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이제 야만에서 벗어날 때···
[이계송칼럼] 이제 야만에서 벗어날 때···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20.02.06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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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친구들 만나기가 두렵다. 정치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고, 견해 차이로 우정을 해치는 일이 다반사기 때문이다. 다정했던 친구가 갑자기 ‘괴물’이나 ‘또라이’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당혹스러운 일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미국에 살더니 사람이 변했다.” “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뺨 맞는다.” 자신의 견해만이 100% 옳다는 확신에서 무심코 해대는 이런 말은 비수가 된다.
  
얼마 전 친구 A가 <고교동창카톡방>에서 다른 두 친구와 나눈 정치적 설전을 그대로 카피해서 나에게 보내왔다. 재미있었다. A가 <중앙선데이>지 모 기자가 쓴 칼럼을 카톡방에 올렸던가 보다. 이를 읽은 친구 B가 “아직도 조중동에 경도되어있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고 비꼬면서, “쓰레기 같은 것들이 아는 것은 많아요. 느그들도 기자냐?”라고 덧붙였다. A가 곧바로 받아쳤다. 한쪽만 치우치지 말고 인내하며 두루두루 들어보고 판단하라면서 “자네 같은 사람들 보라고 올린 거여”라고 약을 올린다. A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B를 향해 “속 뒤집은 김에 하나 더 올려 불라네. 자네 선배가 쓴 글잉께 한번 읽어봐”하면서 조선일보 모 기자의 칼럼을 올려놓았다. (B 역시 침묵하지 않는다. 대화는 계속된다.)

B: “중국 우한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전세기로 실어와 아산과 진천에 임시 수용키로 한 조처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야당’ 강세 지역이라 그곳에 정했다는 기사가 있었지, 그 기사 때문이었는지 처음에는 그곳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다가 ‘편히 쉬다 가라’는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하더군. 민초들이 유식한 기자들보다 더 실겁지 않은가? 조중동은 아베한테 사죄하지 않으면 6개월 내에 나라가 망한다고 했는데, 지금 망했는가? 이곳이 내 유일한 단톡방이니 제발 나가지 않게 해주세요.(아마도 조선일보류의 주장은 카톡방에 올리지 말라는 뜻일 게다)” 
A: “(자네는) 조선일보도 보는 모양이네. 이런저런 소리 들어보고 각자가 지가 판단허는 거여. 맘에 안 들어 꼬라지가 나드라도 그러려니 허고 참으랑께. 나가불란당께 겁나네. 자네 보라고 올린 글인데 자네가 나가불먼 이런 글 못 올리잔혀?”
B: “나도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세. 나폴레옹이 알바섬인지 센트 헬레나에선지 탈출했을 때 나폴레옹이 파리에 접근하는 거리에 따라 파리 신문 기사의 논조가 변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고... 다음 동영상은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지명될 당시 TV조선에서 피거품을 물고 반대하던 영상이여. 천하의 파렴치한을 의인으로 바꿀려면 당시의 잘못이라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동영상 올림) 
A: “TV조선이 아니고 엄 모씨 개인의 소견이구만. 그나저나 자네는 TV조선도 보고 조선일보도 보면서 왜 날더러 조중동 보냐고 꾸중이여? 세상은 ‘みんな泥棒です’(모두 도둑놈이다) 아닌가? 조물주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아!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고, 뿔다구 나도 짓누르고 사는 것이 인생 아닌가? 그냥 열린 마음으로 살다 죽세나!” (친구 C가 끼어들었다.) 
C: “그냥 죽자는 말은 허지 말고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 안 받고 신나게 살고 갈 것인가를 생각허세. 앞에서 중앙선데이 기자가 쓴 기사에 관해 존경하는 두 친구가 각자 소신 발언을 했는데 이에 대해 또 나까지 끼어들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고 단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기자의 얘기에 너무 관심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네. 왜 그자는 국정농단 이후에는 자한당의 하는 짓을 보고 자한당은 이 땅에서 영원히 없어져야 할 당이라고 핏대를 올리며 주장했었는데, 이제 와서는 또 문정권은 이제 끝났다고 마치 심판자처럼 그럴듯하게 사설을 늘어놓으면서 이 장단 저 장단 북치고...” 
A: “심판자의 눈으로 이놈도 치고 저놈도 치는 것이야 말로 치우치지 않은 언론인의 참모습이고 정론이네.” 
B: “벨 말씀을 해쌌소. 기자가 심판자여? ‘비판자’를 잘못 쓴 것 아닌가? 이놈도 치고 저놈도 치는 것이야말로 치우치지 않은 언론인의 참모습이라고? 깡패 양아치 건달 모리배 불한당(더 나쁜 표현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천방지축, 좌충우돌 ‘무논리’로 지가 한 말 지가 뒤집고 아무한테나 시비 거는 놈들이 ‘정론’이라고? 박근혜의 ‘통일 대박론’을 써준 놈들이 누구랑가?”
A: “내가 봉깨 문 모. 추 모 등이 지가 헌말 뒤집든디. 글고 심판자는 C동무가 허신 말씀을 인용헌 것이여. 열을 좀 식히시게.”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벌인 설전이었다. 친구 A에 따르면 이렇게 대화가 끝나고, B가 카톡방에서 탈퇴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B 스스로 격분(?)을 참지 못한 것 같고, A가 설전의 내용을 나에게 보낸 연유로 보였다. 친구들 간에도 A, B, C 셋은 평소 정치적 견해로 각을 세운다고 알려져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서로 인식 공격만은 자제하고 있어 보인다. 쌍욕짓거리로 인신공격을 해대고, 당장 상대를 죽일 것처럼 험한 말을 쏟아내는 카톡방들과는 달라 안심이 되었다.
      
대화는 듣는 데서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대화로 꽃을 피운다. 상대를 논리로 제압하는 게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성숙된 과정이다. 정치적 대화의 화자는 모두 정치가가 아닌 정치가다. 직업 정치인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로서 지식인의 역할은 정치인 못지않다. 영국 민주주의는 이런 오피니언 리더들에 의해서 성숙됐다. 서로 수백 년을 원수지간으로 싸웠던 유럽의 국가들이 EU를 만들어낸 것도 정치적 성숙의 결과다. 정치의 목적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 과정 또한 아름다울 때 이미 그런 세상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양대 진영으로 나눠 피터지게 싸우는 우리사회가 야만인 이유다. 세계 12대 경제대국의 국민답게 성숙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정치적 담론들이 모두 수용되어 무지개처럼 꽃피우는 멋진 사회를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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