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⑭] 피부색은 달라도 사람은 같다 – 이용완 前 주르완다 KT지사장
[아프로⑭] 피부색은 달라도 사람은 같다 – 이용완 前 주르완다 KT지사장
  • 이용완 前 주르완다 KT지사장
  • 승인 2021.07.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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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KT에서 29년간 근속한 이용완 지점장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주르완다 KT지사장으로 근무했다. KT가 르완다에서 가장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한 시기였다. 본사에서 이 중요한 시기에 이 지점장을 르완다로 보낸 이유는 그가 특수 지역에서 파견근무한 경험이 풍부하며, 그동안 뛰어난 친화력을 앞세워 높은 업무성과를 견인했기 때문이었다. 르완다에서 정보통신을 총망라하는 국가사업을 추진한 KT의 입장에서 양국간 원활한 교류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지점장은 4년간 르완다에서 근무하며 상당한 인맥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민감한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했다. 그는 일찍이 깨달은 인생의 진리가 있었다.

모든 사람은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생각하는 방식은 같다는 사실이었다. 민족과 언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려낸다는 이야기. 이 지점장은 자신의 지론을 바탕으로 르완다 사람들을 진심 어린 태도로 대한 덕에 누구보다 빨리 현지화에 성공했다. 두터운 신뢰 관계를 구축하여 많은 사업을 수월하게 진행했다. 또 자신의 인맥을 르완다에 공헌하는 방향으로 역이용하며 덕망을 쌓았다.

르완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현실로 이뤄낸 나라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르완다는 아프리카 국가 중 부패 지수가 가장 낮으며 외국인 투자자가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자랑한다. 2013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르완다는 기업하기 좋은 국가 52위를 차지했으며, 이는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높은 순위였다. (2019년 동 지표에서 르완다는 세계 29위를 차지했다!) 르완다 사람들은 근면성실하며, 초등학교가 의무교육과정에 속하고 대학이 31개 존재하는 등 높은 교육열을 보인다. 또 인구의 평균연령이 낮은 만큼 인터넷 사용인구의 증가세와 잠재력도 높게 나타났다.

르완다는 내륙국으로 갖는 약점을 ICT 발전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 탄자니아, 우간다 등의 주변국을 연결하는 국가 기간망을 만들어 이를 국가경제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을 계획을 수립했다. 르완다 정부는 한국을 경제성장과 IT구축사업의 롤모델로 삼고 이 중차대한 사업을 KT에 맡겼다. KT는 2007년 와이브로와 광케이블망 구축 사업 건으로 계약을 성사한 이래 국가 백본망 구축 사업, 전국 광케이블 구축 사업, 보안 메일 시스템 구축 사업, 국가 정보 보안 사업 등의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순차적으로 완수했다.

나는 1999년 KT에 입사한 이래 줄곧 현장에 파견되어 근무했다. 군산 무선국, 군산 미공군 기지, 인천국제공항 등 특수한 지역과 사무소에서 다양한 파견근무 경험을 쌓았다. 특히 군산에 위치한 미공군 기지는 2년 근무 조건이어서 영어도 공부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건만, 거의 10년을 꼬박 그곳에서 근무했다. 근무 기간이 종료될 때마다 사령관들이 발령을 취소하게끔 본사에 메일을 보내며 매번 나를 다시 잡았다.

당시 본사 입장에서는 군산 미공군 기지가 전라북도에서 가장 큰 매출을 자랑하는 고객이었던 터라 부대의 요구에 경청해야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매사에 외향적이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이라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또 다양한 사회 조건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본성은 다 같다고 여긴다. 자신에게 잘해주면 잘해주는지 알고 못 해주면 못 해주는지 빤히 안다. 심지어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미군 부대에 혈혈단신 파견되어 근무했을 때도 미군들과 가족처럼 잘 지냈다.

2011년 르완다 정부와 관계가 점점 더 중요해지자 본사에서 넌지시 르완다 파견 근무를 제안했다. 당시 나는 인천국제공항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르완다는 KT가 전개하던 국제사업 중 핵심사업에 속했다. 나는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아프리카에 가보겠냐며 회사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있었다. 일찍이 사람은 다 똑같다는 사실을 깨쳤기에 낯선 땅에 떨어져도 그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며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프리카나 르완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음에도 말이다. 나는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을 상상하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으나, 실제로 경험한 르완다는 사회·경제 다방면에서 체계를 잘 갖추고 있었다. 특히 대통령 직속기관에 속하는 르완다개발청이 제공하는 원스톱서비스와 공직사회의 청렴한 분위기에 놀랐다. 왜 르완다를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국가로 손꼽는지 알 것 같았다.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을 먼저 보라

물론 모든 일이 양면성을 띠듯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기관들이 매사를 대조 검토하다 보니 일을 진행하는 속도는 다소 떨어졌다. 또 민감한 사회문화적 차이도 있었다. 르완다는 1994년에 일어난 제노사이드로 인해 3개월 동안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이 비극을 겪은 르완다는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처벌보다 화해와 공존의 길을 선택했다. 제아무리 재판이 신속히 잘 이뤄져도 전체 인구가 1,200만여 명인 작은 나라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엉켜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르완다는 ‘가차차(Gacaca)’라는 전통 방식의 재판에 따라 마을사람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위해 봉사하게 하는 등 낮은 수준의 형벌을 내리고 용서했다.

그 결과 르완다는 상처를 빠르게 봉합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처가 완전히 아물 수는 없었다. 르완다는 대학살이 일어난 4월 7일부터 일주일간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며 억눌렀던 상실감과 슬픔을 드러냈다. 나는 르완다 정부가 추진한 이러한 해결책이 인류사에 길이 남을 성숙하고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여긴다. 르완다 사람들은 불행을 겪은 후 ‘종족’ ‘종교’ ‘정치’ 이 세 단어를 금기어로 여기고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발설하는 행위를 삼간다. 사회의 암묵적 합치를 알고 나 또한 르완다 사람들과 이를 묻고 논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조심했다.

내가 르완다에 발령받아 갔을 때는 KT가 르완다와 다년간 체결한 사업을 실제로 추진하고 성과를 내야 할 중요한 시점이었다. 또 이 경험을 토대로 아프리카 다른 나라로 진출할 길을 모색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미션도 있었다. 내가 지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지사는 1차 사업을 완료하고 르완다 정부로부터 미수금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직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일을 내게 주어진 1차 미션 중 하나라고 여겼다.

나는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르완다개발청장이 어떤 인물인지 먼저 알아 보았다. 르완다 정부는 부정부패가 발생하는 데 있어 민감했기 때문에 오해를 부를 만한 행동은 삼가야 했다. 나는 그에게 노골적으로 문제를 말하기보다, 먼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로서 마음을 나누고 친해지자 청장은 나를 집에 초대했다. 집에서 자연스럽게 식사하며 청장과 연을 이어가기를 3개월, 나는 우리 지사가 직면한 문제를 진지한 태도로 털어놨다. 청장이 여태껏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내 말을 경청하고 깊이 공감했기에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수 있었다.

르완다 사람들은 한번 친해지면 상대방을 ‘브라더(Brother)’라고 부른다. 나는 늘 사업은 물론 개인의 삶을 전개하는 데 있어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여긴다. 하물며 한번 친분을 맺으면 공적인 관계이더라도 형제라고 호칭하는 르완다 사람들을 보며 이곳은 인적 네트워크가 더 중요한 나라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아프리카 국가와 지역에서 수주 사업이나 투자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중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어떤 사업이든 입찰 과정을 거칠 경우 중국을 이길 승산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신뢰 관계를 쌓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KT가 르완다와 더 지속적이면서 원활한 사업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틈만나면 르완다 정부인사나 현지 이해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영어 발음이 다소 엉성하고 구사할 수 있는 어휘가 풍부하지 않더라도 정확히 의사 전달하고 전달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또 소통의 한계에 부딪힐 때는 몸을 쓰고 글을 쓰면 됐다. 그렇게 공을 들이다 보니 한둘 마음을 열었다. 사람들은 내게 아무리 어려운 인물일지라도 세 번 만나면 친구가 된다며 무척 신기해했다.

결국에는 사람이다

나는 내 자리에서 베풀 수 있는 최대치를 베푸는 행위를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관계나 평판의 문제도 있지만, 꼭 그런 목적의식이 아니더라도 어려서부터 나누고 베푸는 일을 즐겼다. 그런 자세와 마음가짐이 르완다에서 우리 회사는 물론 내 입지를 다지는 데 충분한 양분이 됐다.

르완다에서 쌓은 경험과 인맥을 통해 난문제를 해결한 적도 많았다. 하루는 지사로 엄청난 세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놀라서 확인하니 2004년에 발생한 세금을 이제야 적용한 내역이라고 했다. 르완다는 선거가 임박하면 세금과 관련한 법령을 수정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로 인해 차후에 세금이 발생할 거라는 사실을 본사, 지사는 물론 르완다 정부조차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출혈이 큰 건이어서 직원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관세청장을 직접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단지 만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때마침 정부 유관 부처에 근무하는 절친한 차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외국업체가 현지의 급변한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정보와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여럿이라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르완다에서 쌓은 친분과 네트워크로 세금이 부과된 경위와 이유를 신속히 파악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부과된 세금을 10분의 1로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르완다에서 근무하는 3년 동안 많은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만큼 내 귀국 소식을 들은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나 또한 그곳의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지금 그 인연들은 이어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근무하면서 아프리카 국가와 관련한 이슈가 있을 때면 사람들이 무조건 나를 찾는 것이다. 또 아프리카에서 친분을 쌓은 이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면 근무처가 공항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가장 먼저 반가이 맞이한다. 정말 재미있는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은퇴하면 다시 아프리카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 가서 나의 ‘브라더’들과 회포도 풀고, 이곳저곳을 다시 여행하며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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