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애국심(patriotism)에 대하여
[김재동칼럼] 애국심(patriotism)에 대하여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12.04 08: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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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관객지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고향이 얼마나 그립고 소중했었나를 알 수 있듯이, 고국을 떠나 타국에 살다 보면 애국심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디아스포라들은 공통 적으로 모국에 대한 애국심이 떠나와 보니 커졌다는 말을 한다. 내가 처음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꼈던 것은 호주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였다. 1988년 2월의 그 경험은, 내 안에 애국심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현대차가 1986년 호주에 진출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그날 나는 그 작은 항구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다운타운 쪽으로 나 있는 대로변에 현대자동차 딜러가 있었다. 현대(Hyundai)라는 글자가 내 눈에 들어왔을 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들고 저 차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차라고 외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2006년 미국 시카고대학 ‘국가 여론 연구센터(National Opinion Research Center)’에서 국가별 애국심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미국이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베네수엘라, 3위에 아일랜드, 4위는 남아프리카공화국, 5위에 호주가 이름을 올렸다. 조사대상 34개국 중 대한민국은 31위였다.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이 18위, 대만이 29위였다.

‘애국심(Patriotism)’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으로써 조국을,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는 국민적 감정이 밑으로부터 끓어오를 때에는 애국심은 전진적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국가권력의 유지 내지는 확대를 위하여 위로부터 교육 또는 그 밖에 강력한 수단으로 국민에게 애국심이 강제되었을 때에는 그것은 뒤를 향한 성격을 드러낸다.” 이 사전적 정의를 접하고 보니 왜 대한민국 국민의 애국심이 조사대상 34개국 중 31위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조지 손더스(George Saunders)란 미국 소설가가 있다. 초 단편 <막대>는 A4용지 두 장 분량의, 그가 쓴 작품 중 가장 짧은 소설이다. 미국 사람들의 애국심은 성조기에서부터 비롯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들에게 있어 미국기는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 그 이상의 무엇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깃발을 달기 위한 막대기(국기 게양대), 조지 손더스의 소설 속 쇠막대는 주인공인 아버지가 특별한 날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장식하는 막대로 사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기를 내걸 수 있는, 국가에 존경심을 표할 수 있는 전천후 막대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처음 미국에 도착해 적응하느라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 동네를 산책하던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분명 그날은 미국 국경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가정에서 국기를 내걸고 있었다. 유리창 안쪽에 아예 장식으로 걸어두는 집이 있는가 하면, 현관 기둥에 설치되어있는 작은 게양대에 내거는 집도 있었다. 심지어 집 앞 정원 중앙에, 관공서 건물 앞에서나 볼법한 국기 게양대를 설치해 국기를 내거는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층 창문 너머로 내다보면 가정집에서 내건, 너덧 개 성조기가 국기 게양대에서 나부끼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1995년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직후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나 같은 케이스는 수도 없이 많다. 단지 한국계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 등등 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일이다. 거꾸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메리칸 인디언을 제외하면 미국인들에게는 각자 떠나온 고국 이름 뒤에 계(系)란 말이 붙는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수식하는 역할을 한다.

2002년 동계올림픽이 내가 사는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렸다. 올림픽 오벌(Olympic Oval) 경기장에서 쇼트트랙 결승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김동성 선수가 1500m 경기에서 1등으로 들어왔다. 그에게 태극기가 건네졌고, 그것을 휘날리며 아이스링크(Ice rink) 위에서 세리머니를 할 때만 해도 금메달이 확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심판들이 판정을 내리지 않고 비디오 판독을 하는 등 시간을 끌고 있었다.

어이없는 일은, 마지막 바퀴에서 오노가 김동성을 추월하기 위해 오른팔로 그의 허벅지를 밀쳤다. 안 되니까 두 팔을 약간 위로 올리며 특유의 액션을 취했다. 결국, 2등으로 들어온 일본계 미국인 아폴로 안톤 오노가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심판들이 김동성을 탈락시킨 것이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 선수가 금메달을 빼앗겼을 때, 나는 오노와 미국에 분개했었다.

그날 올림픽 오벌 경기장에는 5만 명 이상의 관중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중 90%가 미국인들이었다. 오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등으로 들어온 김동성 선수에게 오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미국 손을 들어준 심판들의 일방적인 편파 판정에, 미국인 관중들은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가 2002년에 이어 2034년 동계올림픽을 다시 한번 유치하게 되었다. 2002년에 비해 대한민국의 국력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K 문화(culture)의 세계화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의 위상이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10년 후에 있을 2034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국력이 약해 세계인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금메달을 도둑맞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은 국제경기에서 최우선적으로 한국을 응원한다. 그다음이 미국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독일이 붙으면 미국을 응원하고, 미국과 한국이 붙으면 한국을 응원하는 식이다. 애국심은 강요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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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걸부 2023-12-04 12:17:35
어쩌면 이민 1세대만이 공유할 수 있는 한국에 대한 가슴 아린 '애국심'이겠지만, 세계방방곡곡에 흩어져있는 '한국계'로 구분되는 사람들 중의 한명으로써 공감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자랑스러운 부모의 나라로 기억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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