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소금호수의 갈매기
[김재동칼럼] 소금호수의 갈매기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29 09: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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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를 휘감은 희미한 띠가 화석의 그림자처럼 끝도 없이 흐르고 있다. 그 띠의 흔적을 따라 보나빌(Bonneville Shoreline Trail) 해안선이 만들어졌다. 빙하기에 형성된 보나빌 호수(Lake Bonneville)의 수면은, 로키산맥의 기슭과 맞닿아 있었다. 3만 년이란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호수의 물은 태양을 연모하여, 하늘로 날아가기를 반복했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아직도 거대하지만, 이전보다는 수만 배 작아진 보나빌 호수의 흔적은, 오늘날의 소금호수(Great Salt Lake)로 남아있다. 거대한 민물 호수가 증발을 거듭하여 염분 함량이 바닷물의 다섯 배가 넘을 정도로 농도가 짙다.

상상해 보라 수만 년에 걸쳐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증발했겠는가를. 해발 1400미터 고산지대에 자리 잡은 소금호수에는 수천 마리의 갈매기 떼가 서식하고 있다. 갈매기는 호기심이 많은 새다. 먼 옛날 700마일이나 떨어진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한 무리의 갈매기가 내륙으로 먼 여행을 떠났다. 사막뿐인 광야를 날다 지쳐, 대부분 갈매기는 태평양 연안 캘리포니아 해안으로 다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암수 두 마리만이 북쪽으로 더 날아왔다. 얼마 후 그들이 발견한 것은 바다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소금호수였다. 갈매기는 호숫가에 둥지를 틀었다.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뼈를 묻었다. 세월은 흘러 소금호수는 이제 갈매기의 낙원이 되었다.

로키산맥(Rocky Mountain)의 한 줄기인 와사치 산맥(Wasatch Mountain)이 성벽처럼 계곡 끝에서부터 동쪽으로 웅장하게 솟아있다. 서쪽으로는 오크라 산맥(Oquirrh Mountain)이 방패처럼 맞은편 성벽을 옹호하고 있는 형상이다. 두 산맥이 타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계곡 안의 도시가 바로,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이다. 유타주의 수도인,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맥은 마치 왕관을 연상케 한다. 왕의 정수리 부분에 해당하는 계곡 안쪽 분지, 보나빌호수의 가장 밑바닥이었던 자리에 도시는 건설되어 발전해왔다.

문득, 내가 이 도시에 처음 도착하던 날이, 소금호수의 새벽 물안개처럼 피어난다.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 길에 갯벌 냄새를 맡았다. 분명 고향 갯가에서 맡았던 그 갯내음이었다. 내륙 깊숙이 자리한 고원에서 바다 냄새가 날 리 없었다. 긴 여행 끝에 피곤 에 지쳐, 고여 있는 하수도 냄새를 고향의 그 냄새로 착각했나 보다 생각했다. 이 도시에 아무런 연고가 없던 터라 첫날부터 공항 근처 모텔에서 하룻밤을 유숙해야 했다.

새벽녘 환청처럼 갈매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곰소 선창에서 듣던 그 갈매기 울음소리가 분명했다. 그렇게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 밤을,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어떤 신비 감속에서 지새웠다. 신기루처럼, 기억 저편 유년 시절이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린다. “어이 기화! 한잔하지? 오늘은 아들놈 꿰차고 나왔구먼, 그렇게 좋은가?” 장 씨 아저씨가 사내에게 갯내음 섞인 인사를 건넨다. “아들아! 잘 자라야 한다.” 아버지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내 나이 대여섯 살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가끔 아버지를 따라 곰소엘 갔었다. 곰소 선창은 아버지의 직장이자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터전이었다.

내 고향은 변산반도 아래쪽 후미진 줄포만(灣) 갯벌지역에 위치한 포구, 줄포(茁浦)이다. 줄포항이 항구로서 기능을 상실한 후부터 아버지는 생활 터전을 곰소로 옮겼다. 해방 이전만 해도 항구로서 군산항과 경쟁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면 소재지로 경찰서, 극장, 병원, 소학교, 중학교, 도정공장 등이 들어선 곳은 줄포 항이 유일했다. 만경강과 동진강 일대의 북부 호남평야에서 수확한, 질 좋은 벼를 쌀로 정미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역할을 줄포항이 했다.

일본식 건물과 일본인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줄포항은 군산, 곰소, 위도와 함께 어업이 성행했다. 그중에서도 젓갈로 유명했다. 그러나 줄포항은 60년대로 들어서며, 항구로의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위기에 부딪혔다. 60년대 중반 간척지에서 흘러들어온 토사가 쌓이면서 항구의 기능을 서서히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1960년대 후반에 폐항되었고, 그 기능은 곰소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로 인해 줄포 읍내도 서서히 도시의 기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은 어선들은 70년대 중반까지도 부두에 접안 할 수 있었다. 줄포의 번화가에는 그때까지도 젓갈 가게가 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을 만큼, 중심 상권은 젓갈 도매상이 쥐고 있었다.

솔트레이크시티의 역사는 줄포가 항구도시로 만들어지던 시기와 비슷한 1847년에 시작되었다. 그 훨씬 이전부터 아메리칸 인디언인 유트족이 살고 있었지만, 백인들이 이주해 도시로서 기능을 발전시킨 것은 그때부터였다. 유타주를 상징하는 새는 캘리포니아 갈매기다. 이 도시와 갈매기는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다. 거기에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삶의 뿌리를 내리고자, 초기 개척자 들은 식량 공급원으로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토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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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크레이크 시티

어느 해 뜨겁던 여름날, 주민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엄청난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각자의 눈을 의심했고, 서로를 바라보며 이것이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낙담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주민들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으면, 메뚜기 떼를 순식간에 없애 버리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수천 마리의 갈매기가 날아와 온 들판을 시꺼멓게 뒤덮고 있는 메뚜기 떼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지치면 입에 물고 소금호수에 내다 버리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 갈매기가 날아와 개척자들의 생명줄인 농작물을 메뚜기 떼로부터 구해주었다. 소금호수에는 태평양 연안 바다 갈매기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그러하겠지만 나도 갈매기처럼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유년 시절 갯가는 내 놀이터였다. 밀물이 갯벌을 앗아간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 바다 너머엔 어떤 세상이 숨어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 날 밤이면 갈매기가 되어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이 현실이 되어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요즘 들어, 문득문득 고향이 그립다. 돌아가고 싶지만, 소금호수의 갈매기처럼, 이제는 쉽사리 돌아갈 수가 없다. 보나빌 트레일에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있다. 멀리 소금호수 위로 떨어지는 석양이 아름답다. 그리움처럼, 붉게 타오르는 황혼 속으로 여객기 하나 날아가고 있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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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걸부 2024-02-12 16:22:14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변화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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