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튀르크 광시곡
[정대성 칼럼] 튀르크 광시곡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1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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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서 영화 <인페르노>를 다시 봤다. 추방된 시인, 단테는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라벤나에 고이 잠들고, 연옥이 불탄다. 미국 억만장자가 인류 인구를 격감시킬 목적으로 개발한 바이러스를 퍼뜨리려고 점 찍은 곳이 이스탄불. 원래,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풀이라 불리며,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다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당해 이스탄불로 불리게 됐다. 동서양이 만나, 수많은 외국관광객들이 세계로부터 몰려들고 다시 세계로 되돌아가는 그곳을 무대로 세균을 퍼뜨리고자 하는 악당들과 그걸 막으려는 WHO 여성 국장과 오랜 남친 교수가 사투를 벌인다. 그러다 어느덧, 비행기는 이스탄불에 착륙했다.

바이러스나 백신을 둘러싼 음모론은 끊이지 않으나, 일반인들은 접근 불가능하다. 음모는 음지에 속한다. 그것이 드러나면 음모가 아니다. 팬데믹은 기나긴 인류 역사 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돼 왔다. 만약 음모나 역사의 어두운 이면이 있어왔다면 유사 이래 그늘지고 비밀스러운 움직임은 늘 있어왔다. 사람이 음모를 꾸밀 수도 있고, 신이 인지를 초월한 역사(役事)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예컨대, 541~542년 새에 동로마 제국, 사산조 페르시아, 지중해 해안 등지에서 창궐했던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가 있다. 200년에 걸쳐, 유럽 인구의 절반에 해당되는 1억 2천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헌데, 아라비아반도 사막지대는 페스트의 영향에서 자유로웠고,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태어난 게 570년 경이다. 만약 페스트균이 아라비아 사막 지대에 적응했더라면, 무함마드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슬람교가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페스트균은 아라비아를 창궐하지 않았고, 이슬람교가 퍼져 나가게 된 게 신의 소치(所致)라고나 할까?

시리아를 왕래하던 상인, 무함마드는 40세 때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네스토리우스파 등 각종 기독교 이단 교파들로부터도 영향을 받으면서 이슬람교가 형성됐다. 같은 시기, 동아시아에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오나라에서 기악을 익힌 백제인 미마지(味摩之)가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하며 일본에서 기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슬람교가 창시됐을 무렵은 동아시아에서 수나라가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면서 당나라가 생겨나, 신라가 강성해지고 그 틈바구니에서 백제, 고구려가 협공당하기 시작했던 시기다. 나당 연합군의 머나먼 배경에 이슬람 세력의 발전이 있었을까? 일설에 의하면, 고구려, 백제는 몽고계였고, 나당은 튀르크계였기에 생긴 전쟁이었다고 한다. 즉, 신라와 당나라는 튀르크계였다는 게다. 안동 하회마을의 탈춤으로 남아있는 탈들에 보이는 코 큰 인면은 과연 튀르크계 얼굴일까?

튀르크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미마지가 일본으로 전했다는 여러 가면들이나, 안동 하회탈들이 생각났다. 유난히도 큰 코와 부릅뜬 눈…. 튀르키예에 와보니, 어찌된 일인지, 그 이미지가 사람들의 얼굴들에 겹치곤 했다. 서융, 남만, 그리고 동이와도 맞닿아 있었을 오나라의 기악에 쓰였다는 그 탈들은 천축(인도) 지방의 곳으로 추정되나, 파사(페르샤)를 지나 바로 튀르키예로 연결돼 있다.

튀르크 사람들은 교과서에서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가르치고 있다는데, 정말일까? 튀르키예 정부 고관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있어 참석한 김에 그들에게 질문했더니, 역시나 그렇단다. 한국전쟁 시 남한에 파병한 인연뿐만이 아니라, 튀르크인들은 돌궐을 자신들의 뿌리로 생각한단다. 그 실례로, 튀르크의 여러 국가적 창립연도(예컨대, 국군 창립년 등)는 돌궐로부터 내려온 것들이다. 그런 걸 보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역사를 망각하고 소홀히 해왔는가가 상기되어 맹성하게 된다. 우리는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렸고, 우리의 것을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는지 자체를 모르고 있다.

12환국, 단군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유라시아 중앙부의 초원지대에서 동서로 뻗은 초원의 길에 말 달리던 유목 기마 민족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 돌궐, 거란(키타이), 즉 튀르크계다. 둘째, 원제국을 세운 몽골계, 그리고 셋째, 만주평야, 시베리아에 이합집산해 있다가 금나라, 청나라를 세운 퉁구스계다. 이 세 가지 계파는 서로 연합하고 혼혈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서로 대립하고 전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빠뜨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원래 혼혈된 다민족 연방제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랄 알타이 어족 연방제가 동해, 발해, 연해주부터 유럽의 북해, 흑해, 아나토리아(소아시아, 튀르키예)까지 뻗어있었다. 물론, 간다라, 페르샤 지역부터 카자르, 프랑크 왕국, 카스티야 왕국, 영국으로 이르는 인도 유럽 어족 지역에도 혼혈해서 들어간 흔적들이 있는가 하면, 남북 아메리카 대륙 이른바 인디언 어족 공동체를 형성한 흔적들도 있다.

퉁구스, 고조선 구이족 자체는 단일민족은 아니다. 고조선 구이족은 사천 출신의 한족(漢族)과는 달리, 흉노족, 북쪽, 서쪽의 융적, 돌궐, 동호 등과도 혼혈한 다민족으로 구성된 연합체였다. ‘조선’이란 말 자체가 연방제란 뜻이란다. 이것을 반도사관의 관점으로 위축, 축소시켜 고조선 동이족이 그들로부터 침략만 당했다고 자학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리라.

반대로, 고조선 구이족이 중원에도 진출하여 한족(漢族)을 동화시키도 했었고, 나아가, 유목민족들과 융합하면서 멀리 유럽으로 뻗어서 나갔었다는 시야의 확장이 필요하다. 스키타이, 힛타이트, 튀르키예, 파사, 앗시리아, 이스라엘, 애급 등, 사카, 무굴제국, 드라비다, 스리랑카, 토번, 위그르, 남만(산악지대) 등, 루마니아, 헝거리, 우크라이나, 독일, 핀란드 등, 타타르, 이누잇, 에스키모, 네이티브 아메리칸 등은 우리 민족의 교류사, 변천사의 외연에 편입시켜서 보아야 한다.

한편, 성경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셈의 후예로 보는데, 정작 언어학적으로 셈어족은 아랍어를 중심으로 한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이 아랍어권마저 지배했던 것을 상기할 때 셈족의 후예에 서아시아(일부 북아프리카)부터 동아시아까지 모든 민족, 부족들을 포함시켜서 볼 수도 있는 것일까?

흉노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훈족이 되어, 헝가리가 되었는가? 이 설에는 학자들의 의견이 갈리나, 돌궐이 튀르크족, 튀르키예를 비롯한 여러 튀르크 계 민족들, 나라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의심치 않는다. 유목민으로는 드물게, 비문 등 유적이 있고, 언어학적 고증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유목민들의 특징은 흔히들, 이동, 약탈, 무문자 등으로 여겨져 왔지만, 근래에 와서 그들이 우리와 공통된 텡그리 사상(천손강림 사상), 문화를 지니고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는 언어를 사용해 왔음이 밝혀지고 있다.

에게해 쪽으로 이스탄불에서 희랍 쪽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곳은 세계가 고꾸라지는 곳이다. 우리는 철학사의 시초라고 하면 희랍철학을 상기하고, 교과서에도 탈레스를 ‘철학의 원조’라고 배운다. 그러나, 그것은 희랍, 로마 시대, 서로마제국, 중세, 근대, 제국주의의 역사를 이어온 서유럽의 관점에서 본 세계사이다. 희랍에서 볼 때 흑해 저편, 이스탄불 저쪽에는 이른바 ‘소아시아’, ‘중동’이라 불리는 지역, 기독교문명과 다른 이슬람문명권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가? 당연히 아시아인으로서 우리는 이곳을 ‘소아시아’, ‘중동’이라 부를 게 아니라, ‘서아시아’라고 불러야 마땅하리라.

이렇게 본다면, 몇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 흔히들 서양의 대항해시대, 제국주의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데, 사실은 서유럽의 중세, 근대, 제국주의를 유발시킨 계기들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동쪽에서의 훈족 아틸라, 몽고족 징기스칸의 서진과 서아시아의 튀르크족 오스만제국의 융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된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와 그들 국제자본의 유럽 왕실 및 부르주아 세력 사이의 이동과 영향력 확장, 즉 근대의 여러 혁명들을 보게 되면, 러시아 및 소련이 어떻게 생겨났고, 그들이 왜 동진하여 세계 최대 영토를 지니게 됐는가, 몽골공화국까지 영향 하에 두게 되었는가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나아가, 마이소르전쟁, 아편전쟁,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나아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및 병탐(倂呑), 병합, 분단, 분열, 고착화되는 국경선을 관통하는 뒤에 숨겨진 역학의 존재를 깨치게 된다. 특히 세계대전 시기 독일, 이태리, 아시아의 묘하게 꼬인 국제관계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바깥의 ‘세계사’가 아닌 바로 ‘우리 자체의 역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필자는 북 키프로스의 북쪽 항구를 지키는 키르네 성에 다다랐다. 7세기 무렵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무수한 벽돌을 정교하게 쌓아 올린, 꽤 멋있는 성은 십자군 요새 위에 베네치아인, 오스만 튀르크인들이 증축한 유물이다. 성 꼭대기로 올라가기 전에, 그늘에서 쉴 수 있는 넓은 안뜰이 나타난다. 문득 보니, 매점의 아가씨가 이시스 같은 흑인 미녀이고, 게으른 고양이가 나른하다는 듯이 태평스레 하품하며 바닥에 뒹굴고 있다. 하지만,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 영이던 키프로스 섬을 튀르크군이 강점했을 초창기에는 그리스 용사들을 가둔 감옥이기도 했던 곳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군데군데 보이는 미로처럼 지하로 내려가는, 출입금지된 칙칙한 계단 저 밑의 칠흑 같은 어둠에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동남쪽으로 파마구스타에 가니, 유명한 희곡 「오델로」의 무대라고 셰익스피어 동상이 필자를 맞이해준다. 웬지 관광객용 장식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동상 머리 위에 새똥이 떨어져 있는 것도 청소해주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웅장한 성벽은 고등학생 때 TV로 본 BBC 셰익스피아 극장의 「오델로」의 무대장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곳 카톨릭 성당 건물은 무슬림들에게 파괴되어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다. 메카를 향한 방향이 안 맞아서 제단이 왼쪽 벽면에 증축돼 있다.

나아가,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로 가서 꽤 오래된 여관 옆에 시장길을 지나가더니, 갑자기 군사분계선이 나타난 것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사분계선이라고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분계선”이란다. 분계선 초소에서 여권을 제시하면 남키프로스로 입국할 수 있다. 물론, 금방 북키프로스로 되돌아와야 한다. 재미 난 것은 북쪽의 시장에는, 중국 짝퉁 로렉스 가게 말고는 이렇다 할 서방의 가게들이 안 보이는데, 남쪽 시장에는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이 많이 보인다. 자유왕래가 허락돼 있어서, 비교적 돈이 많은 남쪽 사람들이 물가가 싼 북쪽으로 잠깐 장보러 나오기도 한다니 한반도의 38선에 비하면 과연 평화롭긴 평화롭다. 과거에 동서 문명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이곳이 현대에 와서는 아예 군사분계선으로 갈라져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면서, 십자군, 오스만제국, 대항해시대 역사에 묵상이 이른다. 악명 높은 십자군은 십자가에 걸려 죽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답지 않게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 유럽으로 돌아간 그들은 페스트균을 유럽에 퍼뜨렸고, 페스트균은 왕족, 귀족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평등하게 목숨을 앗아갔다. 감염 경로는 십자군만이 아니었다. 1343년경 흑사병이 크림반도에 닿았는데, 검은쥐 벼룩을 매개체로 하여 상선을 타고 전 유럽에 퍼진 것이었다. 그 결과, 몇 십년에 걸쳐 1억 명 정도, 유럽 총 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전 세계 인구가 4억 5천 명 정도였는데, 가위 4분의 1이 줄어들었던 셈이다.

그걸 본 사람들은 왕권신수설이나 귀족의 권위 따위를 안 믿게 되었고, 시민 평등 의식, 국민 평등 같은 사상이 싹터서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우게 하면서 서양철학을 발전시켰다. 한편, 아프리카 대륙 북부를 서쪽으로 뻗어나간 오스만제국의 발달로 이베리아반도로 쳐들어간 무슬림들이 스페인, 포르투갈을 압박함으로써, 스페인,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로 돌입하여 남미대륙을 침략하게 만든 한 요인을 제공했다. 페스트, 흑사병 등에 일찍 감염된 서양인들이 신대륙에 다다라 병균을 퍼뜨림으로써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들은 침략자들에게 학살도 당하면서 동시에 돌림병으로도 죽어 나갔다. 유럽인들은 전화위복이었고, 신대륙 원주민들은 설상가상이었다.

유럽인들은 몽고제국을 지금도 원망한다고 한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면서 막강해진 유럽인들은 초원의 길을 거꾸로 쳐들어와서 막바로 복수하진 않았다. 먼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중국을 반식민지로 만들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하듯 하다가, 일본을 지원하여 제국주의화를 도와주면서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침략하게 만들었고, 해방 후에는 분단과 내전(냉전의 대리전쟁)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마치 모세 이전의 아브라함 후손들이 애굽에 노예생활을 하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져 바빌론 유수를 당했고, 초기 크리스천(예수의 무리들)이 로마로부터 박해를 당하고 프랑크 왕국이 동서로 분열해 교황 크레멘스 5세가 아비뇽 유수를 당한 것과 비슷하다. 한국은 왜구, 진시황, 한사군, 원구,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식민지 지배, 남북분단과 민족상잔 등을 겪었다. 특히, 유대인의 옆에 애굽, 바빌론 등의 막강한 민족이 존재했듯, 우리 민족 옆에는 중화제국(중공), 일본, 러시아(소련)라는 막강한 민족이 존재한다.

역사에 ‘만약’이 없듯, ‘왜?’ 또한 없다. 신의 뜻은 인지를 초월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물로 바치려고 했을 찰나, 천사가 한 발작 늦었더라면, 이삭이 죽고 말았을 것이다. 하녀 하갈이 낳은 이스마일이 아랍민족의 시조가 돼 이슬람교의 번창을 가져왔는데, 이삭이 죽었더라면 유대교도 기독교도 나오지 않았을 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간발의 차이로 죽지 않았고, 고구려, 고려의 후예들도, 상해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또한 간신히 죽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이 ‘조선’을, 남한이 ‘한국’을 각각 국호로 삼은 일은 우리는 근대사의 좌우대립의 결과 정도로 알고들 있지만, 멀리 튀르키예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조선’은 유연, 주르첸(여진), 카자르이고, ‘한국’은 칸국(카간국), 한국(汗國)인 것이다. 널리 유라시아에 분포된 국가명들이 다 ‘조선’의 음차(音借)라 한다. 카스피해도 원래는 ‘주잔해’=‘조선해’라 불렸다. 숙신, 여진, 조선, 주천, 유연, 주잔, 주천, 숙센, 달단, 타타르, 주스, 우즈, 주르첸, 주잔, 구스, 루스 등등. 일찍이 단재 신채호가 동아시아 지역의 여러 민족들을 주된 주체로 하되, 널리 유라시아 대륙 끝자락까지 퍼진 조선의 흔적을 지닌 여러 민족들을 비주류 주체로 분류한 바 있다. 나아가 우리는 12환국, 구이족을 다민족의 연합체, 오늘날의 미합중국과 같은 합주국, 여러 인종이 혼혈한 도가니로 보아야 하리라.

필자는 동래 정씨다. 신라육부의 진지촌장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박혁거세 거서간(박은 무당=샤먼이란 뜻이고, 거세도 거서도, 기자, 게세르, 카이사르, 카이저, 차르, 카자르, 게제르에 음통한다)부터 신라 도처에 유라시아 유목민의 흔적이 보이고 그러고 보면, 필자 또한 튀르크계의 혼혈 후손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눈앞의 튀르크인들이 사뭇 다정하게 다가온다. 만찬회 자리에 비록 생음악은 아니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연거푸 튀르크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전서부터 서아시아 음악을 가끔 들으며 싫지 않았는데, 튀르키예에 와서 들으니 감개무량하다.

북극성을 향해, 다시 키프로스 북쪽으로 갔다. 카지노가 달린 리조트 호텔로 되돌아왔다. 화교가 소유하는 이 호텔은 이 섬 여기저기에 있었다. 화교들이 확실히 대단하긴 대단하다. 그곳 사우나는 남녀공용이라 수영복을 입고 땀을 뺀다. 사우나를 하고 있는데, 비키니 차림의 백인 미녀들이 차례로 들어온다. 출신 국가를 물어보니까 벨라루스, 조지아 등이다. 우크라이나인은 푸틴을 미워하지만, 벨라루스인은 푸틴을 영웅으로 여기고 있다.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노동자들은 카자흐나 우즈벡에서 온 고려인들이다. 세계 4대 요리에 튀르키예 요리가 들어간다고 한다. 프랑스요리, 중국요리, 일본요리, 다음인가 보다 했더니, 세계 3대 요리에 튀르키예가 들어간단다. 그런데, 진수성찬이라고 회식 때 대접받은 음식은 매번 케밥이었던 것 같다. 호화판 양꼬치 정도 되는데, 매일 고기만 먹으니 통풍 기운이 오는데, 튀르키예 요리보다 한국요리가 더 좋아 보인다. 헌데, 부러운 것은 튀르키예의 역사 유적이다. 우리 고조선, 고구려 유적들이 중공에 의해 파괴돼 왔던 것과 대조적이다.

아침에 뜨는 해를 보면서, 혼자 바닷가로 내려갔는데 길을 잃었다. 민가 문 앞에 다가가서 얼굴을 내미니 튀르크인 아줌마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기에, 바다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녀는 필자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차이나인가, 재팬인가? 하기에, 필자는 코리아에서 왔다니까, 그녀는 못 알아 듣는다. 코리아, 코리아, 하다가 코레! 하니까 알아듣는다. 코레는 프랑스어, 이태리어인데, 생각해보니까 케레이와 통한다. 마고할망을 만났듯이 그녀를 본 것이 반가워진다. 그렇다, 우리 모두 케레이, 겨레인 것이다.

내친김에 이렇게도 생각 가능하다. 지구상에서 최대 면적을 차지하게 된 오늘날의 러시아 제국이 발전하게 된 사상적 발판이 범슬라브주의였다면, 이곳 튀르키예는 범투란주의가 있어, 카자흐스탄 등 스탄 나라들과 유대관계를 알게 모르게 맺고 있다. 그런데, 12환국, 구이족의 시각에서 본다면, 범슬라브주의, 범투란주의는 하나의 것이다.

성경주의자들은 성경에서 말세에 북쪽으로 쳐들어올 악마의 세력을 러시아라고 간주한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 테두리 안에서 보려고 할 것이고, 앞으로 러시아가 조지아를 지나 튀르키예를 칠 것이 성경에 예언돼 있다고 분석하곤 한다. 그러나 한발작 더 나아가면, 커다란 유라시아 대륙에 메시아가 나타나 구이족 12환국을 다시 세울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헤르메스교 경전 『녹옥판(Emerald Tablet)』에 나와서, 기독교 기도문에도 각인된 “하늘 위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As above, so below)”이다.

멀리 에메랄드색 바다가 보인다. 그래서 바닷가로 내려가 물결에 발을 담갔다. 물이 깨끗하고 투명했다. 저편에 보이는 먼바다가 에게해인가? 해가 돋는 우리 나라에서 다다른 아침 햇살이 바다를 비춘다. 해변가에는 엉겅퀴들이 무성하고 큰 나무엔 가끔 까마귀가 날아든다. 생명의 나무다. 바닷가의 엉겅퀴는 외국 군인들이 상륙하는 것을 막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엉겅퀴가 너무 크게 자라서 사람 키보다 크다. 히비스커스처럼 보이는 붉은 꽃이 아름답다. 히비스커스는 무궁화다. 무궁화는 샤론의 장미다.

고등학생 시절, 「에게해에 바치다」라는 일본 영화가 히트를 쳤다. “바람은 에게해에서 불어온다”고 노래했던 그 영화 OST가 귓속에 메아리치 듯했고, 주연 여배우 치치올리나의 미모에 반했던 기억이 있다. 이태리 에로배우였던 그녀는 훗날, 국회의원이 되니, 그 나라 국민성의 관대함은 과연 로마제국의 후예들이라 할 만하다.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 대학원에 진학할까 말까 하는 젊은 필자에게, 실크로드 권위자 교수님께서 “지루한 역사 연구 따위 하지 말고, 실크로드를 무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역사 소설이라도 쓰면 어떻겠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필자는 에게해 쪽을 보고, “나는 에게해에 뭣을 바칠까?” 자문했다. 그래서 이 글을 긁적거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는 “해 뜨는 동방에서” “바람은 에게해로 불어간다.”

올해 2월 튀르키예 지진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 때 한국에서 구조대를 파견했던 일은 자랑스럽다. 그런데, 올해 5월 연임에 성공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달, 터키의 EU 가맹을 다시금 요청했다. 유럽이 아닌 아시아 나라가 어째서 유럽연합에 가입하려 하는 걸까? 거기에는 오스만제국의 몰락과 러시아의 강대국화로 비롯돼 오늘날 국제정세와 직결돼있는 정치역학이 작용하고 있음은 추측키 어렵지 않다. 한국전쟁에 튀르키예가 4번째로 파병한 것도 당시 NATO에 가입하고 싶어서였고, 실지로 한국전쟁 참전의 공이 인정되어 NATO에 가입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움직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한 원인이었다.

환상에 불과하지만, 러시아, 중국의 횡포를 누르고 12환국 연방제 통일을 유라시아에서 이룩할 수 있다면, 우리의 형제들인 튀르키예, 우크라이나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도, 그리고 위그르, 티베트도 좀 더 편한 세상에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한다면, 그들의 현재진행형의 문제는 우리에게 대안의 불이 아니다. 아닐 뿐더러, 우리는 남북한은 물론 만주, 연해주마저도 통일을 못 하고 있다. 위그르, 티베트에서 인권유린과 동화정책이 극도에 달하고 있다고 하지만, 만주, 연해주는 그런 문제를 제기하기도 전에 남의 땅으로 빼앗긴 채로 방치상태가 된 지 오래다. 이제는, 범슬라브주의, 범투란주의를 뛰어넘어, 범텡그리(단군)주의로 나아갈 시대다.

튀르키예 도처에 걸려있는 국기가 초승달과 금성이다. 튀르크 계 국가들의 국기에도 초승달과 금성이 그려져 있다. 그것을 그냥 이슬람의 상징 정도로 생각하는가? 우리는 음력으로 지내야 할 10월 3일 개천절을 양력으로 잘못 지내고 있지만, 원래 초승달과 금성이 보이는 음력 10월 3일로 지내야 맞다. 튀르키예의 저 상징을 이슬람의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 유목민의 샤머니즘, 나아가 우리 개천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재음미해볼 일이다.

10월 9일은 한글날인데, 한글의 창제 원리에는 12환국, 나아가 유라시아 각 민족, 국가 언어들의 발음변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우리 형제 나라들에 대해 한글 보급하는 노력, 나아가 우리가 초승달과 금성을 섬기는 그들의 형제임을, 그리고 성경에도 나오는 동방의 백의민족임을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보면 어떨지?

중국의 일대일로는 현실적으로 진행됐지만, 아마도 전 세계 화교들의 공로가 컸으리라. 전 세계 한국교민들이 범텡그리주의로 무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일대일로에 대한 미국, EU의 견제 움직임은 이제야 뒤늦게나마 작동되기 시작됐다. 기마민족의 후예, 튀르키예는 세계적으로 승인을 받지 못한 채 북키프로스를 강제 점령하는 배짱을 보이지만, 영국군, 미군의 주둔 또한 허락하는 고차원적 외교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5년 전인 2018년 10월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대담했을 때, 김 위원장이 “중국의 위협을 방어하는 데에 주한 미군이 꼭 필요하다”고 언급했다고 전해진다. 튀르키예의 양다리 외교를 보면, 북한의 속셈은 놀랍지도 않다.

위구르, 티베트와 함께, 연해주, 만주, 외몽고, 요하 유역, 산동반도 등을 자립하고 한반도와 연방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도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들이 우리를 안 도울 리 만무한 이유는 그들의 배후에 우리 고조선의 형제 나라인 카자르에서 발원된 아슈케나지 유대인 국제자본이 있음과 동시에, 이스라엘이 예수 불신의 벌을 받는 물고기자리 시대 말세에, 미래의 조선 연방에서 하얀 안개 속 백의민족이 나타나 일어날 것이 신의 섭리이기 때문이리라. 그러기 위해서, 유대인은 물론, 퉁구스계, 몽골계, 튀르크계, 화교 등과 손을 잡아야 한다. 튀르키예가 자유 시리아군을 지원하는 시리아에서 내전이 끊이지 않고,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가 다가가는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이 공격하니, 미 항공모함이 동지중해에 떴다. 현시대의 예레미야여, 니고데모여, 그대들은 저 아사달(카자르, 아침 달)을 볼까? 하나님이 택한 민족이 바뀌었음을. 카자흐스탄을 거쳐 알타이산맥을 넘어, 천산산맥, 파미르 고원 넘어 타림분지을 지나, 저 강화도, 마니산에도 뜬 금성을 품은 초승달을, 새로 돋은 해가 여는 하늘, 구름을 타고 평화의 왕과 여왕이, 밝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 물병자리 미륵, 진인(眞人)이 임함을…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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