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고려거란전쟁과 여진족… 임진왜란과 6.25는 동북지역 한인세력 소진시켜
[수첩] 고려거란전쟁과 여진족… 임진왜란과 6.25는 동북지역 한인세력 소진시켜
  • 이종환 기자
  • 승인 2023.12.1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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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대표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대표

“고구려 대무신왕의 ‘대무신’이 ‘테무친’의 음역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서울 영등포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구자룡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장이 소개한 얘기다. 그는 지난 11월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 6.25’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날 화제가 된 것은 TV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었다. 거란은 요(遼) 제국을 세운 민족이다. 이 민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흑룡강성의 다우얼족이 후예라는 설도 있다.

“드라마라고 하지만, 고려 시대 무신들의 기개를 너무 낮게 평가한 것 같아요. 거란족의 포로가 된 고려 장수들이 강조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배신해 거란족의 신하가 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워요.”

이런 얘기와 함께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 전투에 참여한 조선 장수들의 높은 기개도 언급됐다. 당시 일본군과 함께 한 서양 선교사의 글에는 패전해서 포로가 되어서도 “목을 치라”며 굳건한 기개를 보인 조선 장수들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6.25는 임진왜란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임진왜란 때 요동지역에 있었던 조선인들이 요동총병 이성량의 아들 이여송을 따라 명나라 지원군으로 한반도에 파견됐어요. 이들은 여진족을 누르고 있었는데, 이들이 조선에 출병하면서 그 공백을 타고 여진족이 일어나 청나라를 세웠거든요. 6.25 때도 중국에 있던 조선인 정예부대들이 대거 전쟁에 투입됐어요. 만약 6.25가 없었다면 중국에 있는 한인들은 아마 지금도 세력이 상당했을 겁니다.”

이런 얘기 끝에 여진족에 대해서도 말이 오갔다. 여진은 영어로 ‘jurchen’이라고 쓴다. 여진어로는 ‘jusen’이다. 다시 말해 ‘조선’이라는 말과 음이 비슷하다. 백두산을 민족기원으로 하는 것도 우리와 같다.

“북방은 주센으로 쓰고 남방은 조선으로 쓰면서, 사실은 한민족이 남북조를 이룬 시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보다 오래전에 갈라진 핏줄이어서 우리가 북방을 멸시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보면 역사는 재미있다.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는 성이 ‘아이신교로’다. 이것을 음차해서 한자로는 애신각라(愛新覺羅)라고 쓴다. 애신각라 즉 아이신교로는 금(金) 혹은 황금(黃金)이라는 뜻이다.

몽골제국을 세운 태무친 칭기스칸은 황금가족의 후예라고 했다. 몽골에서 이후에도 칸이라 불리는 사람은 황금가족의 후예라야만 한다. 인도의 마지막 제국 무굴(몽골)제국도 황금가족의 후예가 칸으로 통치했다. 몽골의 황금가족이나 여진족의 금나라, 청나라의 아이신교로 모두 황금가족, 즉 ‘금’의 후예라는 말이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 때 쓰인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흠정(欽定)’은 황제의 칙명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국정교과서라고 할 때의 국정과 비슷하다. 만주원류(滿洲源流考)는 만주족의 기원을 고찰한 책이라는 뜻이다.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가 1777년 당시 최고 학자 43명을 동원해 자기들의 조상인 여진족의 역사를 정리해 내놓은 책이다.

​여기에는 고대부터 17세기 초까지 만주 지역에 존속했던 여진족과 여타 부족들의 부족, 강역, 산천, 풍습 등을 상세히 기록돼 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등에 관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없는 자료들도 많이 들어있다. 한자 총 179,100자로 되어 있는 방대한 분량이다. 임진왜란 때 여진족이 조선에 원병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책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의 시조를 신라, 혹은 고려의 인물이라고 했다. 이것은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金史)’에도 나온다. ‘금사’에는 “금나라의 시조가 김함보라는 신라 후예로 고려에서 왔다”면서,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 집안이다”고 했다.

“우리는 병자호란의 치욕스러운 기억으로 인해 청나라를 뗏놈이라고 하면서 멸시했지만,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들 중에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는 ‘실학(實學)’파가 나오잖아요. 실학파는 조선이 끝나기까지 소수파였지만, 공리공론의 허학에 언제까지나 매몰돼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지요.”

이런 얘기들은 구룡포 과메기를 앞에 두고 오간 것이었지만, ‘흠정만주원류고’도 보면서 역사 읽기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날 모임에는 심양에서 사비를 털어 한중교류문화원을 운영하는 안청락 상익그룹회장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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