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22] 음식 디미방(飮食知味方)
[아! 대한민국-222] 음식 디미방(飮食知味方)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3.07.22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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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1670년경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조리 책 <음식 디미방>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훗날 그의 후손들이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 - 안방 부녀자들의 길잡이)>이라는 한자 제목을 붙여 집안에 전해 내려오게 했다. 이 책은 한국 최고(最古)의 요리책으로, 미국의 요리전문 매체 ‘Tasting Table’이 최근 한국음식의 세계적인 인기를 전하면서, 최초의 한글 요리책을 펴낸 조선 시대의 여인 정부인(貞夫人) 장계향(張桂香·1598~1680)을 소개했다. 이 요리책에는 146가지의 조리법이 채록되어 있어, 과연 이 책은 여성에 의해 쓰인 동아시아 최초의 요리 필사본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책에는 면(麵)과 떡 종류 18종, 어육류 37종, 채소 식품의 저장법 20종, 술 양조법 51종, 식초 담그는 법 3종 등이 한글로 수록되어 있다. 개장꼬지, 대구껍질 느르미, 곰 발바닥(웅장) 요리법 등 온갖 진기하면서도 전통적인 요리법을 두루 망라하고 있다.

다만 당시는 아직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이전이어서 고춧가루와 관련된 요리법은 전혀 실려 있지 않다. 그러나 당시 반가(班家)에서 행하는 온갖 요리법을 망라하고 있어서 시대의 음식 경향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저자는 경북 안동에서 인동장씨 집안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해 시문(詩文) 서화(書畵)에도 뛰어나 일찍이 열 살을 전후에서 벌써 ‘학발시(鶴髮詩)’, ‘성인음(聖人吟)’ 등 탁월한 시를 써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당시의 관습대로 시문 서화는 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 해서 접을 수밖에 없었고 일찍 아내를 여윈 부친의 제자 이시명과 19세 나이에 결혼해 재령이씨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학문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에 어깨너머로 배운 한글로 공부하고 연구해 72세 나이에 ‘음식 디미당’을 써냈다. 지(智)와 덕(德)을 겸비한 현모양처였으며 효녀이자 효부로 율곡 이이 선생의 어머니 신사임당에 비견되는 영남의 여류 시인이자 자선가였다. 그의 셋째 아들 이현일이 이조판서에 오르면서 정부인(貞夫人) 칭호를 받았다.

장 부인은 신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인들도 똑같이 귀한 인간으로 대했으며, 또 “함께 사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불우한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믿어, 수시로 주변에 굶주리는 집을 보살피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미국의 요리 전문 매체가 장 부인을 소개하면서 그를 가리켜 시인이자 자선가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장 부인은 또, 자녀들에게는 항상 “너희가 글을 잘한다는 소리가 주변에 들린다 해도, 나는 그것을 크게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착한 행동을 했다는 말이 들리면 나는 그것을 즐거워하여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쳤으며, 특히 노인, 과부, 고아 들을 보살피고 돕는데 정성을 다했다.

재령이씨로 그의 후손이 되는 작가 이문열이 1997년 쓴 소설 <선택>에서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한국의 여성 운동가와 페미니즘을 조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한국요리의 원전이라 할 최초의 요리책을 한글로 써냈다는 것이 그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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