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무이산 기행
[이영승의 붓을 따라] 무이산 기행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9.01.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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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고향인 중국 무이산(武夷山)에서 국제퇴계학회 주최로 ‘퇴계학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참석 대상은 퇴계학 학습단체인 박약회(博約會)와 고려대 및 성균관대 경전수강생 그리고 안동지역 유림인사 등 백여 명이었다. 나는 고려대경전수강생이면서 박약회 일원으로 참석했다.

무이산은 절경인 구곡계(九谷溪)와 성리학의 시조인 주자를 기념하는 문화유산이 합쳐져 ‘세계복합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이다. 무이산시(武夷山市)는 중국 복건성에 있는 인구 이십만의 중소도시다. 너무 멀어서 무이산을 갈 수 없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무이 구곡의 산수화를 그려서 벽에 걸어 놓고 주자를 흠모하였다는데, 지금은 2시간이면 날아가 마음껏 절경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주자는 퇴계보다 370년 먼저 태어난(1,130~1,200) 대학자다. 그가 창시한 주자학은 1,300년경부터 문화혁명 직전까지 육백년간 중국을 이념적으로 지배해 왔으며, 조선 또한 사상과 문화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그가 남긴 저서만도 팔십여 종이 넘는데 사서집주, 근사록, 주자가례 등 수많은 저서는 당시 중국과 조선에서 학문하는 사람들의 교과서로 사용됐다. 

‘중국의 옛 문화는 태산과 무이로다’라는 말이 있다. 주나라 때 공자(孔子)가 태산에서 유학을 세우고, 남송 때 주자(朱子)가 무이산에서 이를 발전시켜 주자학을 이룸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의 유학은 고려 때 안향이 전래한 후 정도전에 의해 조선개국 근본 사상이 됐고, 퇴계에 의해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좋아해 아홉 번째 여행이지만 이번처럼 가슴을 설레게 한 적은 없었다.

오부리(五夫里)
주자는 원래 안휘성 우계 사람이나 1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왔다. 유병산의 집에 살면서 학문을 배우고 훗날 그의 딸과 결혼했다. 오부리에는 주자가 오랫동안 생활했던 그 유명한 자양루가 있다. 주자가 공부하러 다니던 주자항(주자거리)은 팔백년이 지나도록 잘 보존되어 있는데 그 골목길을 걷는 감회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자와 축씨 묘
주자 묘는 무이산에서 차량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다. 묘 입구에 ‘주자 묘’라는 안내비석이 있고 묘 앞에는 ‘사원정’이라는 큰 정자가 있다. 우리나라 주씨 종친회에서 성금을 모아 세웠단다. 일행이 묘소 앞에 도착하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숙연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동행한 교수 한분의 말씀이 너무 재미있다. 수년 전 우리나라 유림에서 갓 쓰고 도포 입은 어르신 분들이 단체로 이곳을 방문했는데 묘 앞에 다다르자 누구의 제의가 없음에도 일시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단다. 영문을 모르는 주위 외국 관광객들이 이 진풍경에 놀라 사진 찍기에 바빴다. 평생을 공자 왈 맹자 왈 살아온 분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했을 것이나 외국 관광객들이야 어찌 이해 할 수 있었겠는가? 주자 묘와 한 시간 거리에 그의 어머니 축씨 묘가 있다. 중국의 공산혁명 후 유교문화를 중시하지 않아 방치됐던 이곳 역시 주씨 종친회에서 주변을 정비하고 사방에 담장을 시설하였다. 이 소중한 문화재가 타국의 주자 후손에 의해 보호 되면서 엄청난 입장료만 챙기고 있는 형국이다. 

삼현사(三賢祠)
수렴동은 무이산에서 가장 큰 바위산이다. 까마득한 절벽아래에 집 한 채가 있는데 이를 삼현사라 한다. 삼현사는 유자휘, 주자, 유보 삼인을 모신 사당이다. 유자휘는 주자의 스승으로 주자를 데리고 이곳 수렴동에 와서 학문을 가르쳤다. 유보도 수렴동에 은거하며 주자, 채원정 등과 교유한 남송의 대학자이다. 수렴동 암벽에는 ‘1181년 7월23일 주자와 채원정이 유보의 초청을 받아 수렴동을 유람했다’는 주자의 친필이 새겨져있다. 이를 읽는 순간 내 가슴은 전율을 일으켰다.

천유봉(天遊峰)
천유봉은 무이구곡 중 5곡과 6곡사이의 천길 절벽위에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로 무이산 최고의 절경이다. 옛부터 천유봉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무이산을 구경한 것이 아니라 하였다. 천유봉은 해발 408m인데 팔백여 돌계단을 오르면 마치 천궁 속을 유람하는 것 같아 천유봉이라 이름 했단다. 실 같이 이어진 좁은 길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휘돌아 흐르는 구곡의 옥빛 물길이 감탄사를 절로 자아낸다. 그래서 천유봉에 오르면 도교의 이상 세계인 봉래선경(蓬萊仙境)에 들어선다고 하였다. 천유봉 정상에 있는 천유각은 도교의 천궁을 본 따 만들었다. 이곳 정상에서 내려다 본 무이 구곡계의 물은 천유봉 아래 쇄포암에서 6곡을 이루며 감돌아 흐른다. 그 절경을 글로서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무이구곡(武夷九谷)
무이산 경치의 절정은 뭐니 뭐니 해도 삼보산에서 발원하여 무이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무이구곡이다. 아홉 구비를 돌고 도는 계곡의 길이는 무려 9.5km나 된다. 이 계곡을 따라 대나무 뗏목을 타고 내려오는 시간만도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일행이 탄 열여섯 대의 뗏목배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한 뗏목에는 여섯 명이 탔는데 앞뒤에서 사공이 노를 저었다. 우리 배에는 고려대에서 유학경전을 강의하시는 김언종 교수님이 함께 타서 구곡의 각 계곡을 지날 때마다 주자선생이 쓴 무이구곡가(武夷九谷歌)를 낭송하고 해설을 하였다. 흥에 맞춰 술잔까지 돌리니 그 분위기는 최고조에 도달했다. 정녕 우리가 신선이 아니면 누가 신선이란 말인가! 팔백 오십여 년 전 주자는 무이구곡 중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구곡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여 무이구곡가를 지었는데 본격적인 무이구곡가 서술에 앞서 무이구곡 절경을 오언절구로 묘사했다. 그 뜻은 무이산의 기묘한 절경을 노래한 자신의 시를 모두들 한번 들어보라고 호객(呼客)하는 내용이니 그 명시 구절을 옮겨본다. 

山無水不秀  산은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않고
水無山不淸  물은 산이 없으면 맑지 못하다
曲曲山回轉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고
峯峯水抱流  봉우리마다 물이 감 돌아든다.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 위에는 신선의 영이 있고
山下寒流曲曲淸  산 아래 시원히 흐르는 물은 굽이굽이 맑구나
欲識箇中奇絶處  그중에 절승지가 어딘지 알고 싶으면
櫂歌閑聽兩三聲  뱃노래 몇 가락 귀 기울여 들어보소.
  
무이구곡가의 전체는 방대하여 여기에 다 옮길 수가 없다. 일곡의 시작 두 구절과 구곡의 마지막 두 구절만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一曲溪邊上釣船  일곡 시냇가에서 낚시 배에 오르니
幔亭峰影潛淸川  만정봉이 맑은 물속 푸른 하늘에 잠겨있고 
 ~ 
漁郞更覓桃源路  사공은 다시 한 번 무릉도원 찾아보지만
除是人間別有天  이곳이 바로 인간 세상의 별천지로다.

무이산의 구곡은 주자의 무이구곡가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후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런 유형의 노래를 짓게 되는데 그래서 ‘뱃노래는 주자에서 시작된다(棹歌首唱自朱子)’라는 말이 나왔다. 세기적인 사상가요 철학자이며 교육가요 문학가인 주자가 이러한 풍류까지 겸하다니 실로 말문이 막혔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주자를 흠모하였던지 퇴계는 이를 본 따 청량산에 청량정사를 짓고 도산구곡가를 지었으며, 율곡은 해주 석담천에 머물면서 무이산 은병봉에서 이름을 따와 은병정사를 짓고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외에도 한강 정구선생은 무흘구곡가를 짓고 우암 송시열은 화양구곡가를 짓는 등 구곡가를 지은 선대 유학자만도 이십여 명이나 되니 주자가 우리 민족의 사상과 문화에 끼친 영향은 실로 심대하다.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이구곡의 뱃놀이! 무릉도원과 신선세계가 좋다한들 이보다 좋을쏜가? 먹다 남은 술병을 손에 들고 뗏목에서 내리니 이곳이 꿈속인지 현실인지 정신이 혼미하다. 이럴 두고 황홀지경(恍惚地境)이라 하던가? 아, 언제나 다시 오려나··· 그리운 무이산(武夷山)이여!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원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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