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28] 간토(關東)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아! 대한민국-228] 간토(關東)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4.01.27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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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2023년 9월 2일, 일본 도쿄의 변두리 아라카와 하천의 제방에서는 간토 대지진 때 일본인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한 수많은 조선인 추모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시민단체 봉선화(鳳仙花)의 젊은 회원들, ‘백년(百年)’이란 조직이 준비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어느 경찰의 “부모들과 아이들이 같이 줄지어 앉았다가 칼에 찔려 죽었다. 눈 뜨고는 볼 수 없었다”는 증언이 낭독되었다. “죽은 이는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살해당한 당신의 이름조차 모릅니다. 100년 전 이곳에 있었던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년에도 이곳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는 주최 측의 추모사도 있었다. 간토 대지진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지난 2023년 9월, 이렇게 크고 작은 추모행사가 일본에서만 10개나 열렸다.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도와 가나가와현 등 관동(關東-간토) 일대에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해 10만5천여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엄청난 재해의 와중에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며 수많은 조선인이 자경단 등에게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끔찍한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는 식민 본국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량의 인종학살로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독립신문은 이때 살해된 조선인을 6,661명으로 보도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학살 숫자는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숫자보다는 훨씬 많은 조선인이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조선인들이 대규모로 학살당한 명백한 역사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다. 이를 보다 못한 일본 시민단체들이 40여 년에 걸쳐 당시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적하고 기록하면서 학살의 면면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2003년, 일본의 변호사연합회는 ‘관동대진재 인권구제 청구사건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일본 정부가 유발한 책임이 있다며, 고이즈미 당시 총리에게 사죄와 진상규명을 권고했다. 1923년, 관동대학살 직후 의회에서도 나가이 류타로 의원을 필두로, 올해 시기오 히데야 의원까지 지속적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해 왔지만 일본 정부는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만이 이번에도 “일본 정부의 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 조선인 학살에 입 다물고 있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며 “잘못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현직 도쿄 도지사는 이번 행사에 40년간 이어서 보내오던 추도문조차 보내지 않았다.

한국 정부 역시 간토 학살에 대해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껏 한국 정부는 간토 학살에 대해 공식적 사과 요구는 물론 공동조사나 자료공개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도쿄에서 열린 ‘관동대진재 한국인 수난자 추념식’에 참석한 주일 한국대사는 ‘학살’이란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억울하게 희생된’, ‘불행한 과거사’ 등으로 언급하면서 일본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비록 100년의 세월이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유해반환, 관련 자료의 수집 등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는 물론 더 나아가 공동 진상규명이 양국 정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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