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⑥] 한국어 교육과의 인연
[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⑥] 한국어 교육과의 인연
  • 이소정(필리핀 TESDA 한국어교사)
  • 승인 2015.01.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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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 수기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

※ 편집자 주: 올해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이동관)가 주최한 ‘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중에서 해외 한국어교육자들의 우수작품들을 서울문예대 육효창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의 협조를 통해 연재합니다.

이소정(필리핀 TESDA 한국어교사)

내가 한국어 교육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원 시절, 재외동포재단에서 주최한 ‘재외한글학교 교사 초청 워크숍’의 스태프로 일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당시에는 국어학을 전공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 교육은 좀 다른 분야로 생각했었다. 그래도 해외에서 한국어 선생님들이 오신다기에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맡은 지역은 남미 지역의 한글학교 교사들이었다. 7박8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같이 강의도 듣고, 각각의 나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겪는 경험도 들으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세계 각국에 있는 선생님들께서 나중에 혹시 관심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명함도 주셨는데, 그때는 나와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 필리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더니 과연 이를 두고 한 말인가 싶었다. 한국에서는 공부만 했지 전혀 가르쳐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르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첫 가르침의 경험

내가 파견된 기관은 필리핀의 기술교육개발청(TESDA: Technical Education and Skills Development Authority)이다. 한국으로 치면 직업훈련학교 같은 곳인데, 대부분은 학생들이 취업을 목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곳을 거쳐 취업한다. 기술교육개발청(TESDA) LSI(Language Skills Institute)에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현재 전국에 35개 LSI센터가 퍼져있다. 한국어 수업 외에도 기초 영어, 기초 일본어와 문화, 기초 중국어와 문화, 기초 아랍어와 사우디아라비아 문화, 스페인어 수업이 있다. 150시간에 완성되는 기초 일본어와 문화 과정을 제외하고, 모든 과정은 100시간으로 수료할 수 있다.

나의 수업은 매일 4시간씩, 5주 과정으로 진행되는 기초 한국어와 문화 수업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으로 취업하기 위해 EPS-TOPIK(Employment Permit System-Test Of Proficiency In Korea)을 치려는 학생들이다. EPS-TOPIK은 한국 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 일환으로 외국인 구직자에 대한 한국어 구사 능력, 한국 사회 및 산업 안전에 관한 이해 등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물론, 다른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도 많다. 한류의 영향으로 K-POP 때문에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있고,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도 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부터 삼십대 가장인 아저씨들, 심지어는 나이 지긋한 학교 선생님이 방학을 이용해 다른 언어를 배우려는 열정으로 오시기도 하니 연령대는 아주 다양하다. 거의 한 반에 25명씩 수업을 진행하는데, 개인의 수업 목적이 달라 수준에 맞춰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운 적도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기초 과정이므로 모음과 자음부터 차례대로 가르친다. 다행히 필리핀은 영어가 타갈로그 어(Tagalog)와 함께 공용어로 쓰인다. 타갈로그 어(Tagalog)는 마닐라와 북부 루손 지역에서 쓰는 가장 보편화된 언어이다.

한국어 수업

수업 중에는 보통 영어와 타갈로그 어(Tagalog)를 같이 쓰면서 소통한다. 5주라는 짧고도 한정된 시간 탓에 빠르게 진도를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일 새로운 단어를 10번 또는 5번씩 쓰게 숙제를 내주고, 그 다음날 받아쓰기 시험을 친다. 필리핀 사람들의 특성상 이렇게 매일 확인을 하지 않으면 온갖 핑계를 대면서 쓰기 숙제를 하지 않거나, 외우기를 게을리 하기 일쑤다. 받아쓰기 시험을 칠 때, 칠판에 단어를 제시해 놓아도 똑같이 쓰지 않고(자기만의 확고한 방식이 있다), 자기가 외운대로 써버리고 만다. 채점한 받아쓰기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에게 상(사탕이나 초코파이)을 줌으로써 다른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학생들과 한바탕 시험을 치르고 나서 처음에는 단어 카드로 단어를 익힌다. 확실히 그림과 함께 단어를 제시하니 기억을 잘하고,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는 기본 문장을 조금씩 배우는데 이때, 동사 변형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아주 힘들어 한다. 나는 물론 내 모국어라 당연시 되었던 문법들이 그들은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는데, 나도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대학원 지도교수님께서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많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정답이었다. 학생들의 질문은 그 다음날 나의 숙제가 되었다. 한국어로 자기 소개하는 문장을 외우게 하여 말하기 시험을 치기도 하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친다. 다들 긴장하여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선생님인 나는 몰래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 문화

매주 금요일은 문화 수업하는 날로 정해서 한국 영화를 같이 보거나, 한국 음식을 만든다. 주로 비빔밥이나 김밥을 만드는데, 전날 그에 관련된 동영상을 보여주고 팀을 나누어 재료를 준비하게 한다. 그러면 어찌나 알아서 잘 준비해오는지 내가 김밥 싸는 모습을 한 번 보여주면 그 다음부터는 척척 잘한다. 같이 요리하고 다 같이 한국 음식을 먹는 동안 한국의 정도 쌓이는 것 같다. 또 다른 문화 수업으로 한복을 입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필리핀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날씨가 1년 내내 무덥기 때문에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도 아주 더워한다. 그러면서도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라 연신 웃으면서 자기들끼리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필리핀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여 페이스북을 즐겨한다. 그렇게 한복을 입은 날이면 어김없이 페이스북에는 셀 수 없는 사진들이 올라온다. 또 다른 문화 수업은 필리핀에 있는 한국문화원을 방문하는 것이다. 한국문화원에서 전시 중인 프로그램 투어를 하고, 투호 던지기와 제기차기 같은 한국 전통놀이 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지금 현재 수업이 진행되는 곳은 기술교육개발청(TESDA)에서도 ‘한-필 인력개발센터(Korea-Philippines Human Resource Development Center)’라는 곳이다. 한국국제협력단은 동 센터가 양국 우호증진 뿐 아니라 필리핀 인력개발을 견인할 수 있길 기대하며,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에 걸쳐 ‘한-필 인력개발센터 건립사업’을 추진해왔다. 한-필 수교 60주년(2009년) 및 한국전 참전 60주년(2010년)을 기념하여 우호증진 및 보은의 일환으로 건립된 센터는 보훈처 지원으로 건립된 한국전 참전 기념관과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참전 기념관을 방문하여 설명을 들은 우리 학생들은 우리나라와 필리핀이 함께한 역사적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뿌듯해 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 학생들조차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없는데, 필리핀 학생들이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보이니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아쉬움과 후회

필리핀 마닐라의 교통 체증은 과연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아침 수업을 할 때는 8시부터 수업이 시작되는데, 학생들에게 몇 시에 일어나서 오느냐고 물으면 보통 새벽 4시, 5시에는 일어나서 해가 뜨기 전에 집에서 출발을 한다는 것이다. 맙소사! 그런 학생들이 피곤한 기색도 없이 배우겠다는 일념하나로 반짝이는 눈을 하고 앉아있으면, 가끔은 게으름을 부리려던 내가 미안해지기도 했다. 또한 내 또래의 남자 학생들이 이미 한 가족의 가장으로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겠다는 목표 하나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들을 보살피려는 그 마음이 가끔은 어쩐지 짠하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열심히 가르쳐주고 싶었다. 모두 시험을 통과하게 하여 한국에서 일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100시간이 너무나 짧다. 중급이나 고급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봉사자로 와 있는 내가 큰 기관의 커리큘럼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지어 선생님도 있지만 1명뿐이라 가르치는 환경이 다른 국립대학의 한국어과 보다 좋지 않은 실정이긴 하다. 그렇지만 매년 배우려는 학생이 있고, 기관의 요청에 따라 봉사자들은 계속 올 것이다.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으로 가르치는 경험을 그것도 필리핀에서 하게 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100시간의 짧고도 긴 수업이 끝나면 그동안의 학생들과 들었던 정 때문에 마지막 수료증을 나누어 줄 때는 울컥하기도 한다. 손수 한글로 쓴 편지와 자신들이 준비한 선물을 수줍게 내어 놓을 때면, 그동안 잘해주지도 못하고, 부족한 가르침을 고맙게 여겨준 학생들에게 오히려 내가 고마울 따름이다. 부디 한국에서 좋은 사장님을 만나서 한국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간직하길 바라본다. 나또한 학생들 때문에 많이 웃고, 필리핀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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