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96] 노블 하우스
[유주열의 동북아談說-96] 노블 하우스
  •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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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의 홍콩 모습
1860년대의 홍콩 모습

얼마 전 흘러간 명화로 제임스 클라벨 원작의 <노블 하우스(Noble House)>라는 영화를 보았다. 제임스 클라벨은 호주 출신으로 동남아시아에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 일본군의 포로가 됐다. 그는 당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싱가포르 창이 포로수용소(현 싱가포르공항 근처)에서 중국과 일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터득하여 전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영웅담을 소설화하여 인기를 끌었다. 특히 1980년대 일본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쇼군>이 미국의 TV 미니시리즈로 방영되어 그 시간대 길거리에 사람이 다니지 않을 정도로 시청률이 높았다고 한다.

<노블 하우스>는 중국과 관련된 작품으로 영국령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영국기업 자딘 매시슨 회사를 모델로 동 회사를 창설한 윌리암 자딘의 후손들이 회사경영과 관련, 라이벌 기업과의 갈등을 다룬 내용이다. 제임스 클라벨은 이에 앞서 <타이판(大班)>이라는 작품으로 아편전쟁 직후 영국이 중국(淸)으로부터 할양받은 홍콩에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기업이 어떻게 진출하여 상권을 잡게 되었는가를 보여준 바 있어 <노블 하우스>는 <타이판>의 속편으로 보기도 했다.

영화 노블하우스 포스터와 노블하우스의 작가 제임스 클라벨
영화 노블 하우스 포스터와 노블 하우스의 작가 제임스 클라벨

홍콩에 살아본 사람은 이화양행(怡和洋行: 자딘 매시슨의 중국상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된다. 홍콩의 중심가 완차이의 코즈웨이 베이와 센트럴(中環)은 이화의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부동산 부자이면서 일상생활과 관련되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hand-over)되기 전까지 홍콩을 움직이는 것은 영국 총독이 아니고 이화양행이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16세기부터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본격 진출한 영국은 1600년 네덜란드의 선례에 따라 동인도 회사를 세웠다. 동인도회사는 영국인에 맞지 않은 기후와 배를 자주 타야하고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등 근무환경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 내 신분사회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이들에게는 돈도 벌고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이었다.

외과의 윌리암 자딘의 초상화
외과의 윌리암 자딘의 초상화

1784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윌리암 자딘(William Jardin)은 에든버러 의과 대학을 졸업, 외과 의사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모험을 택했다. 동인도회사 소속 무역선의 선의(ship doctor)로 취직했다. 당시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인도에서 아편을, 필리핀에서는 설탕과 향신료를 수입하여 중국에 팔고 중국에서는 실크와 차엽을 수입, 영국에 파는 삼각 무역으로 큰돈을 벌고 있었다. 특히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 밀수한 아편 무역은 큰 수익을 내서 동인도회사 근무 직원에게도 복지 차원에서 일정 부분 아편 밀수를 허가했다.

회사로부터 시혜를 받아 아편 밀수 사업이 잘 되자 윌리암 자딘은 동인도 회사를 그만두고 12년 대학 후배 제임스 매시슨을 불러 중국 광저우에 ‘영국과 중국의 행복한 화합’이라는 의미의 이화양행을 설립했다. 당시 광저우에 있던 중국 정부가 허가한 외국인 상관 광저우(광동) 13행 중 하나가 됐다. 이화양행이 아편 무역을 크게 하고 있어 1839년 흠차대신 임칙서의 아편 밀수 단속에서 압류된 이화양행의 아편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압수한 아편에 석회를 섞어 바다에 침수시켜 폐기했다. 이 조치에 분노한 외국 상관들은 임칙서에게 항의하였고 마침 런던에 체류하고 있던 자딘은 영국 의회를 움직여 중국과 아편전쟁을 일으키도록 했다.

이화양행의 본사건물(자딘 하우스)
이화양행의 본사건물(자딘 하우스)

영국 정부가 아편전쟁 승리 후 1842년 난징조약을 통해 전리품으로 상하이 앞바다 저우산(舟山) 열도 할양을 주장할 때 자딘은 장래 대중무역의 거점을 위해 거의 무인도이면서 쓸모없어 보이는 바위섬이었던 홍콩섬 할양을 강력히 요청, 관철시켰다. 홍콩섬이 영국령으로 할양되자 제일 먼저 광저우의 이화양행 본사를 홍콩으로 옮기고 홍콩섬의 많은 토지를 우선적으로 불하받았다. 오늘날 이화양행의 ‘홍콩랜드’라는 부동산 회사가 관리하고 있는 토지는 당시 불하받은 것으로 홍콩 요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자딘은 생애 미혼으로 자녀 없이 1843년 런던에서 5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사후, 회사에서는 자딘의 누나 딸 생질녀의 아들 윌리암 케직(William Keswick)을 홍콩 본사로 파견해 이화양행의 타이판(大班, 회장)으로 임명한다. 1834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케직은 21세의 청년으로 중임을 맡고 홍콩에 도착, 상하이와 홍콩을 중심으로 하는 이화양행의 사업을 총괄했다. 그는 이화양행의 미래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다고 판단, 1859년 일본 요코하마에 이화양행의 지점을 개설했다.

이화양행의 로고 엉겅퀴 꽃(스코틀랜드 국화)
이화양행의 로고 엉겅퀴 꽃(스코틀랜드 국화)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 직전으로 집권자인 막부세력과 조슈 및 사쓰마 등 유력 지방영주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 막부가 프랑스의 지원으로 지방의 도막(倒幕) 세력을 견제하자 이화양행은 암암리에 도막 세력을 지원했다. 이화양행은 나가사키에 주재하는 회사대리인 토마스 글로버를 통해 미국 남북전쟁용으로 준비해 둔 자동소총 등 첨단무기를 조슈 등에 비밀리에 판매하여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는 데 일조했다. 또한 케직은 일본의 미래를 이끌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등 5명의 젊은 사무라이들을 영국에 유학시켜 영국과 일본의 우의를 돈독히 했다.

이화양행은 1883년 인천항 개항 후 우리나라에 제일 먼저 진출한 무역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의 외교 고문으로 파견되기 전 뮐렌도르프는 윌리암 케직과 연결, 상하이-제물포 왕복 정기항로 개통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금의 이화양행은 그의 5대손 벤 케직이 타이판(大班)으로 이어가고 있다.

아편전쟁 이전의 광저우(광동) 13행
아편전쟁 이전의 광저우(광동) 13행

홍콩의 중심부에 이화양행이 운영하는 스타페리 선착장과 익스체인지 스퀘어 건물 사이 179m 52층의 백색 건물이 우뚝 서 있다. 건물의 특색으로 창문이 모두 둥글둥글하다. 옛 무역선의 선창을 본떴다고 한다. 18세기 대항해 시절의 향수가 진하게 깔려 있다. 지금은 더 높은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많아 존재감이 줄었지만 1973년 동 건물이 이화양행의 본사 건물로 완공될 당시에는 아시아 최고기업 이화양행에 걸맞은 아시아 최고층 건물이었다고 한다. 영화 <노블 하우스>에서 노블 하우스를 상징하는 건물로 자주 등장하여 제임스 클라벨이 이화양행을 노블 하우스 모델로 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18세기 이후 영국의 해외 진출에 가장 기여한 사람들은 스코틀랜드인이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선박의 선주 기(house flag) 또는 회사 로고에 수호신 성 안드레아(St. Andrew) 십자가를 넣어 보호받고 싶어했다. 노블 하우스 이화양행의 로고는 다르다. 창업자 자딘의 고향 벌판에 흐드러지게 피는 엉겅퀴 꽃(스코틀랜드 국화)이다. 가시가 날카로워 아무나 꺾을 수 없는 불굴의 의미가 있다. 이 꽃이 아편꽃처럼 보여 사람들은 아편 밀수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자딘은 수호신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스코틀랜드의 미래에 대한 애국심으로 엉겅퀴 꽃을 회사 로고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태고집단(Swire Group) 로고
태고집단(Swire Group) 로고

영국이 아편전쟁으로 중국의 주요 항구를 개항시키기 전 중국은 이른바 ‘비단 장막’에 드리워져 있었다. 아편전쟁 후 중국의 ‘비단 장막’이 서서히 걷히면서 중국에 대한 서방의 관심이 늘어났다. 특히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으로 미 대륙에서 면화 원료를 공급받고 있던 영국 등 유럽의 무역상들은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영국 리버풀 출신으로 면화 무역상을 설립한 존 스와이어(John Swire)의 아들 사무엘은 중국 진출을 위해 중국 남부 상하이 근처를 찾았다. 그는 중국 서민의 생활에 관심을 갖고 시골 여행을 즐겨 하였다. 지금도 중국 시골에 가면, 대문이며 기둥 등에 누덕누덕 붙어있는 글귀가 있다. 그 글귀 중 가장 많은 것이 상하로 쓰여 있는 대길(大吉)이라는 글귀이다. 대길은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도록 기원하는 축문이다.

중국에서는 회사 등록을 위해 중국어 상호가 필요했다. 스와이어 사장은 중국 사람이 좋아하는 대길이 글자의 획도 간단하면서 반드시 좋은 의미일 것으로 생각하고 대길을 상호로 등록했다. 그러나 그가 기억한 대길이 태고(太古)로 등록됐다. 대길을 상하로 붙여 쓰면 글자 획의 위치에 따라 태고처럼 보인다. 어쨌든 좋은 이름이라서 그런지 태고집단(Swire Group)은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사업장을 옮겨 크게 번성, 이화양행을 이어 제2의 노블 하우스가 됐다. 태고집단은 홍콩에 제당 공장, 조선소를 경영했다가 지금은 그 자리에 거대한 아파트촌 태고성(太古城)을 세웠다. 우리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현지발음으로 타이쿠싱이다.

준공당시 태고광장(Pacific Place)의 외부 모습
준공당시 태고광장(Pacific Place)의 외부 모습

홍콩 중심에 애드미럴티(Admiralty)라는 바닷가 언덕 지역이 있었다. 홍콩을 방위하는 영국의 해군기지가 있었던 곳으로 1980년대 후반 홍콩 정부는 해군기지를 이전하기로 결정하자 홍콩 중심지의 금싸라기 땅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태고집단도 태고성을 개발하고 부동산투자에 열을 올릴 때였다. 홍콩의 부동산 하면 이화양행의 ‘홍콩 랜드’가 있었지만, 태고집단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 탓인지 태고집단에 불하가 떨어졌다.

태고집단은 언덕과 지하를 이용, 거대한 4층 레벨의 태고광장(Pacific Place)이라는 복합쇼핑몰을 짓고 그 위에 60~70층 규모의 3개의 최고급 럭셔리 호텔과 3개의 오피스 타워를 지어 올렸다. 호텔과 오피스 타워를 음양의 풍수에 따라 타원형과 사각 건물로 균형을 맞추었다. 3개의 호텔은 미국 힐튼 계열의 콘래드호텔, 세계 최대 규모의 호텔 체인인 J.W 메리어트 호텔 그리고 아일랜드 샹그릴라호텔이다. 샹그릴라호텔은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 로버트 곽(郭鶴年)이 1971년 싱가포르에서 최초로 호텔을 오픈한 이후 세계 각지에 샹그릴라호텔을 세웠다. 그중 홍콩 아일랜드 샹그릴라(理想鄕)호텔은 가장 화려하고 격조 있는 호텔로 알려져 있다.

캐세이퍼시픽 항공
캐세이퍼시픽 항공

1991년 오픈한 이 호텔 내에는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세계 최대의 산수벽화(大好河山, The great motherland of China)가 있다. 40명의 중국 화가가 6개월 걸쳐 완성시킨 51m(16개 객실층수) 높이의 대작으로 특수관람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볼 수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전국의 유명한 명승지가 그림 속에 들어있다. 태고광장은 2011년 영국의 토마스 헤더윅에 의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새로운 단장을 하였다.

1946년 창설된 홍콩을 거점으로 하는 세계적인 항공사 캐세이 퍼시픽 항공(Cathay Pacific, 國泰航空)이 있다. 캐세이는 옛 거란족을 서양에서 카타이로 불렀는데 캐세이는 카타이의 영어식 발음이다. 캐세이 퍼시픽은 2006년 홍콩의 제2의 항공사 드래곤 항공(Dragon Air, 港航)을 인수해 항공 네트워크가 확대됐다. 태고집단은 캐세이 퍼시픽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홍콩의 새로운 노블 하우스인 태고집단은 하늘(國泰)과 땅(太古地産)을 어우르면서 세계로 향하고 있다.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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