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의 포스트 펜데믹 로드맵-㉙] 가상현실
[이종호의 포스트 펜데믹 로드맵-㉙] 가상현실
  • 이종호 한국과학기술인협회장
  • 승인 2022.01.01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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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나 SF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여기에서 사이버는 사이버스페이스 즉 컴퓨터 네트워크에 의하여 형성되는 공간을 말한다.

사이버스페이스란 말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이 1984년에 쓴 『뉴로맨서 Newromancer』에 처음 등장한다. 그의 소설에서 사이버스페이스란 컴퓨터로 인해 생성된 또 다른 공간을 말한다. 이후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단어는 컴퓨터의 비약적인 보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이제는 일반적인 단어가 되었다. 오늘날 사이버스페이스는 끊임없이 접속되고 있는 컴퓨터 시스템, 특히 인터넷으로 연결된 수많은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구현되는 세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가상현실의 개념은 사이버스페이스와 약간 다르다. 가상현실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매우 오래된 개념이다. 이는 비행기가 등장하자 비행 시뮬레이터로 출발하여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많은 조종사를 길러야 했는데 학자들은 비행 시뮬레이터로 50만 명에 달하는 조종사들이 교육받았다고 추정한다. 그 이후 영역을 더 넓혀 여러 군사 훈련용으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현실 세계에서 사이버스페이스와 가상현실을 동일한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므로 이곳에서는 주로 두 개념을 통합하여 ‘가상현실’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가상현실’이란 상반되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말인데 언뜻 보면 모순적인 말이다. 가상이란 현실에서의 힘, 즉 그 자체로 현실의 필수적인 조건이 될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 반면 현실은 현실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지각하는 대상의 현실과 가상만 놓고 본다면 이 구분은 매우 모호하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 그리고 우리 내부로부터 이끌어져 나온 것과 우리 밖에 존재하는 것 사이에 이원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에 작용하는 현상은 언제나 현실 즉 물리적인 현상이다. 반면에 우리의 뇌 속에서 인식되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에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면 그 대상은 현실이다. 그러나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신기루 현상 등은 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사이버스페이스로 한정시킨다면 이반 서덜랜드는 1960년대에 가상현실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최종적인 디스플레이는 물론 공간이 될 것이며, 그 공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컴퓨터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공간에 디스플레이 되는 의자는 충분히 앉을 만하며 수갑은 채울 수 있는 것이며 총알은 치명적일 것이다.”

1990년대에 토마스 퍼니스는 가상현실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가상환경 테크노놀로지는 인간이 참여할 수 있는 3차원 세계를 컴퓨터가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 세계는 가상으로 감각에 투영된 것이기는 하지만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3차원의 물체로 구성된다.”

이를 풀어서 설명한다면 가상현실이란 인간의 감각기관을 속여서 인공적으로 만든 세계를 경험하고 상호 대화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체험하는 이들은 실존하지 않는 물체들을 보고 듣고 만지고 조작하는 도중 이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을 돌아다닌다.

기계적인 면에서 볼 때 가상현실이란 종합적인 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가상환경 창조를 도와주는 일련의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을 뜻한다. 이는 인간에 의해 부분적으로 제어되는 환경 시뮬레이션의 특징을 지닌 인터페이스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가상현실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몰입형 가상현실(Immersive Virtual Reality)’과 ‘데스크탑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여기에 ‘제3자 가상현실(Third Person VR)'이 있는데 이 시스템은 비디오 화면과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된 방에 사용자가 들어가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여 이미 계획된 합성방법으로 화면에 재현시키는 기술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가상현실에 접근할 수 있고 사용방법이 간단하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아 여기에서는 앞의 두 가지만 설명한다.

① 몰입형 가상현실

몰입형 가상현실은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특수한 장비를 사용하는데 컴퓨터와 3D 이미지와 센서를 통해 말 그대로 ‘현실과 같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즉 사용자의 실제 세계의 감각적 자극을 폐쇄하는 대신 컴퓨터를 통해 가상화된 환경이 새롭게 조성되는 것으로 실제 세계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모의 환경에 사람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주로 전면에 스크린을 놓고 HMD(Head Mounted Display)와 데이터 장갑(컴퓨터 센서에 의해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장갑)과 같은 장비를 통해 사용자의 감각 능력을 완전히 폐쇄하는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 HMD는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장치로 인체안경의 원리를 이용한다. 이것을 응용한 HMD는 한 쌍의 CRT(Cathode Ray Tube)나 LCD(Liquid Crystal Display)에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따로 와 닿는 두 평면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서 영상이 움직이므로 사용자는 평면이 아닌 3차원의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HMD는 이미지를 불러올 뿐 아니라 컴퓨터의 입력장치 역할도 하는데 변환장치가 장착된 HMD는 그것을 쓴 사람의 머리 방향과 위치에 관한 데이터를 컴퓨터에 전달해 준다. 그리고 그 정보에 따라 컴퓨터는 입체시각 이미지를 계산하고 이에 따라 가상현실은 사용자의 움직임에 맞추어 역동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

촉각을 제어하기 위해서 데이터 장갑을 이용하는데 여기에는 입력장치 역할을 하는 탐지기들이 촘촘히 부착되어 있다. 이들은 손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손가락의 분절된 움직임을 컴퓨터에 전달한다. 데이터 장갑은 HMD와 동일한 탐지기를 사용하며 손가락을 따라 지나면서 모든 관절의 움직임을 측정한다. 몸 전체의 움직임을 검출하는 특수 의복이 첨가되는데 원리는 데이터 장갑과 유사하다. 특수 의복은 인간의 몸통, 팔, 무릎, 발을 포함한 사방 10피트, 14피트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인체의 움직임을 68개의 연결 고리를 이용해 추적할 수 있다. 이 옷은 특히 운동에 대한 감각 익히기, 인간 동작의 관찰,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모의 훈련 등에 유용하게 사용되어 컴퓨터 게임을 개발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들이 준비된 후에 청각을 해결하는 장비도 필요하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가상현실은 그야말로 의미가 없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정보의 70% 정도를 시각에 의존하며 청각으로 15%나 의존하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속의 각종 소리들은 사용자의 귀의 방향에 따라 변화를 주고 3차원의 가상공간 내의 특정 위치와 거리에 음원을 배치하여 음향의 가상공간을 체험해 준다. 음향을 가상현실에서 함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미지의 합성과 별로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미지가 공간의 구애를 받는 반면 음향은 시간의 구애를 받는다는 점이다.

시각이나 청각을 재현하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게 보이지만 우리가 가상현실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그것들의 표면적인 조합 즉 하나의 ‘콜라주(collage)'와도 같다. 가상현실에서 우리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는 현상들은 우리가 지각하는 순간에 바로 거기에서 뇌로 연결되는 형태의 독립적인 원인과 표출현상은 아니다. 이미지는 픽셀로, 음향은 표본으로 분해되는 과정을 거처 그것들의 후천적으로 조합돼 각각 이미지, 음향, 감촉들로 나타나는 것이다. 시각·촉각·청각 다음으로 후각도 실재감을 창출하기 위해 중요한 역학을 한다. 미각이나 후각 등 인체의 화학적 감각들은 특히 생생한 기억을 만들어 내므로 위험한 상황이나 감정 경험들 그리고 특히 성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데 유용하므로 게임에 이를 접목하여 보다 현실감을 느끼도록 한다.

② 데스크탑 가상현실

데스크탑을 이용한 가상현실은 PC용 가상현실 저작도구로 만든 3차원 입체 그래픽과 간단한 고글로써 구현이 가능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소 몰입감이 적다는 점은 있지만 데스크탑 가상현실은 3차원 영상을 표현해주는 VRML(Virtual Reality Modeling Language)로 구현되어 모든 형태의 그래픽과 영상을 3차원으로 표현, 처리할 수 있다. VRML은 일반적인 웹페이지 작성언어인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이 2차원을 표현하면서 인터넷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지만 현실생활을 표현하기에는 다소 부족하여 개발된 것으로 현실생활을 보다 생생히 표현할 수 있는 3D기술이다. 많은 사람들이 쇼핑몰이나 전시관, 모델하우스 등을 방문할 때 실감나는 영상을 제공하는 기술이 바로 VRML이다.

가상현실은 자연을 그대로 옮겨 올 수도 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 느끼고 행동하는 것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내어 마치 밀림에 들어가 있는 동물이 된 것과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박쥐의 소리와 똑같은 음향을 만들어 내고 그들이 보는 것들을 우리 눈으로 보며 거기에 연결된 동작탐지기를 이용해 우리의 팔을 움직여 날고 있는 감을 느끼게 한다.

필자소개
고려대학교·대학원 졸업, 프랑스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 및 과학국가박사 학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연구 활동
저서: 「침대에서 읽는 과학」,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직업」, 「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등 10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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