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92] 캠프 데이비드 합의와 엘리제 조약
[유주열의 동북아談說-92] 캠프 데이비드 합의와 엘리제 조약
  •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1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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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고 있는 지인은 자녀들에게 우리 나라 한국을 지구본에서 찾아 가리킬 때 나라가 작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바로 이웃에 중국, 러시아 등 큰 땅을 가진 나라가 있어서인지 모른다. 중국만 해도 한반도의 50배, 남한의 100배다.

한국이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의 선진국에 들었다고 하지만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한국의 역사는 기구하였다. 오랜 기간 중국의 속국처럼 독립의 상징인 연호도 써보지 못했고 20세기 들어와서 근대화가 빨랐던 이웃 나라 일본에 의해 병합되어 잔혹한 지배를 받았다.

일본이 근대화에 빨랐던 것은 일본 열도가 미국 등 해양세력의 접근이 용이한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점이 있었고 새로운 문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유연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역동성은 새롭게 배운 근대화 실력으로 청일 및 러일 전쟁을 거쳐 과거 불교며 한자 등을 전수해준 문화의 젖줄이었던 이웃 나라까지 야만의 프레임으로 식민지로 삼고 급기야 광활한 만주에 이어 중국 본토까지 침략하자 근대화를 가져다준 서양을 긴장시켰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오만하고 불패의 에너지는 미국이 내해로 삼고 있는 태평양을 무단 횡단하여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하는 기상천외의 일을 벌였다. 일본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동남아시아 식민지도 동시에 점령하여 대동아 공영권을 형성하였다. 일본이라는 태양은 결코 지지 않을 것처럼 태평양과 아시아를 휘집고 다녔지만, 결국 오펜하이머가 개발한 원자탄 2발에 항복하고 말았다.

일본이 항복하자 미국은 일본이 재기할 수 없도록 공장시설을 뜯어내고 거대한 낙농 국가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 소련은 동유럽국가들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편입시켜 공산화를 이루었다.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이 예상과 달리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자 동아시아가 공산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다급해진 미국은 전후전략을 수정하여 일본을 공업 선진국으로 키워 공산 침략을 막는 보루로 만들었다.

절대무기인 원자탄을 공유한 미국과 소련은 심각한 갈등 관계에도 불구하고 인류폭망의 열전(hot war)을 피하고 1991년 소련 붕괴까지, 이른바 냉전(cold war)을 이어갔다. 냉전 구조하에 마셜 플랜 원조를 받은 서독을 비롯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 한국, 대만 등은 번영했고 냉전이 끝난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세계화 혜택으로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으로 부상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으로 중국과 화해에 성공한 미국은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과 WTO(국제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지지하여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 되는데 적극 지원했다. 이러한 고도성장에 따른 자신감에 가득 찬 중국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전략을 내세우자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제2의 냉전(신냉전)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를 묶어 4자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를 그리고 영국, 호주와 함께 3자 안보파트너십 ‘오커스(AUKUS)’를 결성,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한일을 묶어 한미일 연대를 강화하려고 했으나 반일 국민 정서와 대중무역에서 실리를 얻고 있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정책을 취한 한국의 소극적 태도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사진=대통령실]
지난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사진=대통령실]

2022년 5월 한국 대선에서 당선된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부터 파국적인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취임 후는 일본에 대해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세대를 위한 시대적 사명을 향해 협력하자는 취지의 화해 제스쳐로, 일본뿐만이 아니라 미국을 놀라게 했다.

오랜 기간 상원의원을 지내고 부통령을 역임한 외교의 달인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실 아이젠하워 대통령부터 동아시아 안보전략상 대통령의 꿈은 원만한 한일관계를 통해 공산 세력의 확장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1951년 미일안보조약에 이은 1953년 한미동맹과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상 끌어내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2년 5월 일본에 앞서 한국을 방문하여 윤 대통령을 축하·격려하고 2023년 4월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워싱턴 선언을 통해 동맹 강화를 약속했다. 2023년 8월 18일 드디어 캠프데이비드에서 역사적인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한미일 신세대를 열었다.

캠프데이비드는 1978년 9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가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선으로 30년 중동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온 캠프데이비드 협정이 조인된 상징성 높은 대통령 별장이다. 이 회담을 평가한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이집트 및 이스라엘 두 정상에게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다.

이번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의 발전에 따라 윤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의 용기 있는 행동과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 노벨 평화상 수상 후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 재단에서는 한일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두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과 리더십에 대해 ‘용기 있는 사람들상(Profile in Courage Award)’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이번 회담은 과거 여러 차례 이루어진 다자회담 가운데 만난 것이 아니고 별도의 독자적(standalone)으로 주선된 최초의 회담으로 그 의미가 컸다.

그간 미중 갈등의 심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북한 핵 무력 강화 등 급변하는 국제질서가 이번 회담의 배경이 되었지만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국내 여론을 무릅쓰고 일본과 화해의 물꼬를 트는 포용적 결단과 이를 긍정적으로 호응한 기시다 일본 총리 그리고 역대 미국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할 의지를 가진 바이든 대통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도 윤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였다.

1963년 1월 11일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엘리제조약이 체결됐다.
1963년 1월 11일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엘리제조약이 체결됐다.[사진=위키백과]

이번 캠프데이비드 회담에서 3국 정상은 인도 태평양 및 전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하고 첨단 기술 및 기후 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공동대처한다는 협력의 틀을 명시한 캠프데이비드 원칙과 공동 비전을 담은 협의체 창설과 연합훈련 실시 등 구체적 협력방안을 담은 캠프데이비드 정신, 그리고 역내 도전과 도발 및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3국의 신속한 협의 공약(commitment to consult) 등 3가지 문서를 채택했다.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으로 한국의 입지가 크게 향상됐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주체 즉 룰 메이커(rule maker)가 되어 과거 불리한 규칙이라도 따라야 했던 객체 즉 룰 테이커(rule taker)에서 벗어나게 됐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먹잇감이 되지 않는다(Be at the table or be on the menu)”는 외교가의 격언이 있다. 한국은 미·일과 대등한 위치에서 정상회담 테이블에 앉음으로써 앞으로 더 이상 누구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캠프데이비드 합의 후 윤 대통령의 의지와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로 한일관계는 개선될 전망이다. 일본도 제고된 한국의 위상을 인정하여 비록 유치에 실패했지만, 2030 부산 엑스포를 지지했다.

최근 김정은의 방러에 따른 북·러의 밀착 등 북중러의 연대가 강화되어 6.25 직전과 같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또한 하마스 기습으로 촉발된 신중동전은 북한의 장사포 위협에 놓인 한국에게도 비상사태로 여겨진다. 이러한 한반도 유사시 주한미군과 함께 일본 소재 7개의 후방 기지의 적극 활용, 북한 잠수함에 대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 대 잠수함 작전 능력과 일본의 최신 장비로 한미일 3국이 하나로(one for three, three for one) 똘똘 뭉친다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제2의 한국전쟁으로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북한은 스스로 자멸할지도 모른다. 김정은의 건강상태가 오래가지 못하고 오랜 UN 제재 하의 북한 경제가 붕괴 직전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캠프데이비드 합의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한반도의 통일이 빨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엘리제 조약 서명서

캠프데이비드 합의는 3국의 국내 정치 변화에도 바뀌지 않을 제도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미일 3국에서 한일이 가장 약한 고리이다. 한일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오랜 갈등구조에 있었기에 국민들의 정서 관리에 실패하면 개선된 양국관계가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

금년은 과거 서독 아데나워 총리와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엘리제궁에서 서명한 엘리제 조약 체결 60주년이 되는 해다. 오랜 기간 외교관으로 전쟁 포기를 통한 항구적 평화를 규정한 이른바 평화헌법 하의 일본에 근무해 보면 한일 두 나라의 애증 관계는 프랑스 독일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보불) 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가 프랑스의 자존심인 베르샤유 궁전에서 보란 듯이 독일 제국의 수립을 선포하는 등 프랑스인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후 과거를 잠시 접어두고 안전보장 협력과 문화 사회적 상호이해의 기반 위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독과 엘리제 조약(프랑스-서독협력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최소한 매년 2회 회담해야 하고 외교 및 국방 장관은 매년 4회 만나 서로의 대외정책과 군사전략을 협의해야 한다. 양국 청소년은 상대국의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 규정도 담고 있다. 차세대가 상대국 언어를 배우는 것은 상대국의 문화·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서독 아데나워 총리(오른쪽)와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을 새긴 동판
서독 아데나워 총리(오른쪽)와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을 새긴 동판

한일 간에 엘리제(화해 및 협력) 조약을 맺는 것이 시기상조처럼 보일지라도 양 국민이 지지하고 두 나라 정상이 노력하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한일관계를 제도적으로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한일 엘리제 조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캠프데이비드 합의가 순조롭게 실행되기 위해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남산 이름은 본래 목멱산(木覓山)이다. 소나무들이 새길을 찾아내어 우리의 갈길을 가르쳐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어느 시인은 ‘목멱산’을 노래했다.

“수많은 소나무들은
반만년 역사의 편린들을
가지가지마다 달고 있는데
그 주위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지나간 일은 잊으라고
억울했던 일은 눈감으라고 
격조 있는 위로를 건넨다
왜 산의 이름이 목멱인가
나무들이여 새길을 찾아다오
앞으로 가고 싶은
백성들의 염원이다”

서울 남산의 소나무들처럼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은 우리들에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에 이르는 새길을 찾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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