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기꺼이 도어홀더가 되어 주는 사람들
[김재동칼럼] 기꺼이 도어홀더가 되어 주는 사람들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12 08:5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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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사람을 도어홀더(door holder)라고 한다. 은행 어카운트를 개설하기 위해 솔트레이크시티 다운타운에 있는 US Bank에 간 적이 있었다. 내 앞에 미국인이 은행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문을 잡고 서 있었다. 나는 그가 일행을 기다리는가 보다 생각하며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나를 보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빨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처음 보는 미국인이 나를 위해 무거운 문을 잡고 서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청년 시절인 1988년 봄, 미국에 도착해 좌충우돌 많은 일을 겪었다. 문화적 거리감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내가 가장 처음 느낀 문화 충격은 뒷사람을 위해 문 잡아주기였다. 그 불편함과 낯선 괴리감을 좁히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는, 뭐랄까 기분 좋은 불편함?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이라 서양문화, 특히 미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국내 여행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갑작스러운 미국문화와 대면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처음 몇 개월은 그런 불편함이 문화 충격일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지냈다.

미국인들은 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나올 때 주위를 살피고 뒤를 돌아본다.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기 위해서다. 뒷사람은 조금 잰걸음으로 화답한다. 그리고 땡 큐(Thank you!)라고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것은 그들의 일상이다. 언어처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체화된 것이다. 그런 미국인들의 문화적 자연스러움을 접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한동안 마음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나 스스로 타인을 위해 자연스럽게 문을 잡아주는 도어홀더(door holder)가 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미국인들이 문을 잡아주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주는 배려와 친절이다. 타인을 위한 배려 뒤편에 숨은 뜻을 알게 되면 문 잡아주는 것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문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무거운 문에 뒷사람이 부딪힐 수 있으며, 노약자나 임산부 등이 무거운 문을 열 때 힘에 부쳐 자칫 큰 부상에 노출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 잡아주는 미국문화는 배려에 앞서 선행일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물론 미국에는 공공기관(정부, 학교, 도서관, 시청, 병원 등)의 건물이나 호텔, 백화점 등에는 장애인이나 노약자와 임산부를 위해 자동으로 개폐할 수 있는 버튼이 있어 큰 불편은 없다.

문이 있는 곳이면 사람들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누군가 뒤따라오면 문을 잡고 기다린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친절에도, 문과의 거리에 따라 불편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다면 타인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적당한 거리는 문을 잡고 기다리는 사람으로부터 약 7~8미터 정도까지가 배려의 적정거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상의 거리에서 문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들까지 생각해 문을 잡아주는 배려는 상대를 오히려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내 경험을 비추어 해보았다.

문을 잡아주는 사람과의 거리가 너무 멀 때, 그 사람의 배려심에는 고마움을 느끼지만, 그냥 걷던 속도로 가야 하나 아니면 급하게 뛰어야 하나 난감할 때도 있다. 특히 동행이 있을 때 함께 뛰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물론 문을 잡아주는 사람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준다. 그러나 그런 배려를 받는 쪽에서는 불편을 느낄 수도 있다.

아주 멀찍이 문을 향해 오는 사람까지 배려해 문을 끝까지 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적정거리 이상 멀리서 오는 사람은 본인이 직접 문을 열면 된다. 그 사람은 자기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면 되는 것이다.

요즘은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한국에서도 문 잡아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2018년 어떤 행사 참석차 한국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잠실 롯데월드 호텔에 묵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행사 참석자들은 물론 호텔을 이용하는 일반 시민들도 문을 잡아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 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유시간에 근처 식당과 백화점, 롯데 타워 등 몇 군데 가볼 만한 곳을 둘러보았다. 대중(大衆)이 이용하는 문중 자동문을 제외하고는 반 정도 사람들이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친절을 보였다.

예전에 한국에서는 문 잡아주는 사람에게 경계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성들에게 문을 잡아주면 “이 남자 왜 이래?”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택시 문을 열어주는 남자는 바람둥이 취급을 하던 때도 있었다는 지인의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택시든 자기 차든 여성이나 노약자 특히 연로하신 부모님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을 신사라고 말할 정도로 익숙하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요즘, 뒷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본인 몸만 재빠르게 문안으로 밀어 넣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나름대로 바쁜 일이 있거나,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뒷사람을 위해 문 잡아주기는 미국의 좋은 문화라고만 생각하며 넘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든 기꺼이 도어홀더(door holder)가 되어, 친절과 배려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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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남 2023-06-13 00:20:06
미국이건 한국이건 세상 어디에서건 타인을 배려하는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진여아 2023-06-12 13:37:28
우리 생활에 어떤 좋다는 것에도 일장일단이 있기는 마련.
문화에도 일장일단은 당연히 존재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린 좋은것만을 우선시 하는 습관이 따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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