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북창이 맑다커늘
- 임제
북창(北窓)이 맑다커늘 우장(雨裝)없이 길을 나니
산(山)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임제(林悌, 1549~1587): 호는 백호(白湖), 예조정랑(禮曹正郎)을 했으나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두루 찾아다니며 풍류 생활을 즐긴 39세에 요절한 천재(天才)다. 작자가 평양의 명기(名妓)였던 한우(寒雨)를 찾아가서 부른 노래로, 기녀의 이름을 중의적으로 표현하여 사랑을 호소하고 있다. 찬비를 맞았다는 것은 한우에게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고 ‘얼어 잔다’는 것은 오늘 밤 그녀와 사랑을 나누겠다는 은근한 표현이다. 이 시조의 중장에 나오는 ‘찬비’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기생 ‘한우’를 비유한 말이다.
* 현대시조
봄비
- 박기섭
하늘 어느 한갓진 데 국수틀을 걸어놓고
봄비는 가지런히 면발들을 뽑고 있다.
산동네 늦잔치집에 안남(安南) 색시 오던 날
박기섭(朴基燮, 1954~):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나온 시인이다. 봄비는 그가 펴낸 시집 각북(角北)에 나온 시다. 각북은 경북 청도군에 속한 지명이다. 봄비는 요란스럽지 않게 조용조용 시나브로 내린다. 그래서 그 빗줄기를 국수의 면발로 표현해 보이고 있다. 한가롭게 떠도는 봄날의 구름을 한갓진 곳에 설치해 놓은 국수틀로 환치하고 거기서 내리는 비를 국수 가닥으로 표현한 점이 새롭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식에는 꼭 국수를 먹는 행사로 정서적인 자리매김을 하는 점을 여기에 접목하여 산동네로 시집오는 월남(베트남) 색시를 여기 등장시켜 산골 총각이 늦장가 가는 날로 상황 설정을 하고 있다. 어딘가 조금은 어설픈 날, 외진 환경 속에 쓸쓸하게 비가 내리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