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체험수기] 군대, 인생의 가치있는 투자(장려상)
[병역체험수기] 군대, 인생의 가치있는 투자(장려상)
  • 김건우(방공여단 503대대 6중대 예비역 병장)
  • 승인 2024.02.01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자녀들이 모국에 들어와 자원입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병무청(청장 이기식)은 이들의 군 생활 체험을 담은 수기 공모전을 2년마다 진행해 이북(e-book)으로 발간해왔다. 월드코리안신문은 병무청의 승낙을 받아, 최근 발간된 이북 <2023년 대한사람 대한으로>에 실린 우수 체험수기들을 연재로 소개한다.[편집자주]

혹자는 저보고 애국심이 매우 뛰어나다고 말을 합니다. 물론 피할 수 있었던 병역을 짊어졌던 것이 한국에 대한 제 애국심의 표출이기도 하였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제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만 16세까지 한국에서 자랐습니다. 한국어는 저의 모국어이고 한국 문화는 제 삶에 녹아있으며 한국인이라는 저의 정체성은 뼛속까지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병역의 의무 또한 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에서 살면서 일상생활 속의 좋은 특권과 복지를 잘 누리면서 져야 할 의무는 지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를 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교육이나 의료 등의 혜택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혜택의 수혜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나라의 혜택을 누리고 싶으면 나라의 의무를 다해라.” 제가 입대 전 가진 결심이었습니다.

저는 군 생활로부터 얻은 경험이 저를 한 층 더 성장시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련이 저를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몇 년 전 힘든 유학 생활을 통해 이미 한 번 겪은 바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매우 유익하고 보람찼던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군 생활 대부분의 기간 중대에서 보급을 담당했습니다.

일병 때 신막사로 이전을 하였는데 여러 개의 창고도 통째로 옮겨야 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물품들 위치를 새로 지정하고 이전까지 소홀하게 관리되었던 물품들을 제대로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해야 했습니다. 일일이 박스에 담아 포장하고, 버릴 물품과 군용품들은 반납하러 가고, 물품마다 이름표도 만들어 붙이고, 창고마다 현황판도 새로 제작해 최신화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이따금 위에서 내려오는 요구사항에 맞게 수정하고 다시 작업하기도 하였습니다.

평소에 하던 일과 근무를 포함해 중간중간 여러 훈련 준비들도 겹쳐서 작업에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신막사 창고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 한눈에 봐도 정갈하고 깨끗한 상태가 되어있었습니다. 어느 날 일과를 끝내고 창고를 바라봤을 때 정말 후련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보람찼던 것은 신막사에서 창고가 제대로 자리 잡혀서 나중에 들어올 저의 후임들이 좀 더 편하게 보급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전우들을 위해 길을 닦아 놓았다는 사실이 제가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절대 끝까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항상 부지런했던 훌륭한 제 동기 한 명과 느지막이 들어 온 소중한 에이스 후임 한 명과 함께 했기 때문에 달성할 수 있었던 과업이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어떤 힘든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개인적인 성장과 더불어 협동의 중요성과 동료의 소중함도 깨달았습니다.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이때의 경험이 원동력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군에 입대하기 잘했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단체생활 속에서 배운 인간관계와 협동심입니다. 24시간 내내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하는 생활관 안에서는 전우들끼리의 존중과 배려가 필수입니다. 또 각자가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병영생활 지도나 클린데이에 생활관을 포함한 막사를 크게 청소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선임과 후임과 관계없이 본인이 맡은 구역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제가 계급이 낮았을 때 앞장서서 더러운 화장실을 열정적으로 청소하는 선임병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저도 그런 선임병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계급이 점점 높아지면서 후임병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선임병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청소 든 작업이든 훈련이든 간에 열심히 임했고 또 미숙한 후임병들을 보면 그들을 무조건 혼내기 보다는 잘 알려주고 그러기 위해 저부터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부터 잘해야 남을 가르쳐 줄 수 있고 남을 지적할 때 ‘내로남불’이 되지 않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선임병이 되길 원했고 그 결과 많은 후임병들이 저를 좋아하고 그들과 친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저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면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고 존중해 준다는 것입니다. 훈련 기간에는 협동심이 빛을 발했습니다. 제가 병장을 막 달았을 무렵 중대 전술훈련이 있었습니다. 그 훈련 중에 제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예비 지휘소를 점령하러 막사를 떠나야 하는 때에 화생방 상황이 터져 방독면과 보호의를 착용해야 했습니다.

비가 내리던 중이라 매우 습하고 심지어 방독면 때문에 정말 숨쉬기도 힘든 그 순간에 저와 전우들의 무거운 군장을 차에 올려야 했습니다. 일 초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저는 스스로 차에 뛰어올라 군장을 차례대로 실었고 전우들은 하나씩 본인과 다른 전우들의 군장들을 저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임무를 수행했기에 빠른 속도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행정보급관님이 항상 강조했던 것들 중 하나가 힘들 때 다 같이 힘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무엇이든지 신속하게 완수할 수 있습니다. 너무 힘들다고 누구 한 명이라도 나태하게 있으면 일의 진행이 늦어질 수밖에 없고 그 사람으로 인해 부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군대에서 배우고 깨달은 가치들이 전역 후 저의 인생에서 큰 도움을 줄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학교에 복학하여 학업이나 교내 여러 활동을 할 때에도, 나중에 취직에 성공하여 직장에서 동료와 협업을 할 때에도 군 생활을 통해 보고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확실한 건 입대 전의 저와 전역 후의 제가 많이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생각과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고 개인주의적인 행동과 사고만을 고집하던 제게 공동체적인 사고방식이 들어오게 되었고 단체 활동의 요령과 중요성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사회 활동이 전무했던 제가 인간관계에 대해 알게 되고 일머리를 키우게 된 것 또한 군대 덕분입니다.

저의 미래나 진로를 생각해 봤을 때 나중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받으면 한국 국적은 자동으로 상실되게 됩니다. 미국 시민권을 받을 때 하는 선서에는 제가 지금까지 속했던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포기하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는 충성심과 애국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귀화를 한다면 비록 한국에 대한 충성심을 버려야 하겠지만 과거에 충성했던 나라에 대한 애국심은 여전할 것입니다. 제 몸에 각인된 정체성이 그것을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대 전 기도했던 것이 있습니다. 자대를 어디로 가든지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의미 있는 군생활을 하길 원했습니다.

저는 제가 몸담았던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저처럼 입대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군대는 시간 낭비, 인생의 공백기가 아니라 한 층 성장할 수 있는 값진 일 년 반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18개월이 인생에서 작은 한 부분이지만 그걸 통해 얻은 깨달음은 인생 전체에 뜻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 다. 누군가 제게 자원입대를 후회한다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주저 없이 대답할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