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주의 ‘박정희·김대중’-㉓] 1.21 사태의 파장
[강성주의 ‘박정희·김대중’-㉓] 1.21 사태의 파장
  • 강성주 전 MBC 보도국장
  • 승인 2024.02.1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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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과연 후세는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강성주 전 MBC 보도국장이 박정희와 김대중을 재조명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들을 연재로 소개한다.<편집자주>

대통령 박정희는 1.21사태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받은 충격의 정도는 그가 이 사태 이후 취한 조치들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는 50년이 더 지났는데도 아직 남아있다.

① 군 복무기간 연장= 1.21사태 한달 뒤 정부는 대간첩 작전부대 창설과 기존 군부대의 증강·증편 등을 이유로 학군장교(ROTC)의 복무기간을 2년에서 2년 3개월(27개월)로 늘리고, 사병들의 복무기간도 6개월 연장했다(2.23). 육군과 해병대는 2년 6개월에서 3년(36개월)으로 연장되고, 해군과 공군은 3년에서 3년 3개월(39개월)이 된다. 군의 훈련 내용에서도 열흘 동안 400km를 걷는 ‘천리행군’과 유격 훈련이 추가되고, 유사시 즉각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5분대기조’가 각 군부대에서 운용된다.

사실 어느 나라나 군인들의 복무기간은 병력 자원 수급과 안보상황, 사회적 여건 등에 따라 계속 바뀔 수 있다. 우리나라도 휴전협정이 성립된 1953년 기존 4년 이상 복무한 군인들에 대한 전역조치를 취하고, 육해공군의 복무기간을 3년으로(36월) 정했다. 이 복무기간은 1956년 33개월로 단축되고, 1962년에 30개월로 단축됐다가 1968년 다시 36개월로 연장돼 상당 기간 시행됐다. 군 복무 경험은 젊은 시절의 주요한 추억 가운데 하나지만, 제대날짜를 세고 있는 사병들에게 ‘3~6개월의 복무 연장’은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향토예비군 창설발대식(1968.4.1.)

② 향토예비군 창설= 이어 4월 1일에는 전국에서 250만 명 규모의 향토예비군이 창설된다.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에 대응해 이미 1961년 12월 ‘향토예비군 설치법’을 제정했으나, 예산 부족 등으로 시행령 등 후속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자 예비군 창설을 서둘렀다.

북한은 이미 59년 50만 명 규모의 준군사조직인 노농적위대(勞農赤衛隊)를 창설했다. 이어 북한은 62년 전(全) 군의 간부화, 전 군의 현대화, 전 인민의 무장화, 전 국토의 요새화라는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해 국방력 강화에 나섰다. 그 뒤 북한의 노농적위대는 붉은청년근위대, 교도대, 청년돌격대 등이 보태져, 북한의 예비 전력 규모는 700만 명으로 커진다. 말 그대로 전 인민의 무장화가 이뤄졌다.

향토예비군 창설과 함께 69년부터는 전국 고등학교 이상 학생들에게 교련(敎鍊) 교육이 실시된다. 교련교육, 특히 대학생 교련교육 의무화는 그 뒤 정부와 대학생 간에 큰 마찰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경상북도 도민증. 우리 역사에는 조선 시대에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호패(號牌) 제도가 실시되는 등 신분증의 역사가 오래전부터 기록돼 있다. 해방 이후에는 1950년부터 시민증 도민증 발행이 시작됐고,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지금의 주민등록증이 등장하게 된다.

③ 주민등록증제 실시= 1962년 5월에 제정된 ‘주민등록법’은 기존의 시민증과 도민증을 대체했다. 1950년부터 실시된 시·도민증제는 각 시·도 단위로 본적, 출생지, 주소, 직업, 신장, 체중, 특징, 언어, 혈액형 등을 기입해, 신상명세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21사태 이후 정부는 주민등록법을 개정해 개인 신상에 관한 내용은 줄이는 대신, 18세 이상 전 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18세 이상 전 국민에게 앞뒤 여섯 자리씩 모두 12자리의 고유번호가 부여됐다.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박대통령이 대전 주민등록증을 살펴보고 있다. (1968.11.21.)

초기 주민번호의 앞 일련번호 6자리는 거주하고 있는 시·군·구·동(市郡區洞)을 의미하다가, 1975년 개정 때 생년월일을 쓰게 됐다. 뒷자리 숫자는 해당 행정구역에서 등록한 당사자의 순서를 나타냈다. 1968년 당시 박 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는 110101-100001이었다. 앞자리 11은 서울, 다음의 01은 종로구, 그리고 나머지 01은 청와대가 위치한 세종로 1번지를 뜻한다. 뒷자리 100001은 해당 행정단위에서 제일 먼저 주민등록을 했다는 의미다.

주민등록증 제도는 현재까지도 변화를 거듭하면서 실시되고 있다. 전 국민을 스캔(scan)함으로써, 지하에서 암약하는 간첩, 범법자 같은 비주민(非 住民)을 색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주민등록을 하는 18세 이상 전 국민의 지문(指紋) 등록도 이뤄졌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 중이던 살인범 44명을 비롯한 강력범 962명의 신원이 밝혀져 무더기로 지명수배가 내려지기도 했다.(962명의 강력사범 신원 밝혀져 무더기로 지명수배, 1969.5.9, 중앙일보)

청와대 뒷산 백악마루의 ‘1.21사태 소나무’(일명, 김신조 소나무). 그날 밤 세검정에서 경찰의 검문을 받은 북한 무장 특공대 중 일부는 도주해 청와대 뒷산까지 접근해 군경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 나무에는 남북한을 구별할 수 없는 탄흔 15개가 새겨져 있다.

그해 늦가을(1968.10~11) 울진 삼척 지구에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들도 “경북사진협회에서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으러 왔다”며 마을 사람 30여 명을 불러모아 살해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993년 금융실명제를 도입할 당시,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만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이 제도 실시에 따른 명암이 엇갈렸다.

④ 청와대 뒷산 출입통제= 정부는 광화문 네거리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건립하고, 청와대 경비 강화를 위해 청와대 뒷산에 대한 통행 금지를 실시하고 북악스카이웨이를 개설했다. 청와대 뒷산 등에 대한 일반인 출입금지조치는 54년만인 2022년 4월에 모두 풀렸다.

필자소개
MBC 보도국장, 포항 MBC 사장,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서울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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