 암자에서 수행할 때 절 위치가 절벽에 매달린 것 같아서 현암사라 이름 지었으며, 1984년 도공 스님이 이 절의 주지일 때 신도 10여 명이던 작은 절을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을 신축하는 등 신도 5천 명이 넘는 오늘의 대사찰로 변모시켰다. 절에서 내려다보면 대청호가 한눈에 조망되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2시간 넘게 차를 달려 절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스님을 보고 싶은 마음에 수백 미터나 되는 급경사 계단을 숨을 몰아쉬며 오르니 스님이 절 마당에서 기다리다 합장하며 맞이했다. 건강이 어떤지 궁금했는데 맑고 온화한 모습이 세월을 비켜 간 듯 여전하시다. 넓은 절 방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9년간 쌓인 회포를 순서도 없이 풀어 놓았다. 대화 중에 스님께서 최근 법주사의 회주(會主)스님으로 추대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잠시 얘기가 멈추자 갖고 간 수필집을 꺼내 지난번 방문 후 감회를 쓴 ‘현암사의 하룻밤 우정’을 찾아 스님께 읽어 드렸다. 곧은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듣는 스님의 모습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스님과 겸상으로 저녁 공양을 마치고 못다 한 얘기를 이어갔다.

밤이 깊어지자 스님이 “오늘은 이만 자도록 해요”라며 내 이부자리를 손수 펴 주고, 밤에 소변을 보러 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걱정하여 내 손을 꼭 잡고 해우소도 안내해 줬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고 온갖 상념이 뇌리를 스쳤으며 지난날 스님과 있었던 아득한 추억들이 떠오르자 잠은 더욱 멀리 달아나버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9년 후이다. 군 입대 신체검사장에서 멀리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앳된 스님이 한 분 보였다. 아무래도 낯익은 사람 같아 슬며시 찾아가 “혹시 김용서가 아니냐?”고 물으니 말없이 합장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다음날에도 신체검사가 계속되기에 “오늘 밤은 어디서 자느냐?”고 물으니 여관에서 잘 예정이라고 하여 함께 내 하숙집으로 갔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밤새워 나누고 출가한 동기도 들었다.

두 번째 만남은 그로부터 39년 후다. 우연히 한 친구로부터 그가 현암사 주지로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날 달려가서 하룻밤 자고 왔다. 그리고 이번에 찾아간 것이 또 9년째다. 스님과 세 번의 재회가 모두 9라는 숫자가 일치하니 이 얼마나 기이한 인연인가?

내가 고교 1학년 때다. 당시 유명하던 동화사 홍원 스님의 설법을 듣고 감동해 나도 스님처럼 평생 수도자의 길을 걷고 싶었다. 여러 날 고뇌 끝에 출가를 결심하고 동화사로 스님을 찾아갔다. 철없는 어린 학생이 당돌하게 출가하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기가 찼으랴! 하룻밤을 곁에 재우면서도 말 한마디 없던 스님이 다음날 헤어질 때 “지금은 학생 신분이니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중에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는 단호한 말씀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각오와 용기만은 가상하다. 어쨌든 심각했던 내 인생의 대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려버렸다. 그런데 내가 승복을 입지 못하고 돌아온 바로 그해에 도공 스님이 출가했다니 이 또한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그 후 나는 고교 졸업 때까지 불교학생회에 다니며 열심히 불경을 배우고 기회가 되면 수련회에도 다녔으며 파계사에서 법명도 받았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바쁜 일상에 쫓겨 절에는 거의 나가지 못했으며 지금은 남들에게 불자라는 말도 자신 있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비록 출가하지는 못했으나 지금도 길을 가다가 목탁 소리를 들으면 발길이 멈춰지고, 절에서 자는 것이 이토록 마음 편한 것을 보면 아직도 불심이 완전히 사그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번 왔을 때 몇 개월이라도 도공 스님의 옆방에 기거하며 숨소리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하고 염원했는데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으니 말이다.

쌍화차를 마시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 수필집을 내면 늦지 않게 찾아오겠다고 하니 시간 나면 언제라도 오라는 의미의 미소를 주셨다. 산사 주변 나무들이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나무도 늙는 것이 싫어 가슴을 태우다 붉게 멍이 드는 것일까? 나도 청춘이 한없이 길 줄 알았는데 요즘은 몰래 젊음을 뺏어간 세월이 너무 야속하다.

귀경길 도로 정체가 심해지자 드디어 내가 세속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애틋한 마음으로 대해주는 스님 생각에 지루한 줄 몰랐다. 나는 전생에 스님과 무슨 인연 있었기에 이토록 긴 세월 마음이 끌려며 잊지 못할까? 이생의 인연 더 깊어지기를 염원하며 현암사를 향해 합장했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부회장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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