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주의 ‘박정희·김대중’-⑮] 케네디, 한국에 모든 원조 약속
[강성주의 ‘박정희·김대중’-⑮] 케네디, 한국에 모든 원조 약속
  • 강성주 전 MBC 보도국장
  • 승인 2023.12.16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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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과연 후세는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강성주 전 MBC 보도국장이 박정희과 김대중을 재조명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들을 연재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쿠데타 후의 긴장된 여섯 달이 지나갔다. 혁명공약에서 밝힌 대로, 고질적인 부정부패나 사회악 척결도 진척을 보이고 있고 또 반혁명사건도 잦아들었다. 여름이 지나면서 그동안 추진하던 미국 방문 문제도 잘 정리돼, ‘11월 중 미국 방문’도 합의됐다.

일본과 미국 방문을 떠나면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김포공항에서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그는 아직 육군 대장이었다. 전용기가 없어 민항기와 미군 수송기를 이용했다.( 1961.11.11.)

미국은 당시 제3 세계의 군부 쿠데타에 대해 상당히 민감했다. 이집트의 나세르(G.A. Naser, 1918~1970)와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집트의 왕정을 뒤집은 뒤 이슬람 민족주의 기치를 높이 들거나(1952), 코 밑의 쿠바에서 등장한 카스트로(F. Castro)의 반미정권(1959)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어, 혹시 함께하기에 껄끄러운 지도자가 아닌지 유심하게 살피는 일이 늘었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61년 11월 12일부터 23일까지 공식 방미에 들어간다. 미국에 가기 전 도쿄에 들러 하루밤 묵으면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1899~1965) 총리와도 만났다. 군사혁명에는 성공했으나,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워 미뤄두었던 일을 이번 방문을 통해 해결해야 했다. 일본과는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의 재개와 앞으로의 일정 등이, 미국과는 경제개발계획안에 대한 협의와 자금조달 방안 등이 현안이었다.

박정희-이케다 1961.11.12. 도쿄. 박정희-케네디 1961.11.14. 워싱턴DC

박 의장은 앵커리지, 시애틀, 시카고를 거쳐 워싱턴에는 13일 오후 4시에 도착했다. 박 의장은 워싱턴에서 케네디와 두 차례 회담했다(14일, 15일).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북한의 위협, 베트남전 등이 주 의제였다. 첫날 정상회담을 마치고 난 뒷날인 15일, 케네디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모든’ 원조를 약속했다.(KENNEDY PLEDGES ‘ALL’ AID TO KOREA).

케네디, 한국에 ‘모든’ 원조 약속

(워싱턴, 11.14) 케네디 대통령은 오늘 박정희 의장을 만나 “가능한 모든 경제적 원조”와 군사 원조를 계속하는 한편 북한의 침공이 있을 경우 더 많은 미군을 한국에 파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지도자 박정희 장군은 백악관과 국무부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미국 행정부 소식통은 케네디 대통령과 러스크 국무장관 등이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한국과 동북아 정세에 관한 설명을 경청했다고 전했다. 올해 44살인 박정희 한국국가재건 최고회의(Supreme Council for National Reconstruc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의장은 지난 5월 민간 정부를 뒤엎는 쿠데타를 주도했다.

오늘 박 의장은 쿠데타 이후 이룩한 진전에 대해 좋은 평가를 들었다. 오늘 회담에서 구체적인 지원 액수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 행정부는 한국에서 박 의장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결정했다. 많은 한국인들은 박 장군이 쓰러뜨린 민주당 정부가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워싱턴 방문 이틀째인 박 의장은 오늘 오전 딘 러스크 국무장관을 1시간 20분간 만난 뒤, 백악관으로 이동해 케네디 대통령과 주요 각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찬을 함께 했다. 오찬을 마친 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박 의장은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가 케네디 대통령과 1시간 15분 동안 개별 회담을 했다. 공동성명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박 의장은 한미 두 나라 간의 우호를 재확인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박 의장의 한국 상황에 대한 설명을 경청했으며 한국의 새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많은 발전 가능성에 대해 만족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의장은 군사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사회개혁과 경제적 안정 그리고 외 교역의 확대를 이룩하는데 필요한 다음 단계의 조치들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박 의장은 세무관련 공직사회의 개혁, 농어촌의 고리채 폐지와 실업자 감소 방안, 투자확대 등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박 의장이 1963년 여름까지 민정 이양 약속을 거듭 밝힌 데 대해 특별히 만족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봄 쿠데타 직후 미국이 한국의 군사정부에 대해 잠시 반대 의사를 표명한 사실은 오늘 공동성명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그 당시 반대 의사는 사무엘 버거 주한 미국대사의 의사와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군사정부가 1963년까지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악속으로 미 행정부도 한시름 놓았다.

또 공동성명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박 의장은 방미 길에 도쿄에 잠시 들린 문제에 대해서도 케네디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박 의장은 일본과의 회담 재개에 희망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대통령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서도 케네디 대통령은 만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과 일본은 35년간의 식민지 시기는 물론 근래에 와서도 어업권과 청구권 문제, 일본의 관세 문제 등을 놓고 오랫동안 다투어왔다.

미국 관리들은 특별 원조나 약속 등을 얻어내기 위한 고위급의 워싱턴 방문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국 측에 분명하게 밝혀왔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은 박 의장이 설명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 초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엄청난 관심을 보였으며, 이 계획의 성공을 위해 미국은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61.11.15, NYT)

두 대통령은 동갑(1917년생)으로 권좌에 오른 시기도 비슷했다. 그리고 흉탄에 맞아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경우도 닮았다. 백악관을 방문한 박 의장이 케네디 대통령 부부와 함께했다. 박 의장은 미국기자클럽(NPC) 연설에서도 한국의 실상과 쿠데타의 동기 등을 설명했다.(1964.11.)

이를 통해 보듯 박 의장으로서는 자신에 대한 케네디를 비롯한 미 지도부의 의구심을 씻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남는 방문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하나 박 의장은 16일 미국기자클럽(NPC)에서 한 시간 정도 연설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함으로써, 비로소 국제정치 무대에서도 신고를 마쳤다. 케네디와의 회담만큼이나 의미 있는 행사였다.

박 의장은 워싱턴 방문을 마치고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호놀루루, 도쿄를 거쳐 25일 귀국했다. 미국 공식일정 만해도 11일인 데다, 일본 비공식 방문까지 합쳐 무려 15일간 자리를 비웠다.

전용기가 없던 시절 박 의장은 미국 내에서는 미 공군 수송기를 이용했고, 나머지는 미국의 민간 항공사(노스웨스트오리엔트, 팬암) 여객기를 이용했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대통령은 몇 시간씩 미국 공항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몇 년 뒤 박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할 때도(1964.12) 이런 고생을 했다.

지금 멋지고 깨끗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온 세계를 방문하는 후임 대통령들도 이런 역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 “목이 말라 물을 마실 때면, 그 근원인 우물을 누가 팠는지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당시 박 의장은 미국이 육영수 여사를 초청하지 않아, 수행원 13명, 수행기자 1명 등 모두 15명이 팀을 이뤄 미국과 일본을 다녀왔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과 박 의장은 1917년생 동갑으로, 케네디는 1960년 가을 선거에서 당선돼 1961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했고, 박 의장은 1960년부터 쿠데타를 모의해 1961년 5월부터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 2년 뒤 케네디 대통령이 피살당한다. 대통령 박정희는 워싱턴DC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해(63.11.24) 40대 동갑내기 대통령의 명복을 빌었다.

필자소개
MBC 보도국장, 포항 MBC 사장,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서울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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