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93] 진주와 석유
[유주열의 동북아談說-93] 진주와 석유
  •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06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연진주 산지 두바이의 오늘날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오래전에 아라비아반도 동쪽 아랍에미리트 한국 대사관에 근무했다. 수도 아부다비는 풍부한 석유자본으로 사막의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높고 품위 있는 건물로 가득 찬 초현대식 도시였다. 그러나 국내의 연로한 부모님은 뜨거운 사막기후에 잘 지내는지 걱정했고, 가까운 지인은 대사관 출퇴근에 낙타를 타고 다니는지 하고 농담도 하였다.

어느 외교 행사에서 아부다비에 오래 산 영국인을 만났다. 그는 당시 화제가 됐던 주재국의 원유 생산이며 중동 정세의 분석이 아니라 뜬금없이 진주(pearl) 이야기를 꺼냈다.

진주의 역사는 오래되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번개가 바다로 들어갈 때 ‘마가렛’이라는 진주가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서양 여자 이름으로 널리 쓰이는 마가렛의 뜻은 고대 페르시아어로 진주였다고 한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쿠웨이트 등 페르시아만(걸프) 연안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석유가 발견되기 전에 천연 마가렛(진주) 채집이 주요 산업이었다. 바다가 얕고 수온이 따뜻하여 천연진주 생산에 최적이라 인구의 상당 부분이 이 산업에 종사하였다.

영화 속의 클레오파트라
영화 속의 클레오파트라

기원전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로마 장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듯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진주와 17세기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신비로운 진주도 이곳 페르시아만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진주는 보석의 한 종류이지만 다이아몬드 같은 광석은 아니다. 조개가 체내 이물질을 격리, 자가 치료하기 위해 조개껍질과 동일한 탄산칼슘(CaCO3) 내분비물로 오랜 기간 감싸면서 생기는 콩알 같은 구슬이다. 진주의 색채가 엷고 부드러우며 광택이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를 내주기 때문에 여성의 보석으로 어느 상황에서도 잘 어울린다. 진주는 또한 순결의 상징으로 고귀한 여성들이 애용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초상화에서 유독 진주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면 국가와 결혼한듯 평생 독신으로 산 처녀 여왕(The Virgin Queen)의 기품을 진주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진주 모양이 타원형, 물방울형 등 다양하지만 완벽한 구체에 가까울수록 귀하게 여겨진다. 조개를 이용한 음식을 먹다 보면 좁쌀 같은 진주가 발견된다지만, 보석의 크기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천연진주 한 알을 얻기 위해 대략 1만여 개의 진주조개를 열어 보아야 하기 때문에 어부가 잡은 조개에서 진주가 발견되면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하듯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큰돈을 벌기에 그에 따른 재앙도 따랐다. <에덴의 동쪽> 등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작가 존 스타인벡은 <진주(The pearl)>라는 소설을 썼다.

멕시코 서해안에 사는 키노라는 어부는 전갈에 물린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진주 채집에 나섰다. 수십 차례 잠수 끝에 다행히 마음에 드는 진주를 발견하게 된다. 이 소문이 마을에 퍼지자 밤에 도둑이 들었다. 키노의 아내가 진주가 재앙을 가져올 것 같다고 불안해하자 키노는 진주를 팔아 아들을 치료하고 큰집을 구해 잘살아 보자고 설득했다. 마을의 보석상은 가격을 후려쳐 제값을 주지 않자 키노는 큰 도시로 나가볼 것을 생각한다. 키노가 가족과 함께 큰 도시로 가는 도중 진주를 노리는 떼강도를 만나 그들과 싸웠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혼란 속에 아들이 총에 맞아 숨졌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애통해한 키노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재앙의 씨앗이 된 진주를 바다에 던져 버린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1920년대까지 천연진주 채집이 최대 산업으로 당시 세계 진주의 75%를 공급하던 페르시아만 연안국들에게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쳐왔다. 원인은 멀리 동쪽 일본에서 전해 온 날벼락이었다. 미키모토 코키치라는 사람이 진주의 인공 양식 기술개발에 성공하여 일본산 양식 진주가 세계 보석(진주) 시장을 석권한 것이다.

페르시아만 국가들이 생산한 천연진주에 대한 수요가 크게 떨어지자 사막과 바다뿐인 이 지역 해안에 즐비하던 진주잡이 배는 버려지고 잠수부들은 실직했다. 특히 쿠웨이트 경우 인근 이라크 및 바레인에서 석유가 발견되고 있음에도 영국 등 외국 자본에 의한 석유개발을 거부해 왔는데 진주 산업이 쇠퇴하자 부득이 외국기업의 석유개발을 허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8년 탐사를 시작했고 1946년부터 석유가 생산되었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1950년대 석유생산이 시작되어 이후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산유국으로 석유생산이 주요 산업이 되었다. 일본에서 진주 양식기술개발이 없었다면 그 만큼 석유개발도 늦었을 것이다. 진주와 석유의 묘한 인과관계가 흥미로웠다.

진주양식 기술을 개발한 미키모토 코키치(御木本 幸吉)는 1858년 1월 일본 중부 미에현 도바시의 우동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 도바시는 일본의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다도해에 위치한 진주조개와 해녀의 고장이었다.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미키모토는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생업전선에 나서면서 아름다운 진주조개에 매료됐다.

진주를 인공양식으로 처음 성공한 미키모토 코키치
진주를 인공양식으로 처음 성공한 미키모토 코키치

오래전부터 한중일 동아시아에서는 소라, 전복 등 색깔이 아름다운 패류의 껍데기(패각)에 옻나무 수액인 칠을 입혀 나전칠기라는 공예품을 생산해 왔다.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 황실의 주요 장식에 진주조개가 인기를 끌어 일본의 진주조개는 해외에 수출되고 있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로열 다치 쉘’이라는 석유회사가 있다. 석유회사임에도 회사의 엠블럼(로고)이 가리비 조개(shell)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일본 등에서 장식용 또는 단추 제조용 진주조개 수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조개 무역에서 돈을 벌고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석유 탐사가 성공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손꼽히는 석유회사가 됐다.

미키모토는 어린나이에 청과물과 말린 해산물 등 고향의 특산품 그리고 인기가 높은 진주조개의 패각 수출에도 관여했다. 그는 진주조개의 수출로 고향의 아름다운 조개가 남획되어 절멸의 위기에 빠진 것을 알게 됐다. 미키모토는 인공으로 진주를 양식하여 대중화한다면 조개도 보존되고 진주를 왕공귀족 및 부호들의 전유물에서 많은 일반 여성들에게 값싸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가지게 됐다.

1870년대 발간된 쥘 베른 원작의 <해저 2만리>에 노틸러스 잠수함의 네모 선장이 해저에서 양식한 진주를 팔아 자금을 조달한다는 내용이 있다. 오래전부터 이론적으로는 진주 양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미키모토는 도쿄대학의 해양학 교수의 자문을 받아 자신의 손으로 진주를 양식해 보기로 했다. 진주조개의 껍데기를 잘라 동그랗게 만들어 조개 속에 심는다. 그리고 특별 바구니에 담아 바다 속에 집어 넣어 양식시켜 보았다.

미키모토는 이물질을 조개 내피와 살 사이에 끼워 넣어 만든 반원(半圓) 진주 양식에 성공하고 다시 깊숙이 조갯살 속에 삽입, 자유로이 이물질이 움직이도록 하여 완벽한 구슬 형태의 진원(眞圓) 진주를 키워냈다. 1905년 그의 나이 47세였다. 주변에는 가짜 진주를 만들고 있다는 비방도 쏟아졌다. 양식 진주(cultured pearl)는 일반 구슬에 진주 광택을 내는 물질을 코팅하여 만드는 모조(가짜) 진주(imitation pearl)와는 다르다.

일본 도바시

천연 진주(natural pearl)와 양식 진주와의 차이는 진주의 핵이 되는 이물질(자극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는가 또는 인위적으로 삽입됐는가다. 외관상으로는 알 수 없어 X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자들의 긍정적 연구에 이어 법정에서도 양식 진주는 가짜 진주가 아니라면서 미키모토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늘날에는 세계 진주시장에서 양식 진주가 99%에 이른다고 한다.

진주는 ‘달의 눈물’ 또는 ‘인어의 눈물’로 만들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미키모토는 진주를 ‘인간의 눈물’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을 접고 진주 양식에 뛰어들어 수많은 시행착오로 파산, 좌절하자 그를 위로하고 지극 정성으로 진주 양식을 돕다가 일찍이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바치는 위로의 말이었다.

진주 채집으로 생활을 영위했던 페르시아만의 아랍인들은 미키모토의 양식 진주개발로 하루아침에 생업을 잃었지만, 알라신의 가호로 제2의 진주 석유를 발견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최근에 지인들과 한때 아랍인을 망연자실케 한 미키모토의 고향 도바시의 작은 섬을 찾았다.

진주섬이라고 불리는 이 섬은 세계 최초로 진주 양식에 성공한 곳으로 1951년부터 개장했다고 한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를 통해 진주섬으로 들어가자 과거 영국의 신사들이 썼던 중산모(中山帽)를 쓰고 망토를 걸친 미키모토의 동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의 손에는 다이쇼(大正) 천황비로부터 하사받았다는 지팡이가 있었고 그의 눈은 저 멀리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세계 모든 여성에게 진주를 바치고 싶다는 그의 염원이 동상에서 느껴졌다.

진주섬은 진주 양식에 관련된 역사 과학 제조공정 등 모든 분야를 모아둔 진주 전문 박물관이었다. 전시품 중에 인상적인 것은 진주로 만들어진 거대한 지구본이었다. 진주는 그 자체가 보석이지만 수많은 진주 구슬을 이용한 공예품이 사람을 감탄시켰다. 미키모토는 양식 진주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 만국박람회 등에 일본 전통의 공예기술을 이용, 진주를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출품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미키모토가 출원한 특허 기간이 끝나 타스키(TASKI) 등 수많은 회사가 양식 진주를 보다 아름다운 보석으로 개발 판매하고 있지만 진주의 대명사인 미키모토의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

카시코지마(아고만)의 석양

양식 진주는 여성 아마(海女)가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바닷속 양식 진주를 기계를 이용하여 끌어올릴 수 있지만, 과거 아마들이 아무런 잠수장비도 없이 순수하게 자맥질만으로 작업을 했다. 실직한 아마 해녀들이 인근 골프장 캐디 등 다른 없종으로 전환했지만 그들의 공로를 잊지 않기 위해 진주섬에는 관람객을 위해 하루 몇 차례 새하얀 전통적 잠수복(磯着)을 입고 진주조개를 담을 나무 용기와 함께 잠수 시연을 보여주고 있다.

진주섬 인근에는 무인도였던 카시코지마(賢島)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의 하나인 시마관광호텔이 있다. 가시코지마는 리아시스식 침강해안과 함께 수많은 다도해의 아름다움으로 일본인이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명승지의 하나인 이세시마 국립공원 안에 있다. 2016년 당시 아베신조 총리는 G7 정상회의를 이 호텔에서 개최했다.

미키모토가 진주양식에 성공하고 1920년대 런던 뉴욕 파리 등에 지점을 개설하여 양식진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처의 진주 상인들이 중동의 페르시아만이 아니라 일본의 도바시를 찾기 시작했다. 미키모토는 당황했다. 당시 도쿄에는 외국인이 머물 수 있는 호텔이 있었지만, 미에현 바닷가 마을에 그러한 숙박 시설이 없었다. 인근 카시코지마에 진주 바이어를 위해 건설한 것이 시마관광호텔의 시작이었다. 서양인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외국인 요리사를 채용하였고 그들을 통해 일본 전국에 서양요리가 보급됐다고 한다. 카시코지마의 고즈넉한 다도해의 석양을 바라보면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진주와 석유의 감동적 이야기를 생각한다.

유주열 외교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