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57] 베이징(北京)의 두 여인
[유주열의 동북아談說-57] 베이징(北京)의 두 여인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0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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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말기 예부시랑(외교차관) 석성(石星)의 부인 류씨는 조선의 역관 홍순언(洪純彦)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 그녀가 결혼 전 부모를 여의고 금전적으로 곤란을 당하던 중 우연히 홍순언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건국 이래 해결되지 않은 종계변무(宗系辨誣) 건이 있었다. 명의 대명회통에 태조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로 잘못 기록된 것이다. 조선은 수차례 변무사절을 보내 수정을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못한 채 200년이 흘렀다.

1584년 선조는 대제학 황정욱을 정사로 하는 변무사절단을 다시 꾸리고 홍순언을 역관으로 수행토록 했다. 조선의 사절단이 베이징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예부의 관리 중에 뜻밖에 시랑 석성이 있었다. 석성은 부인의 은인인 홍순언을 집으로 초청 크게 연회를 베풀었다. 홍순언이 외교 현안인 종계변무건의 해결을 부탁하자 석성은 보은의 뜻으로 대명회통을 바로 잡아주었다.

수년 후 홍순언은 청병 사신으로 다시 베이징에 왔다. 1592년 임진년,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운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해 국왕 선조가 몽진을 하게 된 급박한 상황이었다. 홍순언은 석성을 만나 사태의 위급함을 호소하고 때를 놓치면 전쟁이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확대될지도 모른다면서 신속한 구원군 파병을 요청했다.

명의 조정에서는 조선이 일본군을 앞세워 명을 공격한다는 등 일본의 출병을 믿지 않으려는 별별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한 해 전 병부상서(국방장관)가 된 석성은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순언의 말을 믿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논리로써 황제 만력제를 설득해 조선에 원병을 파병키로 했다. 류씨 부인과 홍순언의 특별한 인연이 조선을 위기에서 구하게 된 것이다.

석성은 일본과 상거래 경험이 있는 절강성 출신 심유경(沈惟敬)을 비밀리에 급파해, 평양성을 점령하고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교섭하는 사이, 이여송(李如松)을 장수로 하는 4만여 군대를 파병했다. 이른바 항왜원조(抗倭援朝)였다.

이여송은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여세를 몰아 고니시군을 추격했으나 일본군의 벽제관 매복에 걸려 대패했다. 석성은 일본군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강화교섭을 통해 전쟁을 끝내도록 작전을 바꿨다. 교섭의 전권을 받은 심유경은 역시 상인 출신인 고니시와 짜고 외교문서를 조작해 만력제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속이기로 했다. 1596년 9월 명나라 사신은 히데요시를 ‘순화왕’으로 책봉한다는 만력제의 임명장과 금인을 가지고 오사카로 갔다.

명나라 사신이 항복문서를 가지고 온 것으로 안 히데요시는 격노해 1597년 정유년에 조선을 재침했다. 만력제 역시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심유경을 공개 처형하고 석성을 파직 하옥시켰다. 석성은 자신의 운명이 다했음을 감지하고 부인 류씨에게 유언을 남긴다.

나라의 국운이 다해 머지않아 멸망하게 될 것으로 보이니 자녀들을 데리고 홍순언의 나라 조선으로 망명해 석씨 집안을 이어주도록 당부했다. 류씨 부인은 장남과 함께 조선 조정의 도움으로 석성의 고향 산동반도가 바라보이는 황해도 해주에 정착해 해주 석씨를 이루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 조정에서는 형개(邢玠)를 병부상서 겸 총독으로 임명 수군을 포함 수만의 군사를 파견, 전라도를 거쳐 충청도로 진격하는 일본군을 막았다. 히데요시는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규슈(九州)의 다이묘(大名, 지방영주)들에게 남해안에 왜성을 쌓아 전시물자와 탄약을 보관토록 하고 다른 다이묘들은 귀국, 군사를 재정비해 1599년 3차 침입을 준비시켰다. 그러나 1598년 히데요시가 급사함에 따라 7년에 걸친 전쟁은 끝이 났다.

두 번째 여인은 청나라 말기 기녀 출신으로 독일 공사 홍균(洪鈞)의 부인이 된 조씨이다. 안휘성 출신의 조씨는 강소성 소주에서 성장했으나 집안이 가난해 14세 때 기방(妓房)의 동기(童妓)가 됐다.

그 무렵 청 조정의 한림원대학사를 역임한 홍균이 고향에 내려왔다가 조씨를 만나고 그녀의 청순함에 끌려 기적(妓籍)에서 빼내어 첩으로 삼았다. 1887년 5월 유럽 4개국(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의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돼 독일 베를린에 주재하게 된 홍균은 첩의 신분이지만 젊고 두뇌가 명석한 조씨를 정식 동반배우자로 신청해 허락을 받는다.

베를린 현지에서 가정 교사를 초빙 독일어와 영어를 배운 조씨는 빼어난 미모와 외국어 실력으로 동양의 대국 청국의 공사부인으로서 손색없이 외교가 및 상류사회 데뷔에 성공한다. 특히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황후를 알현하고 알프레트 발더제 육군참모총장과도 교류했다. 공사관 근처의 티어가르텐 공원에 공사 부부가 산책을 나가면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고 한다. 홍균 부부는 베를린에서 딸을 낳는다. 딸의 이름을 독일에서 얻었다고 하여 덕관(德官)으로 지었다.

1892년 임기를 마친 홍균 공사는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홍균은 유럽에서의 외교활동이 평가돼 총리각국사무아문 대신(외교장관)으로 발탁된다. 증국번의 아들 증기택의 후임이었다. 그 후 홍균은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의 영유권 관련 러시아와의 교섭 실패가 문제돼 탄핵 파직된다.

상심한 홍균이 병을 얻어 사망하자 광서제는 나라의 인재를 잃었다고 비통해 했다. 홍균의 죽음으로 첩의 신분인 조씨는 딸마저 빼앗기고 홍씨가문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조씨가 할 수 있는 것은 고향 근처 상하이로 내려가 기생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한때 공사부인으로서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세련된 매너에 상하이 조계의 외국 상인을 비롯해 호상들의 인기를 얻어 명기(名妓)가 됐다. 조씨는 베이징으로 올라와 기방 ‘금화(金花)’를 인수해 독립하고 자신의 예명은 ‘싸이진화(賽金花 새금화)’로 정했다. ‘금화’를 능가하겠다는 뜻이다.

1900년 경자년, 중국에서는 실력자 서태후의 비호를 받고 멸양부청(滅洋扶淸)의 기치를 내건 ‘의화단의 난’이 일어났다. 베이징 거주 1,000여명의 선교사 등 외국인은 의화단의 공격을 피해 사관구(使館区, 외교단지)에 몰려들었다. 12개의 외국공사관이 있는 사관구는 자체 경비로 밤낮으로 의화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의화단에 의해 포위된 사관구의 공방전은 당대 최호화 캐스팅에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북경(北京)의 55일(55 days at Peking)’이라는 1963년도 미국 영화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열강 8개국 연합군은 텐진에 상륙 베이징으로 진격해 의화단을 진압, 사관구를 해방시키고 베이징을 점령했다.

서태후가 광서제와 함께 서안으로 도피해 버리자 베이징은 무법천지로 혼란 그 자체였다. 연합군은 의화단에 의해 입은 피해에 대한 복수를 핑계로 궁전을 약탈하고 양민을 무차별 살해했다. 베이징에 있던 싸이진화는 야만적인 연합군을 용서할 수 없었다. 연합군 사령관이 마침 베를린 시절 알고 지냈던 알프레트 발더제 육군참모총장임을 알고 사령관을 만나 강력 항의했다.

발더제 사령관은 옛 공사부인의 요청을 받아들여 더 이상 양민 살해와 약탈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싸이진화의 이러한 애국미담은 1930년대 상하이지역에서 일본군의 행패에 분노한 중국인들에 의해 소환돼 연극으로 공연하게 됐다. 주인공 싸이진화 역에 당시 톱여배우 왕잉(王瑩)과 란핑(蓝苹)이 경합을 했다. 결국 왕잉이 선발되고 탈락된 란핑은 공산혁명의 근거지인 옌안(延安)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후에 마오쩌둥의 4번째 부인이 된 장칭(江靑)이다.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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