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사자성어] 대음희성(大音希聲)
[미학의 사자성어] 대음희성(大音希聲)
  • 하영균(상도록 작가)
  • 승인 2020.08.0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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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음 희성(大音希聲)이라는 말은 노자가 처음 도덕경에서 말한 것이다. 

“큰 네모는 귀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진다. 큰 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도덕경에 있던 구절인데 큰 네모는 귀퉁이가 없다는 것은 너무 넓어서 잴 수가 없다. 즉 잴 수 없으니 귀퉁이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 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계속 커가는 그릇이기 때문에 그 늦어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어원이 바로 이것이다. 또 큰 소리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데 작은 소리는 우리가 잘 듣는다. 모깃소리 파리 소리 라디오 소리 차가 다니는 소리는 들리지만, 지구가 움직이는 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아마도 가장 큰 소리일 것이다.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이니 얼마나 큰 소리일까 그러나 인간은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즉 들을 수 있는 만큼만 듣는다. 큰 소리는 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듣는 것이다. 그리고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고 하는 구절도 우는 모양을 알 수가 없다. 이미 우리의 인식 밖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나름 짐작하는 우주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모양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 

대음희성(大音希聲)은 노자의 소리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 준다. 대음희성(大音希聲)의 예술적 의미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들을 수 있는 수준만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소리를 듣기 위해서 큰 귀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귀로는 들을 수 없다. 대신 큰 귀를 가지고 있으면 듣지 못했던 소리도 들린다. 마치 전파 망원경을 가지고 있으면 멀리 보이지 않았던 우주의 별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둘째는 그 소리는 자연의 소리라는 것이다. 큰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즉 자연의 소리이다. 바다가 움직이는 것은 듣지 못한다. 엄청난 힘으로 소용돌이치는 해류는 소리가 없다. 그 소리가 안 들린다. 큰 강물이 흘러가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시냇물은 들리지만, 강물은 소리가 없다. 셋째로는 그 큰 소리는 온전한 소리이고 최상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소리라는 것이다. 세상에 자연으로 만들어진 것 그 무엇도 도가 아닌 것이 없다. 큰 소리로 만들어졌으니 도를 이룬 것이다. 큰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그것은 도를 이룬 것이다. 음악도 결국 큰 소리를 만들어 내어 자연의 소리에 가까워질 때 온전한 소리고 최상의 소리가 되는 것이다. 


노자는 음악가의 사명을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보았다. 자연의 소리가 바로 도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고 하늘의 섭리를 반영한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노자 이후 예악을 정리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자연의 소리에는 그 원리가 담겨 있는데 이런 사실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사람이 피타고라스이고 현을 중심으로 한 그 황금율에 의한 음악 체계를 만들어 내었다.

당연히 동양 즉 중국에서도 이런 기준으로 음악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 기준을 피리와 같은 율관를 중심으로 한 황종율로 삼아서 음악의 기준을 만들었다. 자연의 원리를 반영한 음악이 완성될 때 그 음악은 자연 속으로 묻힌다. 그리고 단순히 시끄러운 소음이 아니라 그 소리는 사라지고 우리는 황홀한 음악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소리가 소리가 아니라 감각으로 환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때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체험하는 것이다.

옛사람들이 자연에서 음악을 연주하면서 자연 속으로 음악이 융화되도록 만든 것이다. 자연이 곧 음악이고 음악이 곧 자연이다. 음악이 바로 도의 길이고 표현인 것이다. 음악을 통해 도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음희성(大音希聲)이란 도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고 음악의 바로 대음희성(大音希聲)의 축약된 형태이고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대음희성(大音希聲)의 철학은 정점에는 바로 무현금(無絃琴)이 있다. 무현금(無絃琴)이란 현이 없이 금(琴)을 말한다. 무현금(無絃琴)에 관한 시를 화담 서경덕은 남겼다. 

無絃琴銘(무현금명) 
琴而無絃(금이무현)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 
存體去用(존체거용) 본체(體)는 놓아두고 작용(用)을 뺀 것이다. 
非誠去用(비성거용) 정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 
靜基含動(정기함동) 고요함(靜)에 움직임(動)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聽之聲上(청지성상)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不若聽之於無聲(불약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樂之形上(악지형상)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 
不若樂之於無形(불약악지어무형)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樂之於無形(악지어무형)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 
乃得其(내득기)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며, 
聽之於無聲(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 
乃得其妙.(내득기묘)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 
外得於有(외득어유) 밖으로는 있음(有)에서 체득하지만, 
內得於無(내득어무) 안으로는 없음(無)에서 깨닫게 된다. 
顧得趣平其中(고득취평기중) 그 가운데에서 흥취를 얻음을 생각할 때 
爰有事於絃上工夫(원유사어형상공부) 어찌 줄(絃)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가? 

不用其絃(불용기현) 그 줄은 쓰지 않고 
用其絃絃律外官商(용기현현율외관상) 그 줄의 줄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 
吾得其天(오득기천)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 
樂之以音(락지이음)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 
樂其音(락기음)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 
音非聽之以耳(음비청지이이)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 
聽之以心(청지이심)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彼哉子期(피재자기) 그것이 그대의 지표이거늘 
曷耳吾琴(갈이오금) 내 어찌 거문고를 귀로 들으리? 

서경덕의 무현금명(無絃琴銘)에는 도가의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 즉 소리를 듣는 것은 마음으로 듣는 것이고 밖으로는 소리가 있음을 듣지만, 안으로는 소리가 없음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소리를 통해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없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면 그것은 자연과 합일되고 도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이다. 바로 자연의 소리를 즉 대음희성(大音希聲)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현재적 의미로 보면 대음희성(大音希聲)의 미학이 적용되는 부분은 어디일까? 바로 정원이다. 조금 더 확장하면 건축이다. 나라마다 정원을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일본 정원 중국 정원 그리고 영국이나 유럽식 정원이 다르다. 유럽식 정원은 자연과의 분리가 핵심이었다면 동양식 정원은 자연과의 융합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런 정원에 조용히 앉아서 묵상하다 보면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마음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린다. 때론 건축에서도 그런 대음희성(大音希聲)의 음악이 들린다.

정말 자연과 더불어 만들어진 건축에서는 자연이 통하는 소리가 들린다. 살짝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도 음악이요 창문을 닫고 열면서 나는 미세한 소리도 음악이다. 빗소리에 유리창에 들려 오는 소리도 음악이요 건물 사이로 바람이 지나면 만들어 내는 바람 소리도 음악이다. 마치 조용히 듣다가 보면 건물에서도 그 나름의 소리가 난다. 정원도 건축은 무현금(無絃琴)인 것이다. 즉 음악은 도로 가는 길이다. 음악이 정원이 되고 건축이 되는 것이다. 정원과 전축의 미학은 눈으로 보는 단계에서 몸으로 느끼는 단계로 그리고 소리로 드는 단계로 높아진다. 그 최고의 단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대음희성(大音希聲)의 경지이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 졸업,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마케팅 전공 수료, 가치투자 전문 사이트인 아이투자 산업 분석 칼럼 연재(돈 버는 업종분석), 동서대학교 전 겸임교수(신발공학과 신제품 마케팅 전략 담당), 영산대학교 전 겸임교수(신제품 연구소 전담 교수), 부산 정책과제-글로벌 신발 브랜드 M&A 조사 보고서 작성 책임연구원, 2017년 상도록 출판, 2018년 대화 독법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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