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뮤지컬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 관람 후기
[정대성 칼럼] ‘뮤지컬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 관람 후기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2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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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불리 공부하다 만 것들이 숙제로 쌓여 있지만, 시간이 그저 지나가기만 한다. 뮤지컬 작품들을 연거푸 봤는데, 극평을 쓸 엄두도 안 난다. 필자가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를 다녔을 때, 공연예술학 전공 수업도 들었고 국문과에서는 희곡 전공이었는데도, 그쪽 방면의 학점이 일부 비교적 안 좋았었다. 시나 한문 등 다른 전공을 택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면서도, 동시에 한류 문화를 견인하는 드라마, 영화와 관련 있는 전공을 선택했다는 데에 위로를 느끼기도 한다. 동시에 생각해보니, 연극, 희곡은 필자가 일본 동경 대학생 시절에 정의신 씨, 김수진 씨, 고 김구미자 씨, 고 최양일 감독 등 재일한국인 연극, 영화인들과 사계(斯界)에 조금이나마 이래저래 관여했던 관계상 필자에게 어떤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었다.

최근 <파우스트>, <베토벤>이 상연되고 있었기에 보러 가고 싶었지만, 바빠서 못 봤다. 헌데, 일본에서 젊고 아름다운 신인 여배우가 방한해 여러 날 안내하게 됐는데, 뮤지컬을 보고 싶다기에 여러 작품들을 보여줬다. 관람한 작품들은 <모차르트>, <아르토, 고흐>, <수레바퀴 아래서>, 그리고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평론가로 베르그송주의자인 고바야시 히데오의 <모차르트>, <고흐의 편지>,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고등학교 시절 필자에게 압도적 영향을 준 책들이라 위 세 작품에 쉽게 끌렸는데, <스웨그에이지>라는 작품은 과문으로 듣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알고 보니, 2018년 말에 쇼케이스를 상연했으며, 초연은 2019년으로 해마다 두어 달 정도씩 상연돼왔고, 올해는 8월 2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상연 중이다.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까지 노미네이트됐으나, 남우신인상, 여우신인상만 수상했고, 제5회 동 어워즈에선 작품상, 안무상을 보탰다. 일본 여배우에게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고른 작품이었으나, 세종문화회관의 대작 <모차르트>에 맞먹는 감동을 받았으며, 제일 만족스러웠다.

우연의 일치일까, 요즘 세태를 반영해서일까, 네 작품 다 ‘미친 부모’, ‘미친 세상’ 대 ‘나’의 대립, 갈등을 그린 것들이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양육비를 자신에 대한 아들의 빚이라고 주장하며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음악을 만들고 돈을 벌어 빚을 갚으라고 무섭게 독촉한다. 한스의 어머니와 교장 선생님은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시인 친구의 악영향으로 보고 우정을 끊으라고 강요한다.

아르토, 고흐는 자신을 광인 취급하는 박사에게 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 미친 것은 세상이라고 외치며 몸부림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권력자에게 반항하여 빈으로 도망가 자유를 얻어 에란비탈마냥 도약하고, 후세에 길이 남을 명곡들을 작곡한다. 한스는 한 번은 친구를 배신한 자책감에 시달리지만, 결국은 친구와 자연을 선택하여 신학교를 등진다. 고흐는 세상 아무도 보지 못했던 자연을 발견하며 자신만의 터치, 색깔을 모색하고, 아르토는 ‘잔혹한 세상’에 대항하듯 ‘잔혹한 연극’을 창조한다.

<스웨그에이지>의 남자 주인공 단, 여주인공 진은 어떠한가? <스웨그에이지>의 배경은 ‘상상 속의 조선’이다. ‘시조가 국가 이념인 조선’이란다. 백성들은 시조에 자신들의 삶의 고단함과 역경을 담아내며 살아왔는데, 시조와 관련된 역모사건 이후 시조 창작이 금지된다.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다며 그 사건의 주모자로 낙인찍혀 처형당한 자모는 단의 아버지이다. 백성들의 시조 창작을 위험시해 금지하게 하고, 자모를 반역자로 몰아 처형당하게 한 인물이 왕의 측근이자 ‘시조대판서’인 홍국인데, 진의 아버지이다. ‘swag(스웨그)’는 현재 전 세계 팝 가수들, 특히 랩퍼들이 쓰는 용어이며, ‘자신만의 맛깔, 멋’이란 뜻이다. 또 ‘휘청거리며 흔들리다’, ‘느슨하게 축 늘어지다’라는 뜻도 있다.

‘스웨그 에이지(swag age)’라는 제목은 아마도, 주인공, 단, 진이 상징하듯 젊은이들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멋을 찾아 헤매며 성장해가는 과정’이라는 뜻인 것 같다. 이 작품 줄거리의 씨실은 단, 진이라는 두 남녀 주인공이 각각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의해나가느냐는 도정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귀화하여 충성을 맹세한 ‘사야카’ 김충선 같은 무사가 있었는데, 그런 이미지인지 일본인 닌자 ‘룰루랄라 조노’는 홍국의 수하이지만, 스웨그를 보이며 극 전개에 맛깔스러운 재미를 더해주다가 막판에 반전을 일으킴으로써, 단, 진의 각각의 아버지와의 관계 재설정이 이루어지며 대단원을 맞는다.

단과 진이 맞서는 ‘운명’은 이 작품의 키워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희곡작가, 김우진의 ‘운명’이 생각났다. 지방 관료로서 갑오년 동학농민전쟁의 진압자이자 목포의 갑부가 된 김성규의 아들 김우진의 일기에는 ‘운명’이라는 말이 가슴 아픈 절규와 함께 많이 나온다. 김우진은 ‘운명’ 앞에서 패배해 비극의 주인공이 됐지만, 이 뮤지컬은 해피엔딩이다.

한편, 이 이야기의 날실은 죽은 자모와 뜻을 함께하여 관직을 버리고 재야인사가 된 십주의 골빈단이 민중들의 지지를 얻어가면서 ‘조선시조자랑’ 대회에 참가하여, 빌런(악역) 홍국과 대결하며 왕에게 민중들의 진심을 호소해가는 과정이다. 대단원에서 왕이 골빈단과 백성들에게 사과하며 반성하면서 홍국을 내쫓는 것은 유교적 권선징악의 예정조화랄 수도 있지만, ‘춘향전’과 같은 한국의 전통적 해피엔딩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비극’, ’희극’ 하는 이분법에서 아시아 전통극은 자유로웠고, 그 전통이 현대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도 반영돼있다. 필자는 이전에 일본의 드라마, 영화가 아리스토텔레스 극작법에 가까운 것과 비교해, 한국적 극작법이 서양화의 결핍으로 여겨졌었지만, 이제는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 레비스토로스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바이다. 실지로 비서구권에서 한류 드라마,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의 일단은 이런 데 있지 않나 싶어서도 그렇다.

필자에게 압권은 극 클라이맥스 직전에 단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갈 것을 다짐하는 장면이다. 아버지가 ‘꿈꾸는 세상은 오지 않네’ 한탄하며 죽었다면, 단은 아버지가 못 이룬 ‘새로운 세상’을 다시 꿈꾼다. 개인적인 감회를 털어놓는다면, 필자가 학생연극에 덤벼들었다가 지쳐서 그만둔 그때 그 절망이 생각나면서, 지금 필자의 눈앞에서 아들 같은 단이 필자의 뜻을 이어받고 일어서고 있는 모습이 현전(現前)하여 현상해 나타난 것처럼 느껴져 눈물을 금할 길 없었다. 역사는 20~30년 주기로 돌아간다. 1894년, 1919년, 1945년, 1960년, 1980, 87년, 그리고 2018년~현재이다.

헌데, 작품 전체에 넘치는 끼와 힘은 이미 칭찬받을 대로 받고 있지만, 음악, 안무, 앙상블, 춤, 그리고 가창력의 장난 아님이다. 한일 간에서 팝 싱어들의 춤사위를 비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일본 가수들보다 한국 가수들이 압도적으로 춤을 잘 춘다는 평가이다. 케이팝의 댄스가 세계적으로 평가받고 있듯이 이 뮤지컬 작품의 춤사위는 그 정도로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확신한다. 케이팝 가수들이 피눈물 나는 노력을 알기에, 더 이상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손발가락 끝, 머리끝의 각도, 속도, 뻗기, 흔들기, 힘주기, 힘 빼기 등이 모두 완벽하다. 양반춤은 근대조선무용의 창시자 최승희의 춤사위가 생각났고, “모두 양반이 되면, 나라 전체가 평등해지는 것 아닌가?”라고 말씀하신 나미키 마히토 교수가 생각났다.

필자는 국가적 프로젝트였던 뮤지컬 <명성황후>가 세계적으로 실패했음을 당연하다고 ‘공연예술학’ 리포트에 써서, 김문환 교수의 미움을 산 적이 있었지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그 실패작은 집어치우고, 이제 이런 새로운 작품을 세계로 순회공연을 시키는 일을 국가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으로 안다. 특히 <스웨그에이지>는 퓨전 사극에다가 팝송이나 랩과 같은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한국의 국악, 전통 음악에 녹여들이는 데 완전히 성공한 작품인 만큼, 세계 시민들이 보기에 호응이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식 마당극, 토리극, 영화 <왕의 남자>가 된 뮤지컬 <이(爾)> 등 수두룩한 시도들이 있은 끝에, 드디어 완성작의 하나의 유형을 본듯하다. 생의 도약으로 창조적 진화가 이뤄진 것이랄까?

끝으로 한 마디만, 창작 시조를 쓰고 있는 시인으로서 고언을 덧붙인다면, 시조를 세계화하는 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시조창이나 가곡창이 아니더라도, 사설시조를 랩처럼 읊을 수도 있다. 평시조의 일부가 화려하게 인용된 묘미는 있었지만, 시조의 형식미를 제대로 감상하게 한 곡은 <단심가> 한 곡인데, 정몽주의 시조를 빌런이 노래함으로써 빌런의 다면성을 부각시키는 의도였다고는 하지만, 그 타당성에는 다소 의문이 남았다.

또한, 황진이, 서경덕, 임제, 허균, 매창 등의 이미지, 냄새라도 나왔으면 했다. 대사에는 ‘초야에 묻힌 선비, 사림’ 같은 말이 나왔지만, 너무 백성들의 민권 대 양반, 왕권으로 사회를 이분화해 양반의 나쁜 측면만 그려진 것 같고, 상상 속 민중들의 국봉관은 나왔지만, 실지로 시조의 산실의 하나였던 유곽, 기생집은 나오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볼 때는 <국어> 교과서에서 배워서 익숙하지만, 외국 공연을 할 때는 고전작품에 대한 지식이 없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섹시한 기생을 등장시켜 눈요기 장면을 삽입하는 등 모종의 궁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2017년의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의 학사 창작 뮤지컬 <외쳐, 조선!>에서 비롯됐다고 하니 그 젊음의 힘이 놀랍다. 이런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많은 젊은 신인들이 한류 뮤지컬 발전을 이어가 주길 바란다. 국내 롱런도, 세계 순회공연도 하고 원소스멀티유스(OSMU)로 드라마, 영화, 게임 등으로 리메이크도 되길 원한다.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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