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삼성 독립유적지 답사기] 내 마음에 새긴 양세봉 장군
[동북삼성 독립유적지 답사기] 내 마음에 새긴 양세봉 장군
  • 임희진(선양한국국제학교 11학년) 
  • 승인 2018.05.1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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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되찾는 데 무슨 이념이 중요하랴?”   

4월29일부터 5월1일까지 중국 동북삼성에 흩어져 있는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했다. 지난해 12월 선양 한중교류문화원이 주최한 ‘제1회 청소년 UCC 공모전’에서 수상해 답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29일 발대식에서 한중문화콘텐츠연구소의 안상경 박사가 “이번 답사의 목적은 항일투사들의 삶과 그들이 전개한 사건들, 그리고 그 의미와 가치를 직접 체험하는 것”라고 말했다. 안 박사는 참가자들이 답사 내용을 보다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해설서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2018년 상반기 동북삼성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발대식
“울고 있는 이시영,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남들과 달리 그는 왜 울고 있을까요?”<br>
“울고 있는 이시영,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남들과 달리 그는 왜 울고 있을까요?”

2박3일 동안 의암 기념원, 양세봉 장군 기념비, 7인 열사능원 등 다양한 유적지를 다닐 수 있었으며, 이러한 체험을 통해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동북삼성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양세봉 장군 기념비’였다. 양세봉 장군 기념비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만주에서 활동했던 양세봉 장군을 기리기 위해 만든 흉상이다. 양세봉 장군 기념비는 동북삼성 요녕성 무순시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왕청문 소학교에 있었지만, 학교가 한족에게 넘어가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됐다고 한다. 

기념비가 양세봉 장군의 늠름함을 잘 담았다고 생각했다. 해질녘 노을이 양세봉 장군의 근엄한 표정을 부각시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다른 참가자들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로 이곳을 뽑았다.

양세봉 장군 기념비에서 안상경 소장이 역사 해설을 듣고 있다.

역사 교과서에는 양세봉 장군을 그저 조선혁명군 총사령이라고만 소개됐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양세봉 장군은 1896년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에 큰 감동을 받아 항일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20대 때 그는 3.1 운동의 영향을 받아 천마산대에 입대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후에 만주에서 활동하던 개별 항일무장단체가 조직한 조선혁명당으로부터 총사령으로 임명받아 많은 전투를 주도했다. 

양세봉 장군이 활동했던 일제강점기는 무정부 상태였기 때문에 분열이 심했다. 양세봉 장군은  일생동안 통합을 위해 힘썼다. 양세봉 장군은 우리민족이 마음을 모아야 일제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양세봉 장군은 조선의 해방을 위해서는 자신의 이념과 다른 이념을 가진 세력과도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민족주의 계열과 협력하면서도 사회주의 계열과도 협력을 했으며, 중국 항일투쟁 조직과도 협력해 영향력 있는 조직을 만들었다. 그가 남한의 국립묘지와 북한의 혁명열사능에 모두 묘지가 있는 유일한 인물인 이유다. 

양세봉 장군은 조선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서 200여 차례 일제의 본거지를 습격하고, 이를 승리로 이끌었다. 일제강점기의 이순신 장군이었다. 이러한 그를 일본은 눈엣가시처럼 생각했고, 살해하고자 했다. 일본은 평소 양세봉과 돈독한 관계였던 아동양을 매수했다.

아동양은 러시아에서 밀반입한 무기를 싼 값에 제공하겠다고 양세봉을 유인해 그를 소황구촌 삼거리에서 사살했다. 결국 양세봉 장군은 끝까지 나라를 지키려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양세봉 장군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양세봉 장군이 좋은 지도자였던 것은 그가 용맹함을 가졌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통합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동북삼성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답사는 2박 3일 동안 1,200km를 달린 긴 여정이었다. 비록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답사였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신채호 선생은 말씀하셨다. 현재와 미래를 알고자 하면 과거를 보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역사 교과서에서 한 줄로만 표현되어 있는 역사 사건들을 외우기에만 급급했지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현장에서 생생한 역사를 직접 보고 들으니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고, 답사에서 들었던 역사 사건 외에도 다른 역사 사건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깊게 이해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한 사람에 의해 써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의해 써진다. 우리 모두 항일투사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항일투사들이 어렵게 지켜낸 대한민국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북삼성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온다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 

임희진(선양한국국제학교 11학년)<br>
임희진(선양한국국제학교 1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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