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일광절약시간과 생체리듬
[김재동칼럼] 일광절약시간과 생체리듬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25 09: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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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에서 왔다. 공기(空氣)와 물, 흙과 태양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자연현상을 거스르며 살 수 없다. 인체는 생체리듬에 맞춰 생활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우며, 최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7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인 유인원이 지구상에 출현했을 때부터, 인류는 밤과 낮이란 자연현상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유인원은 진화를 거듭하여 5만 년 전, 완전한 현생인류라고 말할 수 있는 크로마뇽인으로 탈바꿈했다. 그들의 뇌는 유인원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커졌다. 뇌의 진화는 그들에게 생각이란 무형의 힘을 선물했다. 그들은 표준화된 석기 사용은 물론 장신구를 착용할 정도로 발전했다. 석기뿐만 아니라 골(骨)기를 이용한 낚싯바늘, 송곳, 조각 도구, 작살, 투창, 나중에는 활과 화살 그리고 바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뒤이어 낚싯줄과 덫 등을 만들 수 있는 끈을 발명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약 4만 년 후인 1만 년 전, 햇볕과 물 흙과 바람 등의 자연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커진 뇌로 인해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로 마침내 농업혁명이란 인류사의 대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목숨을 건 수렵 채집 생활을 마감하고, 농작물과 가축사육을 통해 먹거리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과학과 문명의 발전은 이루어왔지만, 자연현상에 역행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8~19세기 산업혁명 기를 지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는 인위적으로 자연현상 거스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중 하나만 예를 들겠다. 일조량 즉, 하루 중 태양의 빛을 더 오래 붙들어 놓기 위해 시간을 앞당기고 거꾸로 돌리기를 감행한다.

1784년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낮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밤에 소모되는 램프 기름과 양초를 절약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당시에는 램프에 고래기름을 사용했는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아 서민들은 주로 양초를 사용했다. 그는 Daylight Saving Time(일광절약시간)이라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정식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이후 일광절약시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한 이는, 한 세기를 훌쩍 넘긴 1895년 뉴질랜드의 조지 허드슨(George Hudson)으로 알려져 있다. 곤충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그는, 오전에 우체국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곤충을 채집했다. 곤충의 뒤를 쫓아 들판을 휘젓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아 채집을 중단해야 했다. 궁리 끝에 그는, 곤충 채집의 적기인 여름철에 2시간 앞당길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는 영국의 건설업자 윌리엄 윌렛(William Willett)이 일광절약 도입론을 담은 ‘The waste of daylight’이라는 제목으로 소책자(pamphlet)를 펴냈다. 그는 주간 단위로 시계를 한 주에 20분씩 4주 동안 80분을 앞당길 것을 제안했다. 골프를 좋아했던 그는 일과 후 좀 더 골프를 즐기려고 시간을 늦추고 싶었다. 그는 연료 절약 및 건강 증진을 내세워 일광절약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지지까지 얻었지만, 계획이 실현되기 전인 1915년에 사망했다.

Daylight Saving Time(일광절약시간) 제를 처음 시행한 것은, 1916년 1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헝가리였다. 전기와 연료(기름)를 절약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특히 독일은 공습에 대비한 조치였다고 한다. 영국은 그로부터 몇 달 후에 도입 시행했으며, 미국은 2년 뒤인 1918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가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일상생활과 생체리듬에 끼치는 영향이 크고, 불편과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폐지와 부활을 반복한 나라가 많았다.

현재 지구상에는 70개국에서 이 제도를 도입해 실행하고 있다. 일명 ‘서머타임’이라고 불렸던 이 제도는, 한국에서도 시행되었던 적이 있다. 1949~1961년까지 실시했으며, 1987년과 1988년, 2년에 걸쳐 다시 한번 시행했다. 그러나 비난 여론으로 88올림픽 직후 중단했다. 서울올림픽기간 동안 미국 방송사들로부터 중계권료를 높게 받으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일광절약시간 부활은 꾸준히 논의되었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 녹색성장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이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시간 변경의 번거로움, 생체리듬파괴, 근로시간 연장 우려 등을 이유로, 대다수 국민의 반대여론에 가로막혀 성사되지 못했다.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반대하는 시민들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편 일광절약 시간제를 고수해 오고 있는 미국에서는 노약자와 임산부, 어린이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각종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특히 노년층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일광절약 시간제가 끝나는 시기에 치명적인 자동차 충돌사고가 6%로 증가했으며, 시작하는 시기에는 심장마비와 뇌졸중이 24% 증가했다. 우울증은 11% 증가했다고 한다. 오리건 대학의 데이비드 와그너(David Wagner)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수면의 질 저하로 인해 배우자와 싸울 확률이 높아졌다는 결과도 있다. 또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미국 50개 주(State)중에 하와이와 애리조나주를 제외한 48개 주가 이 제도를 시행 중이다. 다수의 주에서 일광절약시간 폐지여론을 반영하여 주 의회에 법안을 상정하고 있으나 번번이 부결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거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골프산업과 야외(Outdoor)활동 관련 상품 제조업체가 연관되어있다. 그들은 로비를 통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후원하고 있으며,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면 부결되도록, 막후(幕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23년 3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KSL 라디오방송에서 조사한 설문에 의하면, 일광절약시간을 폐지하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연중(all year round) 실시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해가 지면 잠을 자고 해가 뜨는 시각에 일어나 활동하는 것이, 지난 700만 년 동안 인류가 지켜온 생체리듬이다. 인위적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거나 앞당기는 것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중대한 사건이다.

자연현상은 인간의 목적에 따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며, 상상 이상의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것을, 자연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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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걸부 2024-03-27 14:16:43
전쟁중에 적군의 공습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위해 처음 시작되었다니 흥미롭네요. 개인적으로는 장차 폐지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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