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21] 등잔
[아! 대한민국-121] 등잔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6.11.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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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한국인이라면 등잔에 대한 아련한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전기가 시골의 일반 가정에 들어가기 전까지, 등잔은 ‘저녁 있는 삶’을 밝히는 유일한 불빛이었다. 한지로 바른 문에 방안에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비치게 하는 것도 등잔이었으며, 옛날 옛적 이야기 속에 흔히 나오는, 깜깜한 밤중에 길을 찾다가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도 바로 등잔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이처럼 등잔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 안되는 밤의 생활필수품이었다.

등잔은 기름을 담고 심지를 넣어 불을 켜는 그릇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등잔은 예로부터 우리 삶의 동반자였다. 등잔불 아래서 가족들은 저녁밥을 모여 앉아 먹었고, 선비들은 책을 읽고, 아이들은 숙제를 했으며 어머니는 바느질을 했다. 등잔은 등잔대가 있어야 하고, 또 등잔받침이 있어야 했다. 등잔을 만드는 소재로는 토기, 청동기, 백자, 나무, 철, 유기, 종이 등 그 소재와 모양이 다양했다.

등잔은 전세계적으로 사용됐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크게 발전했다. 그것은 난방용으로 온돌을 이용한 독특한 주거문화 때문이었다. 의자를 쓰는 문화권에서는 등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됐지만, 온돌방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한민족은 불의 높이가 눈높이에 와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등잔을 받치는 등잔대와 등잔받침이었다. 이런 까닭에 등잔에는 시대의 예술성이 반영되어 있다.

불교가 지배한 고려의 등잔대는 염주 모양을, 대나무의 절개를 숭상한 조선시대의 등잔대는 대나무 마디 무늬를 본떠 만든 것이 많다. 시골에서는 천연의 나무를 다듬어 등잔대를 만들었지만, 지체 높은 사대부가에서는 유교정신에 예술성이 높은 등잔대를 사용했다. 또 시대에 따라 등잔의 형태도 달라졌는데, 인화성이 강한 석유가 수입된 조선후기에 와서는 뚜껑이 있는 작은 항아리형 등잔이 등장해 널리 쓰였다.

석유가 수입되기 전에는 손쉽게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질이 낮은 기름을 두루 썼다. 어촌에서는 어유(魚油)를, 사냥하는 고장에서는 짐승의 비계를, 산촌에서는 쉽게 채집할 수 있는 산초기름 같은 것을 썼다. 등잔의 심지를 등심이라 하는데, 심지로는 솜을 비빈 것, 종이, 천조각 등 기름을 빨아올릴 수 있는 것을 꼬아서 썼다.

또 등잔을 알맞은 높이에 올려놓기 위해 등잔걸이라는 것을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이는 보다 넓은 범위까지 불빛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부엌에 벽걸이 등잔을 켜놓으면, 어머니가 저녁을 짓고 밥상을 차리는데 편리했고, 불조심이 절로 되어 십상이었다. 대청 앞에 달아놓는 등잔을 현등(懸燈)이라 하는데, 이는 잔칫날에 제값을 했다. 주막 앞에 간판 삼아 내걸거나 세워둔 등을 주막등이라 하는데, 여행자들이나 한량들이 이 주막등을 보고 모여들었다. 등잔보다 밝히는 면적이 더 크게 만든 것이 남포등(lamp등)이요, 밖에 들고 다니는 등불로는 모양에 따라 수박등, 마늘등, 북등, 조족등, 사초롱등이 있었다.

등잔은 한국인에게 어둠을 밝히는 친근한 빛이었다. 등잔 밑에서 한국인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등잔은 식구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고, 등잔불로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갔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등잔과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오는 과정에서 민족이 터득한 지혜로운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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