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탐방②] 구엘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그리고 천재를 몰라본 사람들
[바르셀로나 탐방②] 구엘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그리고 천재를 몰라본 사람들
  • 바르셀로나=이종환 기자
  • 승인 2019.01.0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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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추진 실패로 공원이 돼...한해 250만명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찾아
구엘공원의 다리 교각
구엘공원의 다리 교각

다음 행선지는 구엘공원이었다. 바르셀로나 해안과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구엘공원은 당초 분양을 목적으로 한 전원주택단지로 계획된 곳이었다.

주택단지 조성과 건축은 1900년에 시작해 1914년까지 진행됐다. 가우디 후원자인 구엘 백작과 예술가로서의 가우디 꿈이 결합된 대형 주택 개발사업이었다

중앙 광장을 가운데에 두고 주변을 자연석을 이용한 다리로 이어서 60채의 전원주택들을 배치하는 구조였다. 자연과 어울린 구조였으나 입주신청을 한 사람은 구엘백작 가우디 두사람 뿐이었다고 한다. 분양이 실패한 것이다.

이 단지는 결국 구엘백작 사후 바르셀로나 시에 기부됐다. 지금 가우디가 살던 집이 가우디기념관으로 활용되는 것 외에는 모두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엘공원 입구
구엘공원 입구

“제주도에서 와서 이 다리를 보고 갔어야 하는데요”

제주도가 고향인 김부향 회장이 자연석으로 된 구엘공원의 다리 교각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자연석을 쌓아올려 만든 교각은 가운데가 좁고 위와 아래가 넓었다. 나선형으로 돌을 쌓아올라간 교각도 있었다.

“제주 화산석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 풍경을 만들 수 있잖아요. 한국에서도 이런 방식을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구엘공원은 분양주택으로는 실패했으나, 공원으로는 대성공이었다. 이날도 구엘공원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볐다. 스페인어는 물론,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들이 들렸다.

누군가의 실패가 밑거름이 됐다고 할까? 구엘과 가우디의 이 실패한 사업지는 100년이 지난 지금, 의도치 않게 바르셀로나의 관광명소로 바뀌어 바르셀로나 시의 재정을 튼실하게 불려주고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우리는 구엘공원에 올 때처럼 투어사에서 제공한 벤츠 승합차를 타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갔다. ‘성스러운 가족 성당’이라는 뜻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소지품을 조심해야 합니다. 가방을 손에서 놓으면 안 됩니다. 휴대폰도 지갑도 뒷주머니에 넣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가이드가 소매치기를 주의해야 한다고 거듭 경고를 했다. 매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250만명의 관광객의 소지품을 노리는 사람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다는 경고였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가방을 들고 달아나던 사람을 경찰이 붙들었던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가 일생을 바쳐 설계하고 공사한 건물이다. 가우디 평생에 완공을 못했으며, 지금도 그의 설계에 기초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1882년 착공돼 130여년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초대형 성당은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된다고 한다.

성당 착공 후 1년 뒤 이 성당 수석 건축가가 사임하면서 가우디가 건축 디자인 책임을 떠맡았다. 가우디는 당시 무명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에게 디자인을 맡긴 성당측도 배짱이 두둑했던 듯하다.

가우디는 이 성당에 머물며 성당 건축에 심혈을 다 쏟았다. 자신이 번 돈과 재산도 모두 성당 건축에 쏟아부었다. 성당 건축공사는 오로지 기부금에 의해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진행이 느렸다. 가우디는 열심히 기부금을 모으러 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정부지원 없이 관광객들의 입장료와 기부금으로 이 대공사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가우디는 1926년 향년 73세로 타계했다. 그때도 이 성당은 공정이 15%에 불과했다고 한다.

가우디의 죽음에도 슬픈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가우디는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노면전차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운전수는 지저분한 노숙인으로 생각하고 그냥 가버렸다. 가우디는 세 번이나 택시를 세웠으나, 그때마다 기사들은 승차거부를 했다. 네 번째로 겨우 태워준 택시 운전사는 일반 병원이 치료거부하자, 가우디를 무료 빈민병원에 내려다놓고 가버렸다.

뒤늦게 가우디를 알아본 간호사가 덕택에 연락을 받은 친지들이 달려와 가우디를 다른 병원에 옮기려고 했으나, 이제는 가우디는 거부했다.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한테 거지차림의 가우디가 이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면서 버티다가 3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였다. 그의 유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지하에 안치됐다.

가우디 사후 그를 몰라본 사람들은 호된 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를 치고 달아난 노면전차 운전기사는 파면과 동시에 구속됐고, 승차거부를 한 택시운전사들도 엄한 벌을 받았다. 치료를 거부한 병원도 거액의 배상금을 물었다고 한다. 천재를 몰라본 벌이랄까.

바르셀로나 항의 야경
바르셀로나 항의 야경

가우디 투어를 마치자, 김부향 회장이 ‘또 봐야할 데가 있다’면서 바르셀로나 대성당과 주청사 및 시청사 거리로 안내했다. 도시 중심에 대성당이 있고, 그 옆으로 시청과 시장이 있는 구조는 바르셀로나도 여느 유럽 전통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에 비해 시청사와 주청사는 상대적으로 작은 모습이었다. 시청사 건물에는 노란리본 마크도 내 걸려 있었다. ‘카탈루냐지역 독립을 추진하다가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라’는 뜻을 그 사랑마크가 담고 있다고 김부향 회장이 소개했다. 바르셀로나도 카탈루냐지역에 속한다.

시청사 옆으로 좁은 골목을 타고 시장이 조성돼 있었다. 바르셀로나 축구팀 유니폼 등 다양한 기념품들도 전시돼 있었다.

이날 바르셀로나 투어는 콜롬부스 동상이 서 있는 바로셀로나 항과 황영조 선수가 1등으로 들어온 바르셀로나올림픽 주경기장, 인근 길가 언덕에 조성된 황영조 선수 우승 기념존 등을 둘러보고, 유명한 몬주익 분수쇼를 내려다볼 수 있는 카탈루냐 미술관 방문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바르셀로나 항에 있는 콜롬부스상
바르셀로나 항에 있는 콜롬부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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